무명(無明)

2015.10.20 22:43

현성스님 Views:3797

 밝지 못함은 어리석음을 의미한다.

어리석음의 반대는 깨달음이다. 어리석었음을 깨달으면 밝아진다는 뜻이다.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12연기법에 의하면 중생이 어리석게 맺는 상대와의 인연관계가 12 단계 고통의 원인으로 작용한다고 하셨다.

중생이 어리석다고 하는 것은 나와 남을 둘로 보는 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중생이 상대를 바라보는 순간, 보는 , 보이는 대상인 가 따로 분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보이는 것은 차별 심과 분별 심을 일으킨다. 차별 심은 우월감이나 열등감을 일으키고, 분별 심은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대상을 만들어 취하려는 생각, 버리려는 생각을 일으킨다. 이 생각은 불평불만의 원인이 되며, 고통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깨달은 사람은 상대를 바라보는 순간, 보는 자도 내 마음이요, 보이는 대상인 너도 내 마음 안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안다. 너와 나는 내 마음에서 나타나는 것이니 둘이 아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너와 나는 큰 나의 마음속에서 서로 연결되어 주고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관계이니 오직 너에게 감사하고, 존중하며 사랑한다. 화나 불만의 원인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중생이 어리석다고 하는 것은 미운 짓을 하는 사람을 보고 미워한다. 바라는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을 보고 원망하거나 불평불만 한다. 그러다보면 적대시하거나 감정싸움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깨달은 사람은 중생이 한 미운 짓이나 원망스런 행위는 자신의 마음속에 찍혀진 그 중생의 행위이지 그 중생 자체는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심상(心相)의 원리이다.

 

내가 어떤 중생을 미워하거나 원망하는 것은, 그 중생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찍혀진 그 중생의 행위이다. 내 마음 속에 찍혀진 그 중생의 행위를 미워하고 원망하는 것은 바로 내 마음 속에 찍혀진 그의 행위를 미워하고 원망하는 행위가 됨으로 내 마음에 상처를 내고 병을 만들어가는 자학(自虐)하는 행위임을 잘 안다.

남을 미워하고 원망하고 있는 것은 어리석게도 내 마음의 병을 만들고, 나아가 육체를 괴롭히며 병들게 만들고, 결국 불행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남의 잘못을 용서하는 것은 남을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 찍혀진 그의 행위를 용서하는 것이다. 깨달은 사람은 자신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나와 남을 분별하지 않고, 이해하고, 사랑한다. 깨달은 사람은 마음속에 찍혀 있는 남을 미워하거나 원망하는 상()을 가지고 있지 않다.

중생이 어리석다고 하는 것은 이 몸이 내 것이라고 알고, 내 마음 대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행동한다. 예를 들면 담배, , 노름, 불윤관계 등이다. 이러한 생각과 행동은 그 중생이 받는 많은 고통의 원인이 된다.

 

그러나 깨달은 사람은 이 몸은 자율신경이 있어 하늘의 양기(陽氣)와 땅의 음기(陰氣)의 운행의 질서를 따라 운행되고 있음을 안다. 그러므로 몸이 운행되는 질서를 알아서 그를 존중하고 사랑한다. 내 몸이라 하지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제법무아(諸法無我)의 원리이다. 그렇지만, 내가 하자는 대로 움직여 주기도 하므로 나가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이치도 있다.

이렇게 양면성이 있는 것이 내 몸이라고 알고 조화를 이루면 건강하고 조화가 깨지면 병고로 고통을 받는다. 그러므로 몸의 소리를 경청하고 응하여 주는 마음의 자세로 대할 것이며, 우주의 섭리에 따르는 몸의 변화를 잘 알아차려 순응하는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제행무상(諸行無常)의 원리이다. 깨달은 사람은 이러한 이치를 알고 순응하므로 서 항상 여여하게 건강하고 편안할 수 있다.

 

중생이 어리석다고 하는 것은 자기만이 홀로 존재할 수 있고, 홀로 행복할 수 있다고 알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다. 이러한 행위는 과욕과 성냄의 원인이 되고, 남을 불행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나 자신도 불행하게 만든다. 그러나 깨달은 사람은 나는 나 아닌 것의 도움을 받아 이 세상에 태어났고, 생명을 유지하고 있으며, 나 아닌 것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소원 성취할 수도 없고, 사랑할 수도 없으며, 행복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나는 나 아닌 것과 둘이 아님을 깊이 인식하고, 나 아닌 것에 항상 감사하고,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모두 함께 행복하게 번영하며 살 수 있는 길을 가고자 할 뿐이다.

중생이 어리석다고 하는 것은 생명이 있는 한 재미있게 살다가 죽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두려움과 괴로움은 많이 하고있기 때문이다. 깨달은 사람은 시작이 없는 예부터 나는 몸을 바꾸어가면서 살아오다가 금생에 사람의 몸을 받아 살고 있다. 이 몸의 연이 다하면 죽는 것이 아니라 새 몸을 받아 나투게 됨을 믿는다. 깊은 깨달음을 얻은 사람은 지금 여기에서 음()과 양()의 완전한 중도의 완성을 이루어 불생불멸(不生不滅)을 체험함하고, 극락, 열반, 무량광(無量光) 무량수(無量壽)를 이룬다. 그리고 다른 사람도 이를 성취하게 하기 위해 육바라밀을 계속 닦는다.

 

중생이 어리석다고 하는 것은 기쁨과 행복은 밖에서 얻어지는 것이라고 알고 있기 때문에 돈, 권력, 사랑 등을 얻어 행복해 지고자 한다. 그러나 깨달은 사람은 기쁨과 행복은 밖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일어나는 것임을 안다. 내 생각으로 남에게 해로운 생각을 하면 그 생각이 씨앗이 되어 남에게 해되는 일을 하고, 내 생각으로 남에게 악한 감정을 일으키면 그것이 씨앗이 되어 악한 짓을 하게 된다. 이는 모두 죄업을 지어 괴로움과 불행의 원인이 된다.

그러나 남에게 이로운 일을 하고자 하면, 그것이 씨앗이 되어 이로운 일이 생각나고 말하고 행동하게 된다. 남을 행복하게 해 주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나면, 그것이 씨앗이 되어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생각이 떠오르고, 행복하게 하는 말과 행동을 하게 된다.

깨달은 사람은 끊임없이 자기 안에서 기쁨과 행복이 솟아나게 하여 자신이 즐겁게 살아갈 뿐만 아니라 이웃도 즐겁게 한다. 나아가 이웃도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법을 가르친다.

 

2015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