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산행원 대종사의 열반송(涅槃頌)

2007.02.25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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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산행원 대종사의 열반송(涅槃頌)


숭산행원 대선사께서 불기 2548년 서기 2004년 11월 30일 오후 5시 15분에 서울 화계사에서 입적하셨습니다. 입적에 앞서 스님은 화계사 주지 성광스님 등 제자들에게,

“걱정하지 마라, 걱정하지 마라, 걱정하지 마라.
만고광명(萬古光明)하고,
청산유수(靑山流水)니라”

라는 게송을 남기시고 원적하셨습니다. 청산(靑山)이라함은 푸른 산을 의미하는 것이니 푸르지 않은 산과 상대적인 개념이 있는 산입니다. 푸른 산은 가을이 되면 단풍이 들고, 겨울이 오면 낙엽이 집니다. 그리고 눈이 오면 설산(雪山)이 되기도 하고, 봄이 오면 다시 청산이 됩니다. 계절(季節)의 인연에 따라 청산이 되기도 하고 설산이 되기도 하는 것이니 청산은 인연따라 생멸(生滅)하는 것이기에 이와 같이 삼라만상 전체도 인연 따라 성주괴공(成住壞空)하는 진리의 바퀴에서 돌고 있음을 뜻합니다.

사람들이 성주괴공하는 인연의 이치를 잘 알지 못하고 무엇엔가 집착할 때 고통을 면할 수 없지만, 항상 변화하는 인연의 이치를 미리 알아서 그에 대치(對治)하여 가는 사람은 고(苦)를 돌려 낙(樂)을 얻을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마라, 걱정하지 마라, 걱정하지 마라.”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또 푸른 나무 한 그루가 산에 존재할 수 있는 이치를 살펴보면 그 나무는 땅에 뿌리를 박고 영양분을 섭취합니다. 비는 그 나무들에게 필요한 수분을 공급하고 바람은 그 나무에 필요한 탄산까스를 배달하며 태양열은 그 나무가 탄소동화작용을 함에 필요한 열을 공급합니다.


이와 같이 한 그루의 푸른 나무는 지구와 우주를 순환하는 물, 불, 바람 전체와 인연을 맺어 하나로 돌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도 한 그루의 나무와 같이 우주 전체와 하나가 되어 돌아가고 있지만 이 당연한 사실을 알지 못하고 눈앞에 보이는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남을 해치는 것을 보통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흔히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자연의 이치를 거역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고(苦)를 면할 수 없지만, 개인이 살고 있는 가정, 사회, 국가, 지구, 우주와 더불어 살아가는 이치에 순응하며 살고 있는 사람은 고(苦)를 피할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마라, 걱정하지 마라, 걱정하지 마라.”라고 하신 것입니다.


유수(流水)라 함은 흐르는 물입니다. 흐르는 물을 한 점에서 바라보고 있으면 우리는 흔히 그 물이 그 물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분명히 앞서간 물과 뒤따라 흐르는 물은 다르지만 우리는 다른 것을 잘 느끼지 못하는 감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 번 흘러간 물은 다시 되돌릴 수 없습니다. 이러한 엄연한 진리를 바르게 인식하지 못하는 우리들을 깨우쳐 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쉽게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같다고 생각하고, 작년의 나와 금년의 내가 같다고 생각하며, 청년 시절의 나와 노년기에 들어선 나와 다른 것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리고 인생을 반복하여 살 수 있다고 착각하는 면도 있습니다.

인생은 시시각각 다르며 예행(豫行)이란 없다는 교훈이 유수(流水)입니다. 이것을 불가(佛家)에서는 제행(諸行)이 무상(無常)하다고 표현합니다. 이 세상에 어떠한 것도 시시각각 변하고 있기 때문에 변하지 않는 것은 이 우주에 아무것도 없다는 뜻입니다.


이 우주 전체가 찰나찰나 변하여 가고 있음으로 그 변화를 따라 나도 변하여 가지 않으면 뒤지게 되고, 뒤지면 고(苦)가 따른다는 말씀입니다. 유수(流水)와 같은 자기의 변화를 안다는 것은 자기의 몸과 마음의 변화를 아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 마음을 알기위하여 참구하고 자기 몸의 변화를 알기위해 정성을 다하지 않으면 유수와 같이 흐르는 자기의 몸과 마음을 알 수 없습니다.

알지 못하면 고(苦)가 따르기 마련입니다. 이 도리를 아는 사람은 항상 편안하게 몸과 마음을 다스려 인생을 즐길 수 있음으로 “걱정하지 마라, 걱정하지 마라, 걱정하지 마라.”라고 하신 것입니다.


만고광명(萬古光明)이라고 하는 만고(萬古)는 옛날이 만 번 있다는 말이니 시작이 없는 옛적부터라는 뜻이고, 만고광명은 시작이 없는 예로부터 비치는 밝음이라는 말입니다.

밝다는 것은 불가(佛家)에서 지혜 또는 반야(般若)를 의미 하며, 이를 불성(佛性)이라 합니다. 모든 중생에게는 시작이 없는 옛적부터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으니 이를 깨달아 청산유수(靑山流水)한 이치를 꿰뚫어 고(苦)를 여의고 낙(樂)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니 “걱정하지 마라, 걱정하지 마라, 걱정하지 마라.”라고 하신 것입니다.


2004. 12. 12.
시카고 불타사 주지 현성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