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선수행의 목적은 반야지(般若智)에 도달하여 실상을 보는 지혜


참선을 하는 목적은 이 법계의 진리를 깨달아 그 실상에 도달함에 있습니다. 그 실상을 열반이라고 이름 하였습니다. 진리를 깨달아 열반에 도달하는 지혜를 반야지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참선수행을 하는 목적은 궁극적으로 반야지(般若智)에 도달하기 위해서입니다. 반야지는 실상을 볼 수 있는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실상을 볼 수 있음으로서 우리들이 많은 문제를 사전에 해결하여 고통에서 벗어나 평화롭게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상은 항상 숨겨져 있기 때문에 실상을 보려면 꿰뚫어 볼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비유하여 예를 들면 수박을 사려는 사람이 수박 겉모양만 보고 수박을 살 수 없지 않습니까. 수박 속이 설익었는지 농했는지 달게 맛있게 익었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는 사람은 수박을 잘 고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수박을 살 때 수박 껍질을 먹기 위하여 사는 것은 아니고 수박 속을 먹기 위하여 사는 것이기 때문에 수박 겉이 아무리 먹음직하게 잘 생겼어도 속이 맛있는 것만 못합니다. 수박 속이 그 수박의 실상(實相), 즉 그 수박에게 실재하는 모습인 것입니다. 이 수박의 실상을 사실대로 볼 수 있는 지혜가 있는 사람은 수박에 관한 한 도사가 되는 것입니다.

수박 속을 들여다보듯이 이 만물의 실상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지혜를 관조반야라고 하고 그 실상을 볼 수 있는 지혜를 실상반야라고 한다.

우리가 사회생활이나 직장 생활을 함에 있어서도 하는 일의 속을 볼 수 있는 지혜는 성공의 비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혼 상대를 정함에 있어서도 상대방의 실상을 파악할 수만 있다면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이 꿰뚫어보는 지혜를 관지(觀智)라고 합니다. 이 관지를 닦기 위한 수행을 관선(觀禪)이라고 합니다. 이 관선이 바로 위빠사나 자나(vipassana jhana)입니다. 이 자나(jhana)를 중국사람들이 선나(禪那)로 음역한 것을 우리나라에서는 참선(參禪)이라고 불러왔습니다.

그리고 이 위빠사나 선수행을 하기 위한 수행력은 정력(定力)에서 나옵니다. 정력은 한 점에 집중적으로 전념하는 수행에서 쌓아지는 것입니다. 한 점에 집중하는 수행은 모든 잡념과 번뇌를 멈추어야 집중이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이 수행을 지선(止禪)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인도말로는 이 수행을 사마타 자나(samatha jhana)라고 합니다. 이 사마타 자나를 우리말로는 지선(止禪) 또는 선정(禪定)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수행은 잡념을 쉬게 함으로서 집중하는 수행이므로 수행자가 계와 율을 범하게 되면 한 점에 집중적으로 전념하는 수행에 장애를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지선 수행을 위해서는 계를 잘 지켜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이와 같이 하여 계정혜 삼학이 일치되었을 때 꿰뚫어 보는 지혜인 관지(觀智)가 발육하고 관지가 발육하면 자연히 반야지가 증장하는 것입니다. 반야지가 증장하여 실상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지혜를 증득하였을 때 타심통이 열리는 것입니다. 내가 목적하는 사람의 실상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지혜이니까요.


< 금강경 강의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