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시다

2009.09.20 15:40

현성 Views:9243

“돌아가시다, 돌아가셨다.”라는 말이 죽음을 의미하는 것은 불교적이라고 생각된다. 불교에서 ‘죽음’을 ‘돌아가시다’라고 표현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사람의 모습을 한 사람은 눈으로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몸을 가지고 있는데, 불교에서는, 이 몸은 흙, 물, 열, 바람 기운, 즉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이들은 모양과 색깔이 있는 것이라 하여 색(色)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몸의 눈, 귀, 코, 혀, 몸, 뜻은 사물과 접촉하면 그 접촉된 바를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며, 인식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이를 수상행식(受想行識), 혹은 마음의 작용이라 한다. 이들은 우리들의 감각(感覺)에서 시작되는 작용이라 하여 감각작용이라고도 하는데, 이 감각작용은 모양이나 색깔은 없고 다만 이름만 있다고 하여 명(名)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몸과 마음, 혹은 사람을 명색(名色)이라고도 한다.

명색(名色) 중에 명(名)이 전생(前生)에서 부모(父母)를 만나 색(色)을 받아 명색(名色)이 하나가 되었을 때 어머니에게 탁태(托胎)하여 자라기 시작하여 사람의 모습을 갖추어 이 세상에 태어나, 그 명색이 하루하루 변하면서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죽었다는 것은 하나가 된 명색(名色)이 분리되어 색(色)은 다시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돌아가고, 명(名)도 처음의 자리로 돌아간다고 하여 불교에서 죽음을 돌아간다고 한다.

그리고 또 부모를 택하는 것도 명(名)이 하는 일이고, 돌아가는 것도 명(名)이 하는 일이라 하여 명(名)을 그 사람의 주인공이라 한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생명(生命)은 목숨에 달려 있다고 하시고, 호흡을 잘 관찰하면 들이쉬는 숨에 의해 촉촉한 물 기운, 따뜻하거나 차가운 열 기운, 공기의 바람기운, 거친 흙 기운이 몸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고, 생각하고, 행동하며, 인식하는 작용을 하는데, 이러한 감각작용을 깊이깊이 관찰해 들어가면 감각작용은 점점 희미해지고 지각(智覺)작용이 있음을 알게 된다고 하셨다. 지각작용이란 감각작용으로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깨달은 지혜의 눈으로 봐 아는 것이다. 즉 우주의 법을 깨달아 지혜의 눈으로 본다는 뜻이다.

지혜의 눈으로 보면, 내가 들이쉬고 내쉬는 지수화풍(地水火風)이 바로 이 우주의 작용과 절대적인 연기(緣起) 작용을 하고 있음을 볼 수 있게 된다. 내가 들이쉬는 한 숨 속에 이 우주가 다 들어 있고, 내가 내 쉬는 한 숨은 이 우주전체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감각적인 눈으로 보면 사람과 사물만 보이지만, 깨달은 사람의 눈으로 보면 사람 위에 아수라와 하늘나라가 있고, 그 아래에 지옥과 아귀세계가 보인다고 한다.

또 모든 중생은 모든 가능성을 가진 청정한 본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 본성을 근본으로 하여 수많은 작용을 하게 된다. 이 작용에 의해 업(業)이 생기고 이 업에 의해 모든 중생들에게 희로애락(喜怒哀樂)이 있게 되는 사실을 지혜의 눈을 가진 사람들에게 보인다고 하셨다.

 

사람이 돌아가셨다고 할 때 몸은 지수화풍으로 돌아가지만 사람의 본성에 저장된 업은 가지고 돌아가, 업의 과보를 받아 다음 생의 몸을 받게 된다. 이 때 업은 중생이 하는 행위에 따라 변하지만 업을 담고 있는 근본은 조금도 변함이 없다.

사람들은 업에 따라 괴로운 일들이 많이 생기지만 본성대로 살아가면 괴로워할 일이 생길 수 없다. 그러나 사람들의 본성은 모양이 없으니 만질 수도 없고, 색깔이 없으니 볼 수도 없으며, 언어로나 글로서도 표현이 불가능해 일찍이 선사(禪師)들이 ‘한 물건’이라고 표현해 그를 설명하려고 했다.

이 ‘한 물건’은 저 하늘처럼 천지만물과 통하지 못하는 바가 없고, 그의 파장이 천지에 가득하여 움직임이 조금도 없으면서도 만족한 상태를 항상 이루고 있다고 한다. 이 ‘한 물건’의 성품을 법성(法性), 불성(佛性), 진성(眞性)이라고 부르는데, 이 성품은 일체중생이 똑 같이 누구나 다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성품이라 한다.

그러므로 몸을 새롭게 받았다고 하여 본성이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 아니요, 몸이 죽었다고 하여 본성도 죽는 것은 아니니, 본성은 불생불멸(不生不滅)이다. 그리고 이 불생불멸하는 성품이 나의 참 성품이니, 태어나는 것을 좋아하거나 죽는 것을 두려워할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마치 얼음이 생겼다가 녹을 수는 있지만, 얼음이 생겼다고 물의 성질이 없어진 것이 아니요, 얼음이 녹았다고 물의 성질이 새로 생긴 것은 아니니, 물의 입장에서 보면 물은 얼음이 되었어도 불생(不生)이요, 얼음이 녹았어도 불멸(不滅)이다.

이와 같이 사람으로 태어났다가 죽을 수는 있지만 진성(眞性)은 새로 생겼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니 진성은 항상 불생불멸이다.


깨달았다고 하는 것은 일체 감각적인 분별 심을 넘어 무아(無我)의 경지에 이르게 되어 지혜의 눈이 열려, 사물을 감각적인 안목으로 보지 않고 지혜의 안목으로 보고 듣고 생각하고 행동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지혜의 안목에서 사물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생각에서 벗어나 그날이 올 때까지 오로지 중생을 돕고자 하는 자비심이 일어나고, 자비심이 일어나는 곳에 지혜와 원력이 항상 함께하여 사회를 위해 끝없는 공덕을 쌓게 된다.

2009년 9월 21일

대한불교 조계종 시카고 불타사 주지 현성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