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誦經)과 간경(看經)

2011.02.20 22:56

현성 Views:8556

  경(經)을 외우는 송경(誦經)을 하기 위해서는 경을 듣는 청경(聽經)과 경을 읽는 독경(讀經)의 과정이 필요하다. 송경을 하면 경을 보는 간경(看經)이 되고, 간경을 하면 경을 지니는 지경(持經)이 된다. 사경(寫經)은 독경, 송경, 간경, 지경을 도와 그들을 촉진시키는 역할을 한다.

 

경(經)은 바로 부처님의 말씀을 글로 남긴 것이고, 부처님의 말씀은 부처님의 마음을 말로서 표현한 것이니, 부처님의 마음, 말씀, 그리고 글로 남긴 경이 부처님을 떠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하니, 경을 대할 때, 경을 바로 부처님을 대하듯 하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 온당하다.

그리고 경이 바로 부처님이라고 받아들이는 마음에는, 부처님이 바로 그 자리에 계시는 것이다. 경을 읽는 내 마음은 바로 부처님의 마음을 읽는 것이니, 내 마음에 부처님을 모시는 효과가 있게 된다. 곧 청경, 독경, 송경, 간경, 지경, 사경은 부처님을 내 마음에 머무르시게 하는 불사(佛事)라고 인식하는 불자들의 마음이다.

 

청경(聽經)은 독경하는 소리를 즐겨 듣는 것이다. 독경하는 소리를 즐겨 듣다 보면, 스스로 독경하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난다.

불교 신도들이 주로 하는 독경(讀經)은 천수경, 금강경, 반야심경, 법화경, 화엄경 약찬게 등이다. 청경을 하다가 스스로 독경을 시작하면 탐욕이나 음욕으로 밖으로 돌아다니던 마음이 자기 스스로를 바라보는 마음으로 변하게 된다.

독경을 즐겨하여 계속하다보면 경이 외워지는 단계에 도달하게 되는데, 이를 송경(誦經)이라 한다. 송경(誦經)하는 경전은 주로 반야심경, 신묘장구대다라니, 법성게, 예불문, 화엄경 약찬게, 천수경, 금강경 등이다. 이 외에도 경전 안에 있는 게송을 흔히 외우기도 한다.

 

예를 들면,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일체 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

약인욕요지 삼세일체불 응관법계성 일체유심조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구족신통력 광수지방편 시방제국토 무찰불현신.

이와 같은 경전이나 게송을 즐겨 외우다 보면, 부처님의 마음이 자기 마음에 머무르게 되어 어려움이나 두려움에 걸림이 없는 자기로 변해 있는 것을 느끼게 된다.

 

송경이나 사경을 하는 과정에서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상(相)이 상이 아닌 것을 보면 곧 여래를 보리라.’라고 했는데 ‘상(相)이 상이 아닌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부처님께서 어떠한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 라고 하는 마음이 일어날 수 있다. 이 마음은 부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의 마음을 보고자 하는 내 마음이다.

경을 통해 부처님의 마음을 보고자 함으로 이를 간경(看經)이라 하는데 간(看)자는 볼 간자이다. 간경(看經)은 참선에서 말하는 간화선과 같은 뜻을 가지고 있다. 간화선(看話禪)은 화두(話頭)를 간하는 반면, 간경(看經)은 경전 즉 부처님께서 그 말씀을 하실 때의 마음을 간(看)한다.

 

간경 중 부처님의 참뜻을 알아 차렸을 때, 이를 경전을 보는 눈이 열렸다고 해 경안(經眼)이라 한다. 경안은 곧 법을 보는 눈이니 법안(法眼)이다. 법안은 곧 부처님 마음의 눈이고, 부처님의 마음은 내 마음에 고유하게 있던 부처님의 성품이고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성품인 불성(佛性)이다. 경안(經眼)이 열렸다는 것은 이 불성(佛性)이 작용하고 있는 것을 깨닫게 된 찰나이다. 경안은 꿰뚫어 볼 수 있는 통찰의 눈이고, 지혜의 눈, 혜안(慧眼)이다. 반야심경에 나오는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의 “몸과 마음이 모두 공(空)한 것을 밝게 비추어 보니”의 “밝게 비추어 본다.”가 간경(看經)에서 얻은 경안(經眼)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경안(經眼)을 얻었으면 지혜와 방편을 두루 닦아 고통 받는 중생과 중생의 삶에 이익이 될 수 있는 불사(佛事)를 두루 행함으로서 현실적으로 부처님 마음과 내 마음이 같게 되는 단계를 경(부처님 마음)을 간직했다고 하여 지경(持經)이라 한다. 지경(持經)이 되면 밖으로는 일체의 상(相)이 공(空)하여 무상(無相)임을 깨닫고, 안으로는 일체의 번뇌는 체(體)가 없는 무체(無體)임을 깨달아 공적(空寂)함에서 지혜와 방편을 구족(具足)할 수 있게 된다. 지혜와 방편을 구족한 공적한 마음은 부처님과 같이 중생 제도에 전념하는 불사를 하게 된다. 이 공적한 마음이 지경(持經)하는 마음이다.

 

법안의 눈으로 보면 내 마음 안에 주(主)와 객(客)이 함께 있음을 알 수 있다. 잡생각을 일으키는 마음도 내 마음이고, 잡생각을 소멸하려는 마음도 내 마음이다. 잡생각이 주(主)가 되면 잡생각을 소멸하려는 마음이 객(客)이 되고, 잡생각을 소멸하려는 마음이 주(主)가 되면 잡생각을 일으키는 마음이 객(客)이 된다.

잡생각을 하는 나는 ‘가짜 나’라고 하여 가아(假我)라 하고, 잡생각을 소멸하려는 나는 ‘참 나’라 하여 진아(眞我)라고 한다. 가아는 잡생각이나 탐욕과 음욕을 좋아하고, 진아(眞我)는 잡생각, 탐욕과 음욕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 마음 속에 있는 이 두 가지 마음 중에 어느 것이 주(主)가 되고, 어느 것이 객(客)이 되느냐에 따라 고통(苦痛)과 행복(幸福), 성공과 실패가 결과적으로 일어나게 된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이 이치를 잘 모른다. 이 이치를 알 수 있는 사람들은 간경을 성공적으로 하신 수행자들이다.

 

경안(經眼)을 체험할 때까지의 수행 기간이 비교적 짧은 수행자도 있겠지만, 보통 20년 내지 30년이 지나도 깨닫지 못하는 수행자가 많고, 또 깨달았다고 하더라도 너무나 긴 세월을 요함으로 이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방법으로써 “내가 하는 몸짓을 내가 아는 수행, 내가 느끼는 감정을 내가 아는 수행,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번뇌를 내가 아는 수행, 나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내가 아는 수행”을 시작할 것을 권장한다.

습관적으로 “내가 하는 일을 아는 나”가 항상 거기에 있게 되면, 앞에서 설명한 주(主)와 객(客) 중 “아는 나”가 점차로 주(主)가 되게 된다. “아는 나”에 염력(念力)이 붙어 “아는 나”가 확고하게 자리 잡음에 따라 잡생각, 탐욕, 음욕이 멀어지고 참 나인 진아(眞我)에 가까워지게 된다. 진아(眞我)에 힘이 실리면 제상(諸相)이 비상(非相)이면 즉견(卽見) 여래(如來)라는 이치를 꿰뚫어 볼 수 있는 경안(經眼)이 열리게 된다.

 

이 수행을 지극한 마음으로 열심히 하는 수자(修者)는 2년 내지 3년이면 궁극적인 핵심을 볼 수 있는 경안(經眼)이 열릴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경안(經眼)이 열리면 궁극적인 실체를 볼 수 있는 눈[통찰력(通察力)과 지혜]을 가지게 됨으로, 무슨 일을 하더라도 성공시킬 수 있고, 편안할 수 있고, 즐거울 수 있으며, 행복할 수 있는 사람, 나와 같이 있는 남을 편안하게,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시카고 불타사 주지 현성 합장

2011. 2.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