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이치가 둘이 아니다

2008.12.02 08:43

현성 Views:8114

이치와 일은 둘이 아니다.

그 존귀함은 원융에 있다.


이사불이(理事不二)  귀재원융(貴在圓融)


- 법안 문익 선사


법안 문익(法眼 文益, 885~958) 스님의 법어다. 법안 스님은 선문 5종의 일파를 이루었다. 그 종풍의 특징은 화엄철학을 선의 실천으로 구현시키는 데 역점을 두어, 선과 교의 융합적인 경향을 띠고 있다. 그래서 이와 같은 법어가 전한다.


손발이 움직이는 것은 마음에 따르는 것이고, 마음은 나름대로의 이치에 따라 움직인다. 왼손을 올리고자 할 때 왼손이 올라가고 오른 발을 올리고자 할 때 오른 발이 올라간다. 손발이 움직이는 것은 일(事)이요 마음이 움직이는 것은 이치(理)이다.

손에 이상이 있어 마음이 손을 들고자 해도 손이 올라가지 않으면 문제가 있는 것이요, 손을 위로 들었는데도 마음이 알지 못하는 것도 큰 문제이다. 소변을 하고 싶은데 마음이 알아차리지 못하면 어떤 결과가 올 것인가.

발이 움직이는 것을 마음이 알아차리고, 마음이 발이 앞으로 가기를 원하자마자 앞으로 갈 때 몸과 마음은 분명히 다르지만 개별적으로 놀 수 있는 관계가 아니라고 해서 이사불이(理事不二)라고 하고, 몸이 마음에 따라, 마음이 몸의 사정에 따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을 때, 둘이 원만하게 융화하는 것이니, 이를 귀(貴)한 것이라 했다.


승가에서 수행하는 승려를 이판승(理判僧)이라 하고 수행하는 승려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공부에 필요한 제반사(諸般事)를 맡아 수고하시는 스님들을 사판승(事判僧)이라고 불렀다. 이판승은 물론 수행을 충실히 하면서도 사판승이 일하는 방법들을 연구개발해 주기도 했다. 그리고 사판승은 이판승들이 공부함에 필요한 것을 제공해 공부에 지장이 없도록 도왔다. 이 관계가 원만히 진행될 때 이판과 사판은 분명히 다르지만 그 관계가 보완 관계이므로 이사불이(理事不二)라 하고, 보완이 원만히 진행될 때 이를 존귀한 것이라고 한 것이다.


경영주(經營主)와 노동자와의 관계도 이와 같다. 요즈음 사회에서 경영주와 노동자간의 갈등이 심한 것은 원융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어려움이다. 경영주는 이판(理判)이고 노동자는 사판(事判)이다. 이들 불이(不二)관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둘이 개별적인 권리주장을 하다 보니 자연히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많이 있게 되는 것이다. 이는 원융하지 못해 귀(貴)한 것이 아니다.

연구실에서 종사하는 연구가들이 이판에 속하고 실험을 하고 그 결과에 따라 실물을 만드는데 종사하시는 분은 사판에 속한다. 이러한 관계의 이판과 사판은 아주 밀접한 관계에 있음으로 불이 아닌 불이(不二)이고, 이들이 원융하게 운영될 때 유용한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니 귀(貴)한 것이 되는 것이다.

법을 입법하는 국회의원이 이판(理判)이라면, 이를 집행하는 행정부는 사판에 해당된다고 본다. 입법부와 행정부가 불이(不二)관계에 있음으로 긴밀한 관계가 유지되어야만 이(理)와 사(事)가 원융하게 운영될 수 있다. 그렇지 못할 때 정쟁(政爭)이 심해지고 국가 운영이 어려워져 국민에게 많은 피해를 줄 수 있다. 이러할 때 이사(理事)가 원융하지 못하니 귀(貴)하지 않다.


종교 단체에서도 종교의 이념의 범위에서 운영계획을 짜는 일은 이판에 해당되고 그 계획을 집행해 나가는 것은 사판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도 역시 이판과 사판은 다르면서도 분이(分異)할 수 없는 불이(不二)관계에 있고, 계획과 실천이 원융하게 진행될 때 포교가 원만하게 진행 될 수 있으므로 귀(貴)한 것이나 양분(兩分)될 때 포교활동을 원만히 할 수 없게 됨으로 귀한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는 자는 이판(理判)이고 사용자는 사판(事判)이라고 볼 수 있다. 요즈음 같이 모든 일들이 세분화 되어 있는 삶에서는 세분화된 이(理)와 사(事)가 서로 원융하게 진행되는 것이 정말 진귀(珍貴)한 일이고, 원융하지 못할 때 사용자에게 주는 불편함과 손해가 지대하게 발생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다시 한 번 게송을 읊어보면,


이치와 일은 둘이 아니다.

그 존귀함은 원융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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