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이 모자람 없듯

2008.12.02 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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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이 나타나 이루어지면 일체를 구족하게 된다는 것은

마치 저 큰 허공이 모자람도 없고 남음도 없는 것과 같다.


佛法現成  一切具足  還同太虛  無欠無餘

불법현성  일체구족  환동태허  무흠무여


- 법안 문익 선사


법안 문익(法眼 文益, 885~958) 스님의 법어다. 법안 스님은 선문 5종의 일파를 이루었다. 그 종풍의 특징은 화엄철학을 선의 실천으로 구현시키는 데 역점을 두어, 선과 교의 융합적인 경향을 띠고 있다. 그래서 이와 같은 법어가 전한다.


불법(佛法)을 태허(太虛)에 비유한 것으로 보아 여기서 말하는 불법은 열반(涅槃), 최상의 진리, 무아(無我), 지도(至道), 반야바라밀에 해당하는 것으로 봐야한다고 믿는다. 반야바라밀이 나타나게 되려면 무아(無我)를 이루어야 한다.

무아(無我)란 글자 뜻으로 하면 ‘나는 없다’인데 그가 의미하는 바는 ‘나’라는 정체성(正體性), 즉 identity가 없다 이다. 곧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지키려하면 사람이라는 범위로 구속받게 되고, 한국 사람이라는 identity에 집착하게 되면 한국 사람이라는 범위로 구속되며, 흑인은 싫다고 하면 흑인에게 접근할 수 없는 한계를 가져오게 된다.

그러함으로 무아(無我)란 ‘내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내가 고집하는 정체성, identity가 없다’는 뜻이다. 마치 물이 무아(無我)라고 하면 물이 물이 아니라는 말이 아니라, 물에 정체성이 없어 모난 그릇에 가면 모나고, 둥근 그릇에 가면 둥글게 되며, 더운 곳에 가면 증발되고, 찬 곳에 가면 얼음이 되니, 언제 어디에 가도 자기를 고집하지 않고 상대와 하나가 되어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의미로 어떤 사람이 수행해서 일체 업장(業障)이 소멸되게 되면 무엇에도 걸림이 없게 되어 마음은 텅 비어있는 태허(太虛)와 같이 되어 무엇이 와도 그와 하나가 되어버리니 모자람도 없고 남음도 없다고 한 것이다.

모자람이 있으면 하나가 된 것이 아니요 남음이 있어도 하나가 된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이 완전무결하게 태허와 같은 상대와도 하나가 된다는 것은 능소(能所)가 없어진 하나를 의미한다. 이것이 불법(佛法)에서 궁극적으로 성취코자 하는 관문(關門)이다.

이러한 능소가 없는 관문으로 들어가는 것을 열반 혹은 반야바라밀이라고 하는데, 이 경지에서는 일체 몽상을 멀리 여의었음으로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안목을 가지게 되니 일체 괴로움을 소멸할 수 있는 능력이 있게 된다. 이러한 능력이 있는 것을 일체를 구족(具足)하고 있다고 하여 여의주(如意珠)라고도 부른다.   


불법(佛法)을 구현(具現)하기 위해서는 우선 일체 중생을 부처님으로 보고 그들을 공경하고 사랑하는 법부터 배우고 익혀가야 한다. 사람을 공경하고 사랑하는데서 많은 공덕(功德)을 쌓아갈 수 있다.

공덕(功德)이 쌓여짐에 따라 무위(無爲)를 얻을 수 있게 되는데, 무위(無爲)란 해야 할 일을 내가 조작해서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일이 될 수 있는 인연들이 저절로 모여져 일이 순조롭게 성사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옆에서 보기에는 신기한 일이지만 전생에서든 금생에 쌓은 공덕이 한 없이 많아 그 공덕의 은혜로, 즉 인과응보로 그 과보를 받는 것이다.


사람이나 자연을 공경하고 사랑함에는 무엇보다 마음이 순수하고 깨끗해야 한다. 더러운 마음으로 사람이나 자연을 공경할 수도 없고 사랑할 수도 없다.

마음이 순수하고 깨끗하게 되기 위해 잘못된 일들에 대해 끝없는 참회로서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게 결심하고 또 결심하는 것을 습관화해야 한다.    

수행 중에 더러운 마음이 재생(再生)되거나 지난날의 나쁜 습관이 다시 살아나 또 다른 실수를 범하게 되면 한 번 실수로 그 사람의 신뢰(信賴)가 무너지게 된다. 실수는 한 번이지만 잃어버린 신뢰는 다시 회복하기 지극히 어려운 법이니, 한 번 결심한 것을 퇴전하는 것은 평생 후회할 일이 될 수도 있다.

항상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즐겁게 찰나 찰나에 온 마음을 집중하여 남을 공경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면 그가 기도하는 바는 반드시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

항상 주어진 인연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화나는 일이 없어질 것이다.


이것이 법안선사께서 말씀하신

불법이 나타나 이루어지면 일체를 구족하게 된다는 것은

마치 저 큰 허공이 모자람도 없고 남음도 없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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