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자재(自由自在)

2009.01.18 02:12

현성 Views:12107

 배고프면 밥 먹고 피곤하면 잠자며

초록색으로 덮인 물과 청산(靑山)을 마음대로 소요하고

물고기 잡는 촌락이나 주막을 마음대로 다니며

조금도 차별하지 아니하니 근심이 없어 편안하구나.

오늘이 몇 년 몇 칠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飢來卽食  困來卽眠  綠水靑山  任意逍遙

기래즉식  곤래즉면  녹수청산  임의소요


漁村酒肆  自在安閑  年代甲子總不知

어촌주사  자재안한  년대갑자총부지


- 선가귀감, 청허 휴정 대사


청허 휴정스님은 조선 중기에 불교의 중흥을 위해 일생을 바치신 서산대사이시다.


서산대사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증도가(證道歌)라는 기분을 주는 게송이다.

“배고프면 밥 먹고 피곤하면 잠자며,”라고 하신 말씀은 배고프다는 신호가 오면 밥먹고, 피곤하다는 신호가 오면 잠잔다고 하니, 상대가 나에게 오는 그대로 비춰본다는 말씀이다.

성철스님께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고 하신 말씀과 똑 같은 말이다. 마치 맑은 거울과 같이 오는 그대로 비춰봐, 있는 그대로 안다는 뜻이다. 그러하니 보고 듣고 맛보는 사물에 대한 인식착오가 조금도 없다는 뜻이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비춰볼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하려면 일체 업장(業障)이 완전히 소멸되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마음속에 미세한 업장이라도 남아 있으면 그 업장이 바로 볼 수 있는 시력(視力)을 가리기 때문이다.


일체 업장이 소멸되었을 때 아무런 장애를 받지 않으므로 무아(無我)를 증득한 것이고, 무아를 증득하신 스님들의 마음은 푸른 하늘과 같아 맑고 깨끗해 걸림이 없고, 맑은 거울과 같아 무엇이나 오는 대로 사실 그대로 볼 수 있는 안목을 갖게 된다.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곧 지혜롭게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는 말씀이다. 일체 착오나 착각은 바로 보고 바로 듣지 못하는 데서 연유하기 때문이다.


“초록색으로 덮인 물과 청산(靑山)을 마음대로 소요하고” 라는 말씀은 산에 있는 나무를 잘라 쉴 곳을 만들려고 하거나 계곡에 흐르는 물을 이용하려고 웅덩이를 파는 짓을 하지 아니하고 녹색으로 우거진 청산(靑山)과 계곡에 흐르는 물을 있는 그대로 두고 그 아름다움을 마음껏 즐긴다는 말씀이다. 즉 무위(無爲)의 경지에 있음을 의미한다.

내가 조작해서 만든 것을 즐기는 것은 유위(有爲)라고 하고,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두고 즐기는 것을 무위(無爲)라고 한다. 불교에서 추구하는 열반의 낙이다. 조작해서 만든 것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싫증이 날 수 있지만 내가 조작해서 만든 것이 아닌 자연을 즐길 수 있는 것은 자연의 변화에 따라 항상 즐거움을 맛보게 된다. 즉 무위(無爲)의 즐거움은 변함없는 즐거움이다.


“물고기 잡는 촌락이나 주막(酒幕)을 마음대로 다니며 조금도 차별하지 아니하니 근심거리가 없어져 편안하구나.”는 무아(無我)의 경지에서 느낄 수 있는 자유를 묘사한 것이다. 마치 물이 모난 그릇에 가면 모난 그릇을 채우고, 둥근 그릇에 가면 둥근 그릇을 채워주듯이 부촌(富村)에 가면 부촌에 맞게 빈촌(貧村)에 가면 빈촌에 맞게 대하니 걸림이 없다는 말씀이다.

당시 양반은 하급 촌락이나 주막에 다닐 수 없는 관례에 구애받지 않고 빈촌(貧村)에 다니며 불법(佛法)을 그들에게 전하니 번뇌로울 것이 없고 오히려 편안하다는 말씀이다. 여기 한가롭다는 한(閑)자는 번뇌가 없어 마음이 한가하다는 뜻이다.


“오늘이 몇 년 몇 칠인지 도무지 알 수 없네.”라는 말씀은 하급 중생들을 돕는 일에 집중하다보니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 시간가는 줄 모른다는 말씀으로 해석된다.

이 게송을 이렇게 해석하고 보니 서산대사의 증도가라는 생각이 든다.


다시 한 번 게송을 읽어보면

배고프면 밥 먹고 피곤하면 잠자며

초록색으로 덮인 물과 청산(靑山)을 마음대로 소요하고

물고기 잡는 촌락이나 주막을 마음대로 다니며

조금도 차별하지 아니하니 편안해 걸림이 없구나.

오늘이 몇 년 몇 칠인지 도무지 알 수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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