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수행의 경계(관행경(觀行境))

수행의 경계(관행경觀行境):  
《그러므로 공한 가운데는 색도 없고 수상행식도 없다. 안이비설신의도 없고 색성향미촉법도 없으며 눈의 경계도 없고 내지 의식의 경계까지도 없다. 무명도 없고 또한 무명이 다함도 없으며 내지 늙고 죽음도 없고 또한 늙고 죽음이 다함까지도 없다. 고집멸도도 없으며 지혜도 없고 또한 얻을 것도 없느니라.》

시고공중무색 무수상행식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무안계내지 무의식계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무노사 역무노사진 무고집멸도 무지역무득
是故空中無色 無受想行識 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 無眼界乃至 無意識界 無無明 亦無無明盡 乃至無老死 亦無老死盡 無苦集滅道 無智亦無得

  우리로 하여금 공(空) 혹은 체(體)의 세계를 체험을 통하여 깨닫게 하기 위하여 위의 수행의 과정을 여섯 부분으로 나누어서 현상의 세계가 없음을 설하고 있다.

1) 공(空)의 참모습 즉, 진리의 세계

(1) 시고 공중무색 무수상행식(是故 空中無色 無受想行識)
      - (오온 五蘊)
     그러므로 공한 가운데는 색도  없고 수상행식도 없다.

가. 시고(是故)
     그러므로(이런 까닭에)
  앞에서 제 1단계로 공(空)의 성질(性)로 공(空)과 오온(五蘊)이 별개의 것도 아니고(不異)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님(卽是)을 「공과 오온의 관계」에서 그리고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에서 밝혔다. 제 2단계로 공(空)의 모습(相)은 생기는 것(生)도 아니고 없어지는 것(滅)도 아니며, 더러운 것(垢)도 아니고 깨끗한 것(淨)도 아니며, 늘어나는 것(增)도 아니고 줄어드는 것(減)도 아님을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에서 밝혔다.

〈시고(是故)〉〈그러므로〉 라고 말을 이어서 제 3단계로 공(空)에 대한 수행적 단계를 설한다. 그 수행적 단계는 오온설, 십이처설, 십팔계설, 십이연기설, 사제설, 지혜, 열반설 (五蘊說, 十二處說, 十八界說, 十二緣起說, 四諦說, 智慧, 涅槃說) 등을 깊이 수행하면 이들이 모두 실상으로서는 존재치 않음을 체험한다고 설한다.

나. 공중무색 무수상행식 (空中無色 無受想行識)
     공 중에는 색도 수상행식도 없다.
  공중(空中)은 진리 혹은 본질이란 뜻이다. 색수상행식을 다섯 가지의 쌓임이라 하여 오온(五蘊)이라 하고 이에 대한 설명을 오온설이라고 한다. 색(色)은 물질, 돈 또는 육체적 욕구 등을 의미하고 수상행식은 정신작용을 의미한다. 모두 합하면, 「본질적으로 보면 물질과 정신작용은 모두 없다」는 의미이다. 오온에 대한 설명은 앞장에서 이미 하였으므로 참조하기 바란다.

다음의 한 시로서 그 의미를 부각하여 보고자한다.
〈눈앞에 활짝핀 꽃〉은 물질인 색(色)
〈한숨에 반해〉는 느낌인 수(受)
〈꺾을까 말까 망설이다가〉는 생각하는 상(想)
〈유혹에는 약한가 그만 꺾고 말았네〉는 행위인 행(行)
〈님에게 공양하니〉도 동작으로서 행(行)
〈그 향기, 적적한 마음에 다정한 벗이라〉는 인식작용인 식(識)

「공중무색 무수상행식」의 의미는 진리의 세계에는 꽃(색)도 없고, 반하는 느낌도 없고, 망설이는 생각도 없고, 꺾는 동작도 없고, 공양 올리는 동작도 없고, 다정한 벗이란 인식도 없다는 것이다. 분명히 꽃이 있는 것을 없다고 하고, 예쁘다는 느낌이 있는데 없다고 하고, 생각이 있는 데 없다고 하고, 행동이 있는데 없다고 하고, 인식이 있는데 없다고 하니 범부들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진리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 수행이 필요한 것이다. 수행을 통하여 〈없는 것〉을 체험하거나 깨달을 수 있다.

  본질적 세계를 살펴보자. 꽃씨는 공중에 매여 있어서는 꽃을 피울 수 없다. 꽃씨는 땅속에 묻혀야 하고, 적당한 습기가 있어야하고, 온도와 공기가 있어야 싹이 터서 자라 꽃을 피울 수 있다. 이러한 여건의 구비함이 없이 홀로 꽃을 피울 수 없는 까닭에 꽃은 본질적으로 보면 공(空)하여 없다는 것이다. 어느 조건이든 한 가지만 구비하지 못하면 꽃나무가 자랄 수 없고 바람이 너무 세게불어도 비가 너무 많이 와도 꽃이 피기 전에 꽃나무가 없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신작용에 있어 느낌(受)은 눈을 통하여 꽃을 보았다. 눈이란 육체의 한 부분이고 육체는 흙기운, 물기운, 열기운, 바람기운의 여건을 갖추어 있으므로 불완전하고 눈이라는 독립된 체(體)가 없다.

  느낌은 그 불완전한 눈을 통하고 각자의 업을 통하여 느낌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업이란 다생겁을 통하여 누적된 업과 금생에 습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환영(幻影)과 같은 업을 통하여 보는 것이므로 예쁘다는 느낌도, 꺾을까 말까하는 생각도, 꺾는 행동도 공양 올리는 행동도, 벗으로 인식하는 작용도 모두 환영(幻影)으로 있다고 보는 것이지 실제로는 없다는 것이다.

  만일 꽃이 본질적으로 있는 것이고 예쁜 것이면 100사람이 모두 똑같은 느낌과 생각과 행동과 인식을 하여야 하겠지만 사실 100사람이 한 꽃을 보고 100가지의 느낌, 100가지의 생각, 100가지의 행동, 100가지의 인식을 할 것이다. 그리고 같은 사람이라도 시간에 따라 느낌과 생각과 행동과 인식이 다를 것이다. 만일 꽃이 본질적인 실상이라면  100사람이 실상인 한 꽃을 보고 느낌과 생각과 행동과 인식이 다 다를 수 없다. 또 실체인 사람이 실체인 꽃을 본다면 시시각각으로 느낌과 생각이 다를 수도 없다. 그러므로 실제는 모두가 환의 느낌, 환의 생각, 환의 행동, 환의 인식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본질적으로는 실제 꽃도 없고, 아름답다는 느낌도 없고, 꺾을까 말까하는 생각도 없고, 꺾는 행위도 공양 올리는 행동도 없고, 벗이란 인식도 없다고 하는 것이다. 오직 환영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리들이 100% 확신하는 일도 우리들의 업의 작용, 육체적 정신적인 여건의 작용, 그 보는 물건 자체의 여건으로 말미암아 완전한 착각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100% 자기부정(自己否定)을 하는 수행을 통하여 산을 산으로 볼 수 있는 지혜를 구하여야 함을 가르치고 있다.  

이와 같이 철저하게 현실적인 우리들의 감각을 부정하는 것에는 역사적인 배경이 있다.

오온(五蘊)∙십이처(十二處)∙십팔계(十八界)를 합하여 삼과(三科)라고 하는데 부파불교(部派佛敎) 당시에는 이 삼과(三科)가 ‘있다’고 하는 것을 중요한 교리체계로 하여 불교 세계관의 골격으로 삼았다. 부처님께서 입멸하신 후 삼 사백년이 경과하면서 정치 경제 사회 종교 철학 등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승가에서는 물질이 ‘있다’는 것을 기정사실로 하고 그 존재를 분석하고 사물을 분별하는 수행이 왕성하였다. 성속(聖俗)이 완전히 다르고, 번뇌와 해탈 미혹과 깨달음 지옥과 열반이 완전히 다르고, 선과 악이 다른 것이 존재한다고 보고 수행하는 것 등이다. 이러한 수행에 몰두하는 출가승들은 자신들이 상구보리한다고 인식하였으나 결과적으로 삼과(三科)가 있다는 것에 지나치게 집착하였고 시대 변화에 따르는 대중들의 고통 해소에 도움을 주지 못하였다.

부파불교 시대에 와서 삼과(三科)가 ‘있다’고 하는 개념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부파를 비판하고 초기불교 당시의 삼과(三科)의 근본 뜻으로 복고(復古)하자는 사상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복고(復古)운동을 시작한 파에서 삼과(三科)가 ‘있다’고 하는 파를 소승불교라고 하고 삼과가 ‘없다’고 주장하며 부처님의 본래의 뜻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을 대승불교라고 스스로 칭하였다. 《반야경》은 대승불교 운동을 교리적으로 뒷받침하는 경이기 때문에 어느 대승경전보다도 철저하게 삼과(三科)가 없음을 내 세우는 “무(無)”자를 세웠다. 《반야경》의 ‘무(無)’자는 소승불교의 잘못된 점을 비판하고 공격하는 형식을 취한 대서 비롯되었다. 그 후 ‘무(無)’의 사상이 너무 지나쳐 허무주의에 빠진다고 하여 이를 대치하기 위하여 일어난 것이 유식(唯識)이다. 유식(唯識)이니까 ‘있다’는 것을 주장하는 점에서는 소승불교와 같지만 소승불교에서는 외계의 대상이 있다고 보는 것에 대하여 유식에서는 외계의 경계는 없고 오직 마음만이 있다고 하는 점에서 다르다. 유식에 의하여 《반야경》을 유식적으로 해석하여 《반야경》에 유식적인 성향이 많이 있는 것으로 해석하게 되어 소승적인 사유와 유식적 사유를 고려하는 반야로서 가장 중도를 이루는 《반야경》의 해석이 가능하게 되었다.  

※ 중국 선종(禪宗)의 제5조 홍인(弘忍)스님이 법(法)을 전하고자 제자들에게 게송을 하나씩 지어오라 했다.

수제자인 신수(神秀)스님이 다음과 같은 게송을  지었다.

신시보리수 심여명경대 시시근불식 물사야진애
身是菩提樹 心如明鏡臺 時時勤拂拭 勿使惹塵埃

몸은 보리수이고
마음은 명경대와 같으니
매양 부지런히 털고 닦아
때와 먼지가 끼지 않도록 하라

 그러나 홍인조사는 신수(神秀)의 글이 아직 핵심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有의 세계를 벗어나지 못하였음) 신수스님의 깨침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 때 방아를 찧고 있던 혜능(慧能)이 이 소식을 듣고 한 게송을 지었다.

보리본무수 명경역비대 본래무일물 하처야진애
菩提本無樹 明鏡亦非臺 本來無一物 何處惹塵埃

깨달음에는 본래 나무가 없고
밝은 거울(智慧)도 틀이 없는 것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어디에 때와 먼지가 끼겠는가.

이 시 한 수로 혜능스님은 방아 찧는 행자생활에서 오조 홍인대사의 법맥을 잇는 육조 혜능선사가 되었다. 게송에서도 깨달음의 세계에는 본래 한 물건도 없다고 하였다. (非有(無)에서 끝난 시詩이다)

신수스님의 시(詩)는 존재의 있음(有)를 벗어나지 못하였고, 혜능스님의 시는 공(空) 즉, 비유(非有)를 넘지 못하였다. 혜능스님의 시(詩) 다음에 공공(空空, 非非有)의 중도(中道)와 용(用)을 의미하는 아래와 유사한 게송이 나왔어야 했다고 강주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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