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화경]제2 방편품(方便品)

2007.10.26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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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량심(四無量心) - 자비희사(慈悲喜捨)
사무애(四無礙) - 법의사변(法義詞辯)
십력(十力) -
                ① 처비처지력(處非處智力)
                ② 업이숙지력(業異熟智力)
                ③ 정려해탈등지지지력(靜慮解脫等持至智力)
                ④ 근상하지력(根上下智力)
                ⑤ 종종승해지력(種種勝解智力)
                ⑥ 종종계지력(種種界智力)
                ⑦ 변취행지력(遍聚行智力)
                ⑧ 숙주수념지력(宿住隨念智力)
                ⑨ 사생지력(死生智力)
                ⑩ 누진지력(漏盡智力)
사무소외(四無所畏) -  
                ① 정등각무외(正等覺無畏)
                ② 누진무외(漏盡無畏)
                ③ 설장법무외(說障法無畏)
                ④ 설출도무외(說出道無畏)

여래 십력(十力)은
① 처비처지력(處非處智力) - 도리(道理)와 도리 아닌 것 (혹은 진리와 진리 아닌 것)을 알아 인간에서 천상에 이르는 길을 아는 지혜의 힘.
② 업이숙지력(業異熟智力) - 전생과 금생에 지은 업과 그 업으로 말미암아 일어날 업보(業報)를 알아 일체중생을 이롭게 할 줄 아는 지혜의 힘.
③ 정려해탈등지지지력(靜慮解脫等持至智力) - 선정(禪定)에 통달하여 모든 죄업(罪業)의 구속에서 해탈하고 일체가 평등하다는 최상의 깨달음을 얻어 이를 유지하여 일체 중생을 이롭게 할 줄 아는 지혜의 힘.
④ 근상하지력(根上下智力) - 중생의 높고 낮은 근기를 알아 그에 맞게 대할 줄 아는 지혜의 힘.
⑤ 종종승해지력(種種勝解智力) - 법을 듣는 사람이 이해하는 수준에 따라 그에 맞게 법을 설할 줄 아는 지혜의 힘.
⑥ 종종계지력(種種界智力) - 부처님의 법을 묻는 사람이 욕계, 색계, 무색계  삼계(三界) 중 어느 법계에 속하는 사람이며, 욕계에 속하는 사람이라면 지옥, 아귀, 축생, 사람, 아수라, 하늘 육도(六道) 중 어느 세계의 성품을 가진 사람인지를 알아 볼 수 있어 그에 맞게 대답할 수 있는 지혜의 힘, 천안통(天眼通),
⑦ 변취행지력(遍聚行智力) - 행자(行者)가 두루 쌓은 수행의 정도를 알아 그를 깨달음으로 인도할 수 있는 지혜의 힘, 타심통(他心通)
⑧ 숙주수념지력(宿住隨念智力) - 중생이 전생(前生)에 지은 모든 업을 분명히 알아 현세에 일어나고 있는 일을 인과응보의 법칙에 따라 자세히 설명하여 그들을 바르게 인도할 줄 아는 지혜의 힘, 숙명통(宿命通).
⑨ 사생지력(死生智力) - 사람이 죽을 때 이 생에서 지은 업에 따라 죽어 내생(來生)에 태어나 일어날 모든 일들을 분명히 알아 그로 하여금 내생에 일어날 고통을 미연에 방지하고 윤회에서 해탈하는 법을 가르치는 지혜의 힘.
⑩ 누진지력(漏盡智力) - 사람이 모든 번뇌를 다 끊으면 무명에서 벗어나게 되고 무명에서 벗어나게 되면 지혜를 얻어 위없이 높은 정등각(正等覺)을 이루는 길을 가르치시는  지혜의 힘 등 열 가지 부처님의 힘이다.
부처님께서는 이와 같은 십력을 깨달음을 통해 증득하셔서 중생을 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하여 필요한 방법을 선택하셔서 사용하셨다.
조용하게 생각하여 보면 여래의 십력은 여래와 같은 정도는 아니지만 우리들 모두가 조금씩은 가지고 있으며 일상생활에서 활용하고 있다. 꿈자리가 좋다 나쁘다든지, 예감이 좋다 나쁘다든지, 인상이 마음에 든다 안 든다, 하나를 보면 열 가지를 안다든지, 뜻밖에 연을 만난다든지, 이런 사업을 해서 될 것 같다든지 실패할 것 같다든지 하는 등 수없이 많다. 이와 같이 오는 예감을 바로 해석만 할 수 있는 지혜만 있어도 우리들의 생활에 큰 힘이 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앞날에 있을 일을 예감하면서도 그 뜻을 바르게 해석하기에는 우리들의 마음이 너무 번거롭고 복잡하다. 우리들의 마음을 항상 조용하게 하라, 쉬라, 가라앉히라, 놓아버려라, 등 여러 가지 수식으로 우리들이 적정(寂靜)한 마음을 가지라고 부처님께서 가르치셨다. 조용함으로서 외계에서 오는 통신을 접수할 수 있는 기능이 소생한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염불, 독경, 법문을 통해서 여래의 십력을 조금이나마 증득하고자 한다. 이 십력은 위대한 힘이고 누구나 갖기를 원하지만 스스로 생활 속에서 증득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 방법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하루하루의 생활 속에서 나의 마음을 차분하고 조용하게 하고 정신을 맑게 하는 수행이다. 생활 자체를 수행의 일환으로 하여야 한다. 생활을 떠나서 수행이 따로 없다. 우리가 수행하는 목적은 생활 속에서 나의 생활을 향상시키고 생활 속에서 만족을 구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사무애변(四無礙辯) - 법의사변(法義詞辯)
사무애변(四無礙辯)혹은 사무애(四無礙)라고도 하는데 네 가지 걸림이 없음이란 법의사변(法義詞辯) 무애이다. 법무애(法無礙)의 법은 진리를 의미하는 법이다. 부처님께서 우주의 진리와 생노병사의 진리를 통달하여 걸림이 없으시다는 의미이다. 이는 불법승(佛法僧) 삼보의 불에 해당한다.
의무애(義無礙)는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진리가 중생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를 통달하여 걸림이 없으시다는 의미이다. 이는 불법승 삼보의 법에 해당한다.
사무애(詞無礙)는 부처님께서 대중들에게 설법하실 때 처음과 중간과 끝이 한결같이 명료하고, 대중이 모두 알아들을 수 있는 말씀을 하시어 이들을 바른 길로 인도함에 걸림이 없으시다는 의미이다. 불법승 삼보 중에 승보에 해당한다.
변무애(辯無礙)는 청중(聽衆) 가운데 아무리 지식이 높고 지위가 높으며 말 잘하거나 무도(無道)한 사람들이 있어 법 거량을 해 온다 해도 변재(辯才), 즉 말 잘하는 재주가 있어 이들을 능히 조복(調伏)받아 이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심에 걸림이 없으시다는 의미이다. 불법승 삼보 중에 승보.
법무애(法無礙)와 의무애(義無礙)는 상구보리(上求菩提), 사무애(詞無礙)와 변무애(辯無礙)는 하화중생(下化衆生)으로 보는 것이 마땅하다.

사무소외(四無所畏) -  
                ① 정등각무외(正等覺無畏)
                ② 누진무외(漏盡無畏)
                ③ 설장법무외(說障法無畏)
                ④ 설출도무외(說出道無畏)

① 정등각무외(正等覺無畏)
부처님이 일체가 평등하다는 정각을 이루셨다는 마음을 가짐에 조금도 두려움이 없다. 정각을 이루셨음을 자신 있게 말하고 행동할 수 있다.
② 누진무외(漏盡無畏)
누(漏)는 샌다는 뜻이고 진(盡)은 다한다는 뜻이니 합치면 새는 것이 다한다, 번뇌가 다한다, 무명이 다한다, 어리석음이 다했다는 뜻이니 누진무외는 모든 번뇌가 다하고 어리석음이 다하여 무명(無明)이 다했다는 마음을 가짐에 조금도 두려움이 없으며, 그렇게 말하고 행동함에도 조금도 두려움이 없다.
③ 설장법무외(說障法無畏)
법다운 삶에 장애가 되는 법을 설함에 조금도 두려움이 없다. 종교를 잘못 믿어 법다운 삶에 장애가 되는 법도 있고, 사상이나 자유와 평등에 대한 개념을 잘못 이해하여 법다운 삶에 장애가 되는 법도 있으며, 자신의 사유(思惟)의 습관이나 말과 행동의 습관이 법다운 삶에 장애가 되는 법일 수도 있다. 부처님께서는 중생의 근기에 따라 일어나는 어떠한 장애도 설파(說破)함에 두려움이 없으시다.
④ 설출도무외(說出道無畏)
수행자가 팔정도(八正道)를 수행하여 완성하는 길을 설함에 조금도 주저함이 없고 두려움이 없으시다.
① 정등각무외(正等覺無畏)와 ② 누진무외(漏盡無畏)는 상구보리(上求菩提), ③ 설장법무외(說障法無畏)와 ④ 설출도무외(說出道無畏)는 하화중생(下化衆生).
                                
오늘은 「십여시(十如是)」에 관하여 공부하고자 한다.
「십여시」는 부처님만이 아시는 것으로 범부들에게는 불가사의한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나 여래의 십력도 우리들에게는 불가사의한 것이지만 무엇을 십력이라고 하는지 앎으로서 우리가 부처님을 찬탄하는 이유를 알 수 있듯이 「십여시」도 아는 것이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된다.
「십여시」란 여시상(如是相), 여시성(如是性), 여시체(如是體), 여시력(如是力), 여시작(如是作), 여시인(如是因), 여시연(如是緣), 여시과(如是果), 여시보(如是報), 본말구경(本末究竟)의 열가지 여시(如是)이다. 그 뜻은 우리들이 보는 물건 하나하나는 우리들이 보고 듣고 만지는 그대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꽃이고, 저것은 자동차이고, 저 사람은 빚에 쪼들리고, 이 사람은 직장에서 해고를 당하고, 나는 가슴이 답답하고 하는 것과 같이, 보고 듣고 만지는 것이 있는 그대로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모습에는 성질도 있고, 그 성질의 바탕이 있으며, 그 바탕에는 힘이 있고, 힘은 작용을 하며, 작용을 하는 것은 원인이 있고, 원인은 연을 만나고, 인과 연이 만나면, 결과가 있고, 그 결과는 그와 같은 과보를 받는다. 이와 같은 과정은 처음과 끝이 꿰뚫어져 있다.
이와 같은 사고방식은 불법(佛法)을 배우지 않은 사람들이 보통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생활 방식이다. 이것을 세속의 진리라고 하여 속제(俗諦)라고 한다. 이는 생멸(生滅)의 세계를 당연하게 받아드리는 속제(俗諦)이다.

다음에는 글자의 순서를 돌려서 시상여(是相如), 시성여(是性如), 시체여(是體如), 시력여(是力如), 시작여(是作如), 시인여(是因如), 시연여(是緣如), 시과여(是果如), 시보여(是報如), 본말구경(本末究竟)을 열가지 여시(如是)로 삼는다. 그 뜻은 ‘이 모습은 여여(如如)하다’이다. 여여는 진여 혹은 진리라는 뜻이므로, 진리로서의 모습이다. 진리로서의 모습에는 진리로운 성질이 있고, 진리로운 성질에는 진리로운 바탕이 있으며, 진리로운 바탕에는 진리로운 힘이 있고, 진리로운 힘에는 진리로운 작용이 있고, 진리로운 작용에는 진리로운 원인이 있고, 진리로운 원인은 진리로운 연을 만나며, 진리로운 인과 연이 만나면 진리로운 결과를 낳고, 진리로운 결과는 진리로운 과보를 받으며, 진리로운 처음과 끝은 진리롭게 꿰뚫린다는 뜻이다. 여여(如如)한 표면의 모습은 그 내면의 여여한 세계를 표출한 것에 불과하며, 내면이 여여하면 외면이 여여하며, 원인이 여여하면 결과도 여여하며, 결과가 여여한 것은 원인이 여여하였던 것이고, 그 과보도 역시 여여하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과정을 진여세계의 진리라는 뜻으로 진제(眞諦)라고 한다. 여여(如如)함이 진제(眞諦)라 함은 불생불멸의 세계이다.

글자를 또 돌려서,  상여시(相如是), 성여시(性如是), 체여시(體如是), 역여시(力如是), 작여시(作如是), 인여시(因如是), 연여시(緣如是), 과여시(果如是), 보여시(報如是), 본말구경(本末究竟等) 열가지 여시(如是)이다.
상여시라고 할 때 시(是)는 시비(是非)라고 할 때 “옳고 그르다”는 뜻으로서의 시(是)이다. 그러므로 상여시는 이 “모습이 옳은 것과 같이”라는 뜻이 된다. 옳다는 것은 바르다는 뜻으로 정도(正道) 또는 중도(中道)를 의미한다.
중도인 상(相)은 중도인 성질을 가지고 있고, 중도인 성품은 중도인 바탕을 가지고 있고, 중도인 바탕에는 중도인 힘이 있고, 중도인 힘은 중도인 원인이 있고, 중도인 원인은 중도인 연을 만나면, 중도인 인과 연은 중도인 결과를 가져오고, 중도인 결과는 중도인 과보를 가져온다. 중도인 처음과 끝은 중도를 꿰뚫는다.
우리들은 우리들의 생활 속에서 세속에 물들지 말고 진리의 세계를 성취함을 가장 이상으로 할지언정 진리에 집착하지 말고, 모든 현실 세계의 속제와 진리의 세계인 진제를 감안하여 지혜롭게 현실을 혁신하여 속제와는 멀어지고 진제와는 가까워지는 중도를 택하라는 뜻이다. 우리의 생활을 통하여 현실의 고(苦)를 멀리하고 지혜로서 낙(樂)을 가까이하는 방편이다.
이 십여시는 참선법을 가르치는 이론이다. 참선수행을 할 때, 속제 진제 중도의 방향을 돌려가면서 관하기도 하고, 일시에 삼제(三諦)를 동시에 관하기도 하여, 각 삼제를 점차 정확하고 세련되게 관하는 것을 수행의 목표로 삼는다. 우리들의 사고 능력을 기르고 좋은 해결법을 찾는 훌륭한 방법이다. 이것을 일심삼관(一心三觀)이라고 한다. 일심삼관(一心三觀)은 일념삼천설(一念三千說)로 전개된다.
일념삼천설이란 화엄(華嚴) 십계(十界), 즉 지옥, 아귀, 축생, 인간, 아수라, 천의 육도 중생계에 성문, 연각, 보살, 불의 사성계(四聖界)를 합한 십계(十界)가 호구(互具)함으로 100계, 이 100계에서 십여시(十如是)를 관하므로 천(千)이 되고, 십여시에 삼종(三種)이 있어 일심삼관(一心三觀)함으로 선(禪)에서 일념삼천(一念三千)을 한다는 일념삼천설(一念三千說)이 전개된다.


[※리포트 제출 : 중간 시험]
레터 사이즈 용지에 10point 글자 크기를 사용하여 한 장 정도의 분량으로 다음 제목 중 하나를 선택하여 리포트를 작성해서 다음 주 강의 시간에 발표하고 스님께 제출한다. 단,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으시는 분은 원고지 1500자 정도면 된다.

(1)법화경 서품
(2)아라한
(3)여래십호
(4)사무량심(四無量心)
(5)사무애(四無礙)
(6)사무소외(四無所畏)
(7)십력(十力)
(8)십여시(十如是)
(9)모든 부처님이 이 세상에 출현하신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오탁(五濁)

▪겁탁(劫濁) - 오랜 세월이 흐르는 사이에 쌓이고 쌓인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흐려진 마음.
▪번뇌탁(煩惱濁) - 이루지 못할 일이나, 허망한 일이나, 쓸데없는 일로 일으키는 복잡한 생각으로 흐려진 마음.
▪중생탁(衆生濁) - 오욕(五慾) - 부욕(富欲), 성욕(性慾), 명예욕(名譽慾), 식욕(食慾), 수면욕(睡眠欲) 등 중생의 탐욕으로 인하여 흐려진 마음.
▪견탁(見濁) - 종교, 사상, 과거 경험에 의한 식견 등 어떤 관념에 사로잡혀 흐려진 마음.
▪명탁(命濁) - 명(命)을 갈구(渴求)하는 욕심으로 흐려진 마음.

아만자긍고(我慢自矜高) 첨곡심불실(諂曲心不實)
어천만억겁(於千萬億劫) 불문불명자(不聞佛名字)
역불문정법(亦不聞正法) 여시인난도(如是人難度)

시고사리불(是故舍利弗) 아위설방편(我爲設方便)
설제진고도(設諸盡苦道) 시지이열반(示之以涅槃)
아수설열반(我雖設涅槃) 시역비진멸(是亦非眞滅)
제법종본래(諸法從本來) 상자적멸상(常自寂滅相)
불자행도이(佛子行道已) 내세득작불(來世得作佛)

아만자긍고(我慢自矜高) 첨곡심불실(諂曲心不實)
아만과 자부심이 높고 자기의 지조를 굽혀가며 아첨하는 불실(不實)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어천만억겁(於千萬億劫) 불문불명자(不聞佛名字)
천만억겁동안에도 부처님 이름 자(字) 듣지 못하며

역불문정법(亦不聞正法) 여시인난도(如是人難度)
또한 정법(正法) 듣지 못하니 이러한 사람들은 제도하기 어렵다.

여기에서 부처님의 이름을 듣지 못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지 못했다고 하는 것은 부처님을 뵌적이 없다거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은 적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 아만 자부심 아첨 등 불실(不實)한 마음이 너무 강하여 부처님을 뵈어도 부처님이 보이지 않고, 부처님의 말씀을 들어도 부처님의 가르침이 들리지도 않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시고사리불(是故舍利弗) 아위설방편(我爲設方便)
사리불아 사정이 이러하니 나는 방편법을 설하여서

설제진고도(設諸盡苦道) 시지이열반(示之以涅槃)
모든 고통을 없애는 길(방법)을 설명하고 이로써 열반을 나타내 보이느니라.

아수설열반(我雖設涅槃) 시역비진멸(是亦非眞滅)
내가 비록 열반을 설하였지만 이것 역시 진실로 (고통을) 소멸한 것은 아니니라.

제법종본래(諸法從本來) 상자적멸상(常自寂滅相)
모든 법(진리)은 본래부터 항상 스스로 고요하고 고요함도 없어지는 모습이니

불자행도이(佛子行道已) 내세득작불(來世得作佛)
부처님의 아들들이 수행을 이와 같은 길(방법)로 해 마치면 내세에 성불하리라.
행도이(行道已)의 행도(行道) 수행의 길이 무슨 뜻인가?
상자적멸상(常自寂滅相)이 수행의 길이다.
우리 중생의 ‘참 나’는 항상 스스로 -누가 만든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고요하게 있으면서 고요함 마저 멸한 모습이 있어 ‘참 나’가 나의 수행하는 길을 인도한다. 이끌어주는 대로 그대로 따라가 그 길의 끝자리에 와 마치면 그것이 곧 성불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주인공에게 맡겨라’가 된다.

생각으로나 방편법이나 열반을 설명하시는 부처님의 말씀을 들어서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열반에 가지 못한다.
각자의 ‘참 나’에게 귀의해서 ‘참내’가 가르치는 대로 수행하라.
그러면 반드시 끝이 보일 것이다.  

사견(私見)이지만 설사 법화경의 뜻을 잘 이해하지 못하거나 뜻을 모른다고 하더라도 법화경 독송을 하거나 사경을 일념(一念)으로 하면 산만한 마음, 복잡한 마음 등이 모두 정리되고 마음이 순일(純一)해짐에 따라 ‘참 나’에게 귀의하게 되고, ‘참내’가 개시(開示)하는 대로 따라가다 보면 오입(悟入)하게 된다.
현성스님같이 뜻을 정확하게 알려고 따지거나 애쓰지 말고 뜻은 잘 몰라도 좋으니 독경이나 사경을 일념으로 하라.

시제세존등(是諸世尊等) 개설일승법(皆設一乘法) 화무량중생(化無量衆生)
영입어불도(令入於佛道) 우제대성주(又諸大聖主) 지일체세간(知一切世間)
천인군생류(天人羣生類) 심심지소욕(深心之所欲) 갱이이방편(更以異方便)
조현제일의(助顯第一義)

이 모든 세존들께서는 모두 일승법(一乘法 - 개시오입(開示悟入))을 설하시어 무량한 중생을 교화하시고 이들로 하여금 불지견도(佛知見道)에 들게 하시며 또 모든 대성주(大聖主 성인 중에 상수(上首) = 부처님)께서는 일체세간에 사는 모든 하늘, 사람, 중생류(衆生類)가 그들의 깊은 마음속에서 원하는 바를 모두 알아서 거듭 각기 다른 방편으로써 제일의(第一義 - 진제(眞諦), 궁극적 진리, 공(空))를 나타내 보이는 보조(補助)를 삼는다.  
요약하면, 중생의 깊은 마음속에 각기 원하는 바가 있겠지만 부처님께서는 방편의 도움을 받아 중생 각자의 존재의 제일의(第一義) 즉, 궁극적 진리를 나타내 보임으로서 중생을 교화하여 그들이 또 중생을 교화하는 불도(佛道)에 들게 한다는 의미이다.  

여시제인등(如是諸人等) 점점적공덕(漸漸積功德) 구족대비심(具足大悲心)
개이성불도(皆已成佛道) 단화제보살(但化諸菩薩) 도탈무량중(度脫無量衆)

이차공양상(以此供養像) 점견무량불(漸見無量佛) 자성무상도(自成無上道)
광도무수중(廣度無數衆) 입무여열반(入無餘涅槃) 여신진화멸(如薪盡火滅)

일체제여래(一切諸如來) 이무량방편(以無量方便)
도탈제중생(度脫諸衆生) 입불무루지(入佛無漏智)

일체 모든 여래께서는 한량없는 방편으로써 모든 중생을 제도(制度)하여 해탈(解脫)케 하시고 부처님의 새어나감이 없는 (끝이 없는) 지혜의 길에 들게 하신다. 즉, 도탈된 중생이 부처님의 무루지(無漏智)로 중생을 도탈케 하는 길에 들게 하신다는 뜻이다.
도탈(度脫)이라 함은 제도하여 해탈게 하였다는 뜻이다. 해탈이라 함은 모든 번뇌에서 벗어났다는 뜻으로 깨달음을 얻었다, 부처를 이루었다, 성불(成佛)했다, 수하항마상과 같은 뜻이다. 수하항마상은 부처님의 성불(成佛)상이다. 입불무루지(入佛無漏智)는 개시오입(開示悟入)에서 입불지견도(入佛知見道)와 같은 의미이다. 즉 부처님께서 대각(大覺)을 이루신 후 초전법륜(初轉法輪)에서 시작하여 열반에 드실 때까지 가신 길을 입불무루지(入佛無漏智), 입불지견도(入佛知見道), 입불도(入佛道), 혹은 불도(佛道)라고 표현되고 있다. 사홍서원의 불도(佛道)도 이와 같은 뜻으로 해석된다.    

미래세제불(未來世諸佛) 수설백천억(雖設百千億) 무수제법문(無數諸法門)
기실위일승(其實爲一乘) 제불양족존(諸佛兩足尊) 지법상무성(知法常無性)
불종종연기(佛種從緣起) 시고설일승(是故設一乘) 시법주법위(是法住法位)
세간상상주(世間相常住) 어도량지이(於道場知己) 도사방편설(導師方便設)

오는 세상 모든 부처님들이 백천억(百千億)가지 수없이 많은 모든 법문을 설하시지만 그 실은 일승(一乘 - 개시오입(開示悟入))을 이루기 위함이다.
복덕과 지혜를 두 다리로 삼으시는 모든 부처님들은 법(法)이 상주(常住)하지만 그 성품이 고정된바 없으니 불종(佛種)도 인연 따라 일어나는 것임을 아신다. 이러함으로 일승(一乘)을 설하는 것이다.
(예 : 콩은 항상 콩이지만 그 성품이 고정된 바 없어 그 씨앗이 인연 따라 좋은 수확을 낼 수도 있고 나쁜 수확을 낼 수도 있으니 좋은 인연을 짓게 하기 위해 물을 주고 밭을 맨다는 뜻과 같음).
이러한 법이 머무는 곳에 그 법의 위상(位相)이 나타나는 것이며, 세간의 모습도 도량에 항상 머물고 있는 법이니 이를 이미 아시고 도사는 그에 알맞게 방편을 설하노라.
법주법위(法住法位) : 법주(法住)란 법(성품)은 머물고 있다는 뜻이다. 법위(法位)란 그 법은 모습이 없으므로 눈으로 볼 수 없지만, 그 법(성질)의 정도가 표상(表相 - 겉 모양)에 나타나는 것을 의미한다. 즉 겉모습을 보고 그 속을 알 수 있다는 문구이다. 아래 구절의 지이(知已)는 여기까지 통한다.  
세간상상주어도량(世間相常住於道場) : 세간의 모습은 도량에 항상 머물고 있다. 즉, 도량에 온 신도님들의 모습을 보고 일체세간의 모습을 다 보지 않아도 이미 알고 계시니(知已), 도량의 모습에 알맞게 설하시는 방편설은 곧 일체세간에도 알맞는 법을 도사(導師)께서 설하신다는 뜻.
이 구절을 요약하면 부처님께서 설하시는 방편설이 때로는 성문(聲聞)이고 때로는 연각이며 때로는 보살 등 수 없이 많지만 모두가 중생으로 하여금 개시오입(開示悟入)하게 함에 있다. 이를 일불승(一佛乘)이라 했다. 이어서 왜 방편설이 수 없이 많은가 하면 법주법위(法住法位)하고 세간상상주어도량(世間相常住於道場)함이 부지기수(不知其數)이기 때문이다. 이에 응해 이에 알맞게 법을 설하셨으니 법문의 수가 많아졌다는 해명이다.


원효대사의「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경 이름 풀이

묘법연화경 범어 원문 경 이름은, ‘(Saddharma Pundarika Sutra)', 한문 음역(音譯)한 경 이름은, ‘살달마분다리수다라(薩達摩分陀利修多羅)이다. 여기 Saddharma는 정법(正法)이란 뜻이다.
이를 구마라집(鳩滅什) 삼장법사(343-413)가 「묘법연화경」이라고 번역하였다. 원효대사는 이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설명하셨다.
“묘법(妙法)”에는 네 가지 묘한 이치가 있는데, 그 네 가지 중 첫째는 교묘(巧妙)요, 둘째는 승묘(勝妙)요, 셋째는 미묘(微妙)요, 넷째는 절묘(絶妙)라고 하고, ①교묘(巧妙)하다는 것은 법화경은 방편의 문을 교묘하게 열어서 성문승이 사성제를, 벽지불이 연기법을, 보살이 육바라밀을 각기 최고라고 집착하여 서로 상대를 멸시하는 집착심을 끊게 하고 진실된 일승(一乘)의 상(相)을 보게 하여 교묘하게 한층 더 높은 지혜를 일으키게 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②승묘(勝妙)하다고 하는 것은 법화경은 능히 부처님이 갖추신 일체법을 선양하고, 능히 부처님의 일체자재하신 신통력을 나타내며, 능히 부처님이 일체 비밀스럽게 보장한 법을 드러내 보이고, 능히 부처님의 심히 깊은 일들을 수승하게 잘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③미묘(微妙)하다는 것은 법화경은 일승의 극치인 결과를 설한 것으로 덕이 미묘하여 원만하지 아니한 덕이 없고, 미묘하게 청정하여 청정해지지 아니하는 잡염(雜染)이 없고, 의리(義理)가 미묘하여 의(義)롭게 되지 아니하는 의리가 없고, 세간(世間)이 미묘하여 제도되지 아니하는 세간이 없기 때문이다. ④절묘(絶妙)하다는 것은 일승의 광대 심심한 법상(法相)은 말을 떠나고 생각이 끊긴 것이지만 법화경은 이 경지가 가는 길을 절묘하게 잘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범어 원문 ”Pundarika“는 중국 사람들이 한문으로 음역하여  ”분다리(分陀利)“가 되었는데, 이는 ’만개한 흰 연꽃”이라는 뜻이다. 이를 구마라집이 “연화(蓮華)”라 했다. ①만개한 연꽃이라는 의미는 꽃봉오리와 차별을, 그리고 꽃이 시드는 때와의 차별을 의미하고자 하는 것으로 부처님이 법을 설하신 49년중 처음 41년간 설하신 교설을 종합하여 부처님이 세상을 떠나시기전 8년간에 설하신 가장 왕성하고 성숙한 법임을 상징하고자 “분다리”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그것은 인도말에 연꽃이 피기전을 굴마라(屈滅)라고 하고, 시들어 떨어질 때를 가마라(迦滅)라고 하고, 만개하였을 때를 분다리(分陀利)라고 부르는데 부처님이 이들을 차별하기 위하여 “분다리”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연꽃 중에서도 흰 연꽃이므로 흰 연꽃은 청정하고 분명하고 복잡하지 않는 법화경의 상징이라는 것이다. ②연꽃은 꽃이 피면서 열매가 바로 나타난다. 보통 꽃이 지고 난 후에 열매를 맺기 시작하는 꽃과 차별을 하는 것이다. 꽃은 열매를 맺기 위한 방편을 상징하고 열매는 진실을 상징한다. 경전은 우리가 공부하여 깨닫게 하기 위한 방편이고 우리가 깨닫는 것은 진실이다. 연꽃에 꽃과 함께 열매가 나타난다는 것은 법화경을 공부하는 중생들이 공부함과 동시에 바로 성불하게 하고자 하는 서원이 법화경에 있기 때문에 바로 이점을 대단히 중요시 한다. ③더러운 물에서 자라는 연꽃과 잎은 더러운 물에 오염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청정함과 아름다움을 더러운 물위에서 잘 보여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속세 속에서 속세를 딛고 진실함이 나타나야 참다운 청정함이요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상징한다. 속세를 떠나서 심심한 산중에서 홀로 청정한 것과 차별을 하는 것이다. 출가자가 세상 사람들과 동고동락하는 가운데 자기의 청정함을 유지하면서 남을 교화하는 것이 아름다움이라는 뜻이다. ④연꽃, 잎, 대, 뿌리 등 연꽃의 전신은 자기의 주변에 다가오는 더러운 물을 정화하여 깨끗하게 하는 작업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 연꽃은 끊임없이 정화 작업을 하고 있지만 연꽃에 가까이 오는 물 이외의 바깥에 있는 더러운 물까지 정화할 수 있는 연(緣)은 없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절에 자주 찾아오거나 스님에게 가까이 하는 사람들은 제도될 수 있지만 절에도 오지 않고 스님도 찾아뵙지 않는 분들은 제도될 수 있는 연이 박약함을 상징한다.
경(經)이란 부처님의 말씀을 엮은 책이라는 뜻이다.


[※리포트 제출 : 학기말 시험]
레터 사이즈 용지에 10point 글자 크기를 사용하여 한 장 정도의 분량으로 다음 제목 중 하나를 선택하여 리포트를 작성해서 다음 주 강의 시간에 발표하고난 다음 교정하셔서 스님께 제출한다(e-mail : milehs@hanmail.net). 단,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으시는 분은 원고지 1500자 정도면 된다.

(1) 입불지견도(入佛知見道)
(2) 일불승(一佛乘)
(3) 여래(如來)
(4) 응공(應供)
(5) 화택(火宅)
(6) 수기(授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