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행입문 - 강의 2

2007.02.27 18:20

현성스님 Views:9519

강의 2

사랑하는 사람의 사수관(死隨觀)

제가 화계사에 있을 때 어느 보살이 저를 찾아 왔습니다. 자기 친구 보살이 화계사 현성스님을 찾아가 말씀드려보라고 해서 찾아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보살의 말씀은 자기 아들이 대학 졸업반인데 자기 애인과 같이 어디 갔다 오다가 자동차 충돌 사고로 아들의 애인이 죽었답니다. 그 후 그 아들이 고민하다가 한 달이 못되어 집에서 죽은 시체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애인 따라 가려고 자살한 것이지요. 졸업하면 결혼한다고 했던 아들의 애인과 아들을 한달 사이에 잃은 것입니다. 아들과 그 애인을 위해서 무엇을 하여주면 그들이 다시 만나 좋은 세상에 가서 잘 살 수 있게 하겠느냐는 것이 그의 질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니까 그 보살의 정신이 심각한 문제라고 보았습니다. 그것은 다 큰 아들 잃은 어머니의 정신이 돌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죽은 아들의 문제에다 그 보살의 정신 안정을 위하여 많은 시간 대화를 나누어야 했습니다. 다행히 그 보살은 제가 가르치는 불교 강의에 등록해서 열심히 듣게 되었습니다. 그 보살이 자기 정신이 돌아와 아들 사고가 나기 전에 다녔던 직장에 다시 나가게 된 것은 약 1년 반 후였습니다. 그 충격이 그렇게 심하였던 것이고 다행히 스님말 잘 듣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익혀 소화해서 정신 회복에 큰 효과를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수련하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끔찍한 일이지만 꿈에도 자기 아들이 죽을 줄 몰랐던 어머니에게 준 실제적인 충격을 생각하면 오늘 이 수련으로서 많은 불행한 일들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화계사에 있을 때 어느 겨울, 눈이 덮여있는 추운 겨울날 새벽에 어느 거사님이 찾아 왔습니다. 자기 부인이 이혼을 하자고 사람을 못살게 구니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 전에도 이혼하자고 한 적은 있는데 어제 밤은 더 심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밤새도록 싸우고 새벽같이 절로 찾아 온 모양입니다. 그 거사님은 자기가 의사이고 불교 신자이지만 부인은 기독교 신자라고 신분을 밝혔습니다.
나는 그 거사님에게 <거사님이 만약 지금 죽어 가고 있다면 거사님은 거사님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 것 같습니까, 부인에게 잘 했다고 생각하는지 못했다고 생각하는지, 무엇을 잘 했는지 무엇을 못했는지 이 시점에서 결혼 전에까지 자신을 관하여 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부인이 지금 죽어가고 있다면 자기는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해 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똑 같은 것을 부인에게도 한 번 해보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부인을 대리고 한 번 찾아오라고 하고 보냈습니다.
그 후 부인과 같이 그 거사님이 찾아 왔습니다. 그 거사님에게 대웅전에 가서 절을 하고 있으라고 하고 그 부인과 둘이 앉아 그 부인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부인은 이야기를 시작하자마자 계속 울었습니다. 한 참 후 그의 감정이 진정되었습니다. 그동안 자기 남편이 자기에게 잘 해 주도 밉고 못해 주도 밉고 남편을 믿고 싶은 생각이 털끝만큼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스님이 이야기 하신데로 남편이 지금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며 지금부터 과거를 하나하나 생각하여 보니 결혼 초기에 자기는 남편만 믿고 시집을 왔는데 시어머니와 문제만 있으면 남편이 시어머니편을 들더라는 거에요. 그래서 남편은 못 믿는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는 거에요. 그 때는 그렇게 하고 넘겼고 이제 다 잊어 먹은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불 씨가 지금까지 살아 있는 줄 몰랐다는 거에요. 결혼 생활 10년이 넘어 딸 하나 아들 하나 있는데 귀한 남편에게 너무 죄송했다면서 다시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거사님이 밖에 있는 인기척이 있어 불렀습니다. 이제 부처님께서 잘 보호하여 줄터이니 보살님 모시고 가라고 했습니다.
그 녀의 눈물은 진정으로 참회하는 눈물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포함하여 모든 가족이 항상 건강하게 영원히 살기를 희망합니다. 그 희망이 잘 이루어 지는 집안이 많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에 대비하여 자신이 죽는 경우 또 자기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 죽는 경우를 관하여 보면서 자기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참구하여 보는 것은 자기의 과오를 씻을 수 있고 그 보상을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다는 것이 좋은 이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죽음을 참구할 때 세 가지 경우가 생긴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자기가 잘 죽어지지 않는 경우입니다. 죽는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기 때문에 죽어가는 경우에 생각들을 상상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분들은 다음 주에 할 자심관이 통할 수 있을지 한 번 기대하여 봅시다.
다음은 죽음을 관하면서 생각이 일어나는 경우입니다. 생각이 일어나는 것은 보통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는 오늘에서 생각이 미치는 과거까지 갔다가 다시 현재로 오고 현재에서 다시 과거로 가면서 복습하다보면 앞에서 떠 오르지 않았던 일들이 하나하나 떠 오를 수 있습니다.
세 번째 죽음을 관하면서 감정이 일어나는 경우입니다. 감정이 일어나기 때문에 처음에는 그것이 무슨 감정인지 잘 분간할 수 없습니다. 감정이 일어나면서 눈물이 쏟아질 수도 있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두려울 수도 있고 슬프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잠재의식 속에 저장되어 있던 전생에 어떤 사건일 수도 있고, 금생에 있었던 일 중 까맣게 잊어먹은 일일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일들을 찾아내서 마음에서 미워버리면 속이 시원하여지고 마음이 가벼워지고 성격이 온화하여 질 수 있습니다.

저희들이 지금하는 사수관은 과거에 지은 업장을 소멸하고자하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과거에 지은 업장을 소멸한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새로운 업을 짓지 않도록해야지 새로 업을 자꾸 짓게되면 도로아미 타불이 됩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들이 새로운 업을 짓지 않게 하기 위하여 인과법(因果法)에 관하여 설명하고자 합니다.
    
인과법(因果法)

실재 세계는 누구나 항상 행복하게 사는 동화의 세계와 조금도 닮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삶이란 불완전하고 미숙하고 불만족스럽다는 진리를 피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고통이 있는 진리입니다.
이러한 실재를 안다고 하더라도 우리들이 알아야 할 중요한 것은 고통이란 원인이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있다면 그 원인을 제거하여 고통을 소멸할 수 있는 것인지. 우리에게 고통을 이러키는 사건들의 원인이 단순히 불규칙하게 일어나 우리들이 통제하거나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무기력(無氣力)합니다. 무기력하다면 차라리 고통에서 빠져나갈 방법을 찾겠다는 의도를 포기하는 것이 낳을 것입니다. 만약 우리들의 고통이 전지전능한 존재의 임의대로 그리고 예측할 수 없는 어떤 방법에 의하여 지배된다면 이 존재의 비위를 맞추어 우리들에게 더 이상 고통을 가하지 않게 하는 방법을 찾아야만 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우리들의 고통은 우연한 결과로 생긴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으신 것입니다. 고통에는 그 원인이 그 뒤에 있고, 모든 현상에는 반드시 그 원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인과법칙(因果法則) - 업(業) - 은 모든 존재에 가장 보편적이고 가장 근본적으로 해당되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고통의 원인도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경지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1) 업(業 Kamma)

Pali어 Kamma는 Sanskrit어 Karma입니다. 일반적으로 업을 “운명”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운명은 우리들이 통제할 수 있는 능력 밖에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하느님의 뜻에 의하여 이미 결정지어 졌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Kamma를 운명의 정반대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Kamma의 문자의 뜻은 action 행위입니다. 우리들 자신의 행은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에 대한 원인입니다. “모든 존재는 그들의 행위를 소유하고, 그들의 행위를 상속받고, 그들의 행위에서부터 시작하고, 그들의 행위에 구속됩니다. 그리고 그들의 행위는 그들의 피난처가 됩니다. 그들의 행위는 모든 것의 기초가 되고 숭고한 것과 같이 그들의 생활도 그렇게 됩니다.”

우리들의 생애에서 우리들이 만나게 되는 모든 것은 우리들 자신의 행동의 결과입니다. 그 결과 우리들이 우리들의 행동의 주인이 되면 우리들 각자는 우리의 운명의 주인이 됩니다. 우리들 각자는 우리들에게 고통을 일으키는 모든 행동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 각자는 우리들의 행동에서 그 고통을 끝낼 수 있는 수단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신은 당신 자신의 주인입니다.
당신 자신이 자신의 미래를 만듭니다.

있는 그대로라면, 우리들 각자는 운전을 조금도 배운 적이 없는 사람이 운전대를 잡고 바쁜 highway에서 속도를 내며 달리는 눈 가린 사람과 같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불행한 일 없이 목적지에 도달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는 그가 자동차를 운전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만 사실은 자동차가 그 사람을 운전하고 있습니다. 만약 그가 사고 없이 목적지에 도달하기를 원한다면 그는 그의 눈가리개를 제거하여야 하고, 자동차 운전하는 법을 배워야 하며, 하루 속히 위험부담 없이 운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들은 우리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들이 진실로 가고 싶은 곳으로 우리들을 인도할 수 있는 행위를 시행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2)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

업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그 세 가지는 몸으로 짓는 신(身), 입으로 짓는 구(口), 마음으로 짓는 의(意)입니다. 우리는 보통 육체적인 행위에 가장 큰 중요성을 부여하고, 그 다음으로 입으로 짓는 업, 그리고 뜻으로 짓는 업에는 별로 중요성을 부여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을 주먹으로 때리는 것은 말로 그를 욕하는 것보다 더 중한 행위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행위는 그 사람에게 표현하지 않은 나쁜 뜻보다는 훨씬 심각한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견해는 인간이 만든 국가법에 의하여 고려하면 당연한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자연법, dhamma에 의하면 마음의 행위가 가장 중요합니다. 신업(身業)이나 구업(口業)은 그것을 행한 의지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가집니다.

외과 의사가 해부용 칼을 사용하여 그의 환자의 생명을 구하기 위하여 긴급하게 수술을 하였지만 그 결과는 성공적이지 못하고 오히려 그 환자는 죽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어떤 살인자가 어떤 사람을 칼로 찔러 죽였습니다. 육체적으로 보면 이 두 가지 행동은 같은 결과를 가져 왔다는 점에서 대단히 유사합니다. 그러나 정신적으로 보면 그들은 극대극의 차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외과의사의 행은 비(悲)에서 나온 것이고 살인자의 행은 증오에서 나온 것입니다. 따라서 각자가 얻는 결과는 그들의 마음의 행위에 따라 완전히 다를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말을 하는 경우에 있어서도 그 의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한 사람이 그의 동요와 말다툼을 하는 중 화가 나서 욕설을 하고 그를 바보라고 부릅니다. 같은 사람이 그의 아들이 흙탕물에서 노는 것을 보고 병이라도 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마음에서 그의 아들을 바보라고 부릅니다. 이 두 가지 경우에 똑 같은 “바보”라는 말이 쓰였습니다만 실은 정반대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하여 쓰여 진 것입니다. 말을 하는 우리들의 의지가 어디에 있었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정하여 지는 것입니다.

말과 행동 혹은 그들의 외형적인 결과는 단순히 마음의 행동의 결과입니다. 그 결과는 그 상대에게 표현한 의지의 성질에 따라 정확하게 판결됩니다. 참된 kamma는 마음의 행동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미래에 결과를 가져다 줄 원인이 됩니다. 이 진리를 이해하시고 부처님께서 다음과 같이 공포하셨습니다.

마음은 모든 현상보다 앞서는 법
마음이 가장 큰 문제이다. 모든 것을 마음이 만들었기 때문이다.
만일 부정한 마음으로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하면,
고통이 따른다, 마치
구루마는 구루마를 끄는 짐승의 발자국을 따라가는 것과 같다.
만약 청정한 마음으로 말을 하거나 행동하면,
행복이 그를 따른다.
마치 그를 결코 떠나지 않는 그림자와 같이

3) 고통의 원인

어떤 마음의 작용이 우리들의 운명을 결정합니까? 만일 마음이 수상행식만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어느 것이 일어나서 고통이 되는 것입니까? 이들 각자는 고통이 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관련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 중 식수상 셋은 주로 수동적인 역할을 합니다. 식(識 consciousness)은 단순히 경험하는 data를 입수하고, 수(受 perception)는 data를 category에 넣고, 상(想 sensation)은 앞서 일어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음을 signal한다. 이 세가지 단계는 단지 들어오는 정보를 소화하는 잡업을 합니다. 그러나 마음이 반작용을 시작하면 수동적인 마음은 끌든지 반발하든지 좋아하든지 싫어하든지 하는 쪽으로 양보합니다. 이 반작용은 새로운 연쇄반응이 일어나게 합니다. 연쇄반응의 시작에 반작용, sankhara가 있습니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다음 말씀을 한 이유입니다.

어떠한 고통이 일어나는 것은
반작용을 그의 원인으로 하고 있다.
만일 모든 반작용을 끝낼 수 있다면  
더 이상 고통은 없을 것이다.

참된 Kamma, 모든 고통의 참된 원인은 마음의 반작용에 있습니다. 하나의 좋아하고 싫어하는 빠른 속도의 반작용은 그렇게 강하지 않아 심한 결과를 주지는 않을 것입니다만 이들은 쌓이는 결과를 가질 수 있습니다. 반작용은 한 순간 다음 순간 반복됩니다. 이 반작용이 반복할 때마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강화되어서 탐욕이나 증오로 발전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부처님께서 그의 첫 법문에서 tanha라고 불렀습니다. 문자 뜻은 “thirst 갈애”입니다. 실재가 아닌 것에 대한 만족시킬 수 없는 그리움을 갖는 심적인 습관입니다. 이것은 있는 것을 가지고 불만족에 상응할 수도 불만족을 고칠 수도 없다는 뜻입니다. 갈망이 더 강해지고 불만이 커질수록 우리들의 생각과 말과 행동에 더욱 깊은 영향을 미칩니다. 그리고 그들은 더 심한 고통을 일으키는 원인이 됩니다.

어떤 반작용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잠겨 있는 물의 수면에 선을 그리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물 위에 선을 그리자마자 선이 지워져 버리는 것과 같다는 뜻입니다. 어떤 반작용은 모래사장에 그려진 선과 같다고 했습니다. 선이 오전에 그려졌으면 저녁 때 쯤에는 없어집니다. 조수에 씻겨나가기도 하고 바람에 지워지기도 합니다. 어떤 반작용은 끌과 망치로 바위에 깊이 새겨진 선과 같다고 했습니다. 이들도 바위가 침식함에 따라 지워집니다만 그들이 지워지기에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우리들의 매일 생활 중에서 마음은 계속하여 반작용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하루가 끝날 때쯤 우리가 그들을 생각하려 해도 그 날에 깊은 인상을 준 한 두 가지 외는 전혀 생각나지 않습니다. 한 달이 끝날 때쯤 그 달 중에  있었던 반작용을 기억하려고 해도 그 달 중에 가장 깊은 인상을 준 한 두 가지만 회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1년이 지나 그 해에 있었던 반작용을 기억하려고 하여도 그 해에 가장 깊은 인상을 심어 준 한 두 가지 반작용 외에 다른 것은 회상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골이 깊은 반작용은 대단히 위험합니다. 이러한 반작용은 무한한 고통으로 끌고 갑니다.

그러한 고통을 만날 때, 첫 단계 해야 할 일은 그것의 실재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철학적인 개념에서도 아니고 믿음의 한 구절에서도 아닙니다. 다만 우리들의 생활상에서 우리들 각자에게 미치는 존재의 실상입니다. 이것을 받아들이고 고통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왜 우리가 고통을 받는지를 이해하면 우리는 운전 당하는 것을 정지하고 우리가 운전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 자신의 본성을 직접 깨달을 수 있는 법을 배우고 우리들 자신을 모든 고통에서 빠져 나오게 하는 길에 굳게 세울 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마음의 작용은 수상행식(受想行識)의 순서로 작용합니다. 그런데 수(受)작용을 일어키게하는 작용은 식(識)이 하므로 식수상행(識受想行)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즉 눈이 어떤 사물과 접촉했을 때 그것을 인식하고 좋다 나쁘다 아무렇지도 않도고 받아들이는 기준은 식(識)에 저장된 과거의 경험에 의한 의식이 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식(識)에 저장된 업이 그 사물을 인식하고 좋다 나쁘다 아무렇지도 않다고 받아들이게 합니다. 식당에서 김치를 보고 먹음직스럽다고 생각하게 하는 것은 나의 식(識)에 저장된 나의 과거의 경험 즉 업입니다. 김치를 보지도 못하고 먹어보지도 못한 사람은 김치 냄새를 고약하다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식(識)은 좋다 나쁘다 아무렇지도 않다고 받아들인 사물에 대하여 생각하게 합니다. 좋으니까 취하자든지 나쁘니까 버리자든지 하는 생각을 다각도로 분석하면서 생각합니다. 이 분석하는 생각을 상(想)이라고 합니다. 이 생각이 끝나면 취하자든지 버리자든지 좀 더 기다려 보자든지 하는 의사 결정이 됩니다. 이 의사 결정을 행(行)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내가 본 그 물건에 대한 반응 혹은 반작용입니다. 이 반작용에서 짓는 업(業)이 시작됩니다. 설사 결정한 행이 실행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마음으로 지은 업은 업으로 식(識)에 저장되게 됩니다. 이 마음으로 지은 업이 말로 표출되었을 때 구업(口業)을 짓고 행동으로 표출 되었을 때 신업(身業)이 되어 식에 저장되는 것입니다. 업(業)을 짓지 않을 려면 어떻게 하는가 하면 생각하는 상(想)의 단계에서 자기가 보고 듣고한 그 대상에 대하여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다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는 등 여러 가지 방편으로 무리하게 취하거나 버리고자 하는 반응이 일어나게 합니다. 금강경에서는 이것을 불응취법(不應取法) 불응취비법(不應取非法)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면 무리하게 반응을 일으켜 업을 짓는 경우를 감소할 수 있습니다. 계속 수련을 하시면 방법이 익숙하여 집니다.  

부부 사이에 사이가 좋지 않을 때 일어나는 일마다 반작용이 나쁘게 계속 싸여 결국 폭발 지점에 갈 수 있습니다. 화계사의 그 보살과 같이 남편을 못 믿는다고 생각하는 잠재의식이 마음에 숨어 있어 남편이 잘해도 저게 또 무엇을 할려고 저러나 하고 생각하니 밉고 못해도 못해주어 미우니 그 stress에 못이겨 결국 이혼하자는 결론 밖에 나올 수 없습니다. 그 보살은 죽음을 관하면서 10년 전 결혼생활에서 느낌 감정이 자기 의식 속에 저장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든 것입니다. 그 때야 갑자기 귀중한 자기 남편이 된 것입니다. 귀중한 자기 남편에게 그동안 너무 죄송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사수관
요즈음 세상에 가정 폭력이 만연하여 경찰서에 가정 폭력 전담하는 부서가 생기고 가정 폭력 Hot line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통지문이 옵니다. 사랑의 문제가 극에 달하였다는 소식이라 생각됩니다. 이와 같은 폭력의 수준은 아니더라도 사랑이 식어가는 가정은 많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오늘은 자기 남편 혹은 부인이 지금 죽어가고 있다고 관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평소 사랑하던 사람이 지금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애인일 수도 있고 부인 혹은 남편일 수도 있고 부모 혹은 자녀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 죽어 가는 모습을 보고 명이 끊어지는 모습 그리고 명이 끊어진 후의 모습을 봅니다. 이 때 자기의 심정 변화를 관하여 보는 것입니다. 많은 잘 못된 일들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기회는 아직도 있습니다.
가장 솔직하고 단순하게 관하는 자기의 마음 자세가 중요합니다.

과거에 지은 여러 가지 악업이 우리들의 마음 속 어느 구석에 숨겨져 있는한 정신을 집중하는 참선이나 자기의 잘 못된 성격을 파하는 참선이 잘 될 수 없습니다. 다음 참선이 잘 되기 위하여는 현재 우리들의 마음 속에 있는 것들을 놓아 버리는 참선부터 해야 합니다.
내가 죽어 간다고 생각하며 나의 죽어 가는 모습을 바라 볼 때 그 동안에 나에게 있었던 모든 일들이 들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부터 이 달, 지난 달, 그 전 달, 작년, 하면서 과거를 찾아 들어갑니다. 모든 일들이 다 떠오릅니다. 나의 치명적인 잘 못들이 떠오릅니다. 모든 것을 참회하고 버려야 합니다. 나의 감정을 억제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억울한 일,  속은 일, 사기 당한 일, 배신당한 일, 우리는 남에 의하여 당한 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러한 일들 모두 우리들의 마음 속에서 찾아내 버려야 합니다.
내가 게을러서 생긴 일들, 내 마음이 초조해서 생긴 일들, 내가 부주의해서 생긴 일들, 모두 우리들의 마음 속에서 찾아내 버려야 합니다.

수행은 마음을 정화(淨化)하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수행의 모든 방법은 마음의 정화에 그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죽음을 앞에 놓고 죽음을 관하는 이 위빠사나 참선은 매우 독특한 참선 수련입니다. 시신의 영상을 앞에 놓고 관하는 동안에 선정에 들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잘 닦으시면 빠른 시일에 큰 성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간략한 운동을 하시고 몸에 지금부터 참선한다고 알려 주고 자세를 바로 세우시고 몸의 긴장을 푸는 작업부터 시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