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수경]5. 준제진언

2007.03.01 02:01

여해 Views:19991

 제5장 준제진언

  

이 장에서는 준제의 공덕, 준제보살, 네 가지 진언의 순서로 설하고 있다.

 

가. 준제의 공덕

 

준제공덕취(准提功德聚) 적정심상송(寂靜心常誦)

일체제대난(一切諸大難) 무능침시인(無能侵是人)

천상급인간(天上及人間) 수복여불등(受福如佛等)

우차여의주(又此如意珠) 정획무등등(定獲無等等)

 

준제공덕취(准提功德聚) 적정심상송(寂靜心常誦)

준제의 청정한 공덕의 큰 덩어리를 적정한 마음으로 항상 외우면,

준제공덕취의 준제는 ‘청정’을 뜻한다. 청정한 백색광명 속에 모든 공덕이 갖추어져 있다는 것이다. 청정을 이루는 것은 모든 번뇌 망상을 잘 다스림에서 오는 것이다. 위에서 ‘신묘장구대다라니’를 독송하여 ‘준제’를 얻을 수도 있고 아래 네 가지 진언을 지송하여도 모든 번뇌 망상을 여읠 수 있다고 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일체제대난(一切諸大難) 무능침시인(無能侵是人)

일체 모든 대재난(大災難)이 그를 능히 침범하지 못하고,

일체제대난(一切諸大難)이란 천재지변(天災地變)에서 오는 고난이나, 전쟁에서 오는 고통, 사업 또는 일상생활 중에서 사기 질투 모함 간음 등에서 오는 여하한 고난이라 하더라도 대비주를 항상 외우는 사람을 침범 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예를 들면 지난 카트리나 태풍으로 뉴올린스 도시에 인명피해가 많았지만 대비주를 외우는 사람은 그 때 우연히 휴가차 또는 다른 이유로 그 곳을 떠나 있어 수재를 피했을 수도 있다.

일체재난을 피할 수 있는 것은 각자의 청정한 마음이 받을 수 있는 예감에 의하여 피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천상급인간(天上及人間) 수복여불등(受福如佛等)

수행이 잘된 천상의 신(神)들이나 수행이 아직 미숙한 보통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받는 복은 부처님과 동등하다.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님을 설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천상 인간 부처가 모두 평등함을 설하고 있다. 누구나 대비주를 고요한 마음에서 항상 외우면 부처가 되어 부처님께서 받으신 복과 동등한 복을 받게 된다는 뜻이니 불교의 평등사상을 보이는 구절이다.

이 가르침은 부처, 천상, 중생은 본래 하나에서 시작한 것이라는 일원론(一元論))에 의한 것인데, 이 일원론은 기독교에서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였기 때문에 사람은 결코 하나님이 될 수 없다고 하는 이원론(二元論)과 다르다. 이원론에 의한 사상은 매사에 이분법(二分法)적인 개념으로 접하여 대립과 반목 경쟁과 투쟁의 역사로 이어져 왔다. 그러나 중생도 부처와 같은 복을 받을 수 있다고 하는 일원론적 사상에서는 상대가 나와 다르다고 하여 분리시켜 버리려고 하거나, 배척하거나, 다투려고 하는 자세가 아니라, 상대에게 수승한 점이 있으면 배워 자기를 개선하고 자기의 좋은 점을 상대에게 가르쳐 그를 도와줌으로서 서로 하나가 되고자 하는 사상이다. 이러한 논리를 화쟁론(和諍論)이라 하는데 불교를 믿는 사람들이 남과 다투는 것을 싫어하고 화합하고자 하는 원인이 여기에 있다. 이러한 사상에서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니요, 지옥과 열반이 둘이 아니라는 설이 나온다. 이러한 인연에서 중생도 부처와 같은 복을 받는다는 말이 성립하지만 다른 종교에서는 사람이 하나님과 같은 복을 받는다는 말이 성립될 수 없는 것이다.

 

우차여의주(又此如意珠) 정획무등등(定獲無等等)

또 이 여의주로써 결정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큰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여의주(如意珠)는 모든 것이 뜻대로 이루어지는 보배 구슬이나 여기에서는 준제공덕취를 의미하니 청정한 공덕의 무더기를 고요한 마음으로 항상 외우면 여의주를 얻게 되어 위없는 큰 깨달음을 반드시 얻게 된다는 뜻이다. 누구나 기도를 지극정성으로 하면 여의주를 얻어 최상의 법을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니 이것 역시 불교의 평등사상을 설하는 구절이다.

이 게송을 다시 뜻 번역하면,

 

준제란 청정함 속에 있는 온갖 공덕

고요한 마음으로 항상 외워 간직하면

아무리 크나큰 어려움이라도

능히 이 사람을 침범하지 못하고

천상에서나 인간에서나

복 받음이 부처님과 같아

이 여의주로써 결정코 무엇과도

비교될 수 없는 큰 깨달음을 얻게 되리라!

나. 준제보살

 

나무칠구지불모 대준제보살 (3번)

 

나무 : 이 목숨 다하여 귀의합니다 / 칠구지 : 7천억 / 불모(佛母) : 부처님의 어머니 / 준제보살 : 밀교에서 분류하는 칠관음 중 한 관음이시다.

이를 해석하면 ‘칠천억 부처님의 어머님이신 대준제보살님을 이 몸과 마음 다 바쳐 받드옵니다. 이다.

칠관음은 성관음(聖觀音), 천수관음, 마두관음, 십일면관음, 여의륜관음, 준제관음, 불공견색관음이다. 준제관음보살의 형상은 세 개의 눈에 열여덟 개의 팔을 가진 것이 정형이며, 이 때 세 개의 눈은 중생의 세 가지 장애인 미혹(迷惑)과 죄업(罪業)과 괴로움[고(苦)]을 바르게 보고 열여덟 개의 팔로 남김없이 제거하여 청정한 마음을 갖게 해주신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

이 관음은 중생의 재앙을 없애주고 소원을 성취시켜 주며, 수명을 연장시켜 주며, 지식을 구하는 이의 원을 성취시켜 주고, 깨달음을 이루게 하는 권능이 월등하다고 하여, 일부 승려들은 이 관음보살을 신봉하고 있다.

그런데 왜 준제관음보살을 불모(佛母)라고 한 것일까? 그 까닭은 준제보살이 우리의 청정한 근본 마음자리이기 때문이다.

불모(佛母)는 부처를 낳고 양육하는 부처의 어머니로서, 불교에서는 이를 다양하게 표현한다. 반야경(般若經)에서는 반야지(般若智)가 불모(佛母)요, 열반경에서는 불성(佛性)을, 선(禪)에서는 무심(無心)을 불모로 보고 있으며, 준제경에서는 청정을 불모로 삼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의 청정한 마음자리가 곧 부처를 만들고 기르는 불모이므로, 청정한 마음을 뜻하는 준제관음보살을 ‘불모’라고 한 것이다.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지송함으로서 청정한 마음자리를 성취하는 것이므로 준제관음보살의 뜻이 이미 포함되어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청정한 마음자리를 기필코 성취하기 위하여 거듭 준제보살을 설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제 우리는 ‘나도 부처가 되겠다. 는 원을 가득 담아 7천억의 부처님의 어머니이신 대준제보살님께 귀의함으로서 그를 닮아 가고자 하는 것이다.

“내 안에 이미 계시는 대준제보살, 청정하고 청정하여 불성(佛性)이라고도 하고 반야지혜라고도 하는 준제보살님께 귀의합니다.” 바로 이러한 본질을 새기며 “나무칠구지불모 대준제보살”을 세 번 염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목숨이 다하도록 참선, 기도, 간경, 염불, 주력 등에 의지하여 마음의 청정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다. 네 가지 진언

 

대준제보살에 대한 귀의에 이어 정법계진언, 호신진언, 관세음보살본심미묘육자대명왕진언, 준제진언의 네 가지 진언이 나온다. 이를 차례대로 살펴보면,

 

1) 정법계진언(淨法界眞言)

옴 남

옴 남

옴 남

 

옴: 우주의 핵심, 소리의 어머니, 진언의 왕, 항복, 조복, 섭복 등 여러 가지 의미와 신비한 힘을 가진 진언의 정형구.

남: <람>이라고 해야 하는데, 화대(火大)의 종자라는 뜻이다. 즉, 불을 일으키는 근본 씨앗이란 뜻인데, 그것은 지혜의 불이다.

‘옴 남’은 그 불의 종자가 탐진치 삼독으로 인해서 생긴 우리의 번뇌 망상을 다 태워버리고 깨달음의 문에 들어서게 하는 진언이다.

정법계진언은 법계를 정화하는 진언이다. 법계는 법, 즉 진리가 지배하는 세계이다. 진리가 지배하는 세계는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계 등 모든 세계를 다 포함하여 법계라고 한다.

그러면 이러한 법계를 어떻게 정화한다는 것인가?

정법계진언 “옴 남”을 끊임없이 지송하면 지혜의 화염이 우리의 번뇌 망상을 다 태워버리고 깨달음의 문에 이르게 하고 깨달음의 문에서 일념삼매에 들어가면 나머지 모든 번뇌 망상이 저절로 사라져, 완전히 맑아지게 된다. 화두삼매에 들건, 염불삼매에 들건, 독경삼매에 들건 마찬가지이다. 모든 법계를 깨끗하게 하는 지름길은 일념삼매이다. 어떠한 번뇌 망상도 붙을 수 없는 일념삼매! 이보다 더 확실한 정화법은 없다.

누구나 일념삼매에 들면 ‘나’는 청정해지고, ‘내’가 청정해지면 법계와 둘이 아니게 된다. 법계와 둘이 아니게 되면, 우주법계가 모두 청정해지고, 우주법계가 맑아지면 나도 또한 맑아진다. 내가 깨달으면 법계를 알게 되고, 법계를 알면 ‘나’를 알게 된다. 우주와 나는 불이(不二)이므로, 일념삼매의 법으로 ‘나’를 맑히면 온 법계가 깨끗해지는 것이다.

정법계진언은 법계와 아울러 ‘나’를 맑게 만드는 일념삼매법이며, 이러한 도리인 우주법계의 핵심을 표현한 음이 ‘옴 남’인 것이다.

 

2) 호신진언(護身眞言)

옴 치림

옴 치림

옴 치림

 

치림: 치림의 원음은 <쓰림>이다. 그 뜻은 묘길상(妙吉祥)의 종자이다. 모든 길상이 <치림>이란 글자에서 나온다. 길상이란 행복, 영광, 번영, 안녕, 평화 등 좋은 의미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몸을 보호한다고 해서 신장(神將)이나 그 밖의 어떤 것이 내 몸을 지켜준다는 뜻이 아니라, 자기 몸을 보호하는 모든 좋은 일이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온다는 뜻이다. 자기 자신을 청정하게 지키지 않을 때 탐진치 삼독에 의한 인과가 나에게 점점 더 해롭게 다가옴으로 밖으로부터의 보호가 필요하지만, 청정한 나에게는 청정한 인과가 다가올 것이므로 항상 나의 청정함에서부터 호신(護身)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탐진치 삼독 쪽으로 나아가려는 ‘나’를 계정혜 삼학 쪽으로 나아가게 하고, 악업을 선업으로 돌리고, 번뇌 망상을 보리(菩提)로 바꾸어 가야한다. 그 방법으로 가장 빠르고 좋은 것이 일념삼매법이며, 우주법계의 핵심으로 표현한 “옴 치림”이다.

일념삼매에 들면 ‘나란 본래 없다. 비워버려라’는 이치를 터득하게 되어 위급한 상황에서 당황하는 일이 없게 된다. ‘나’는 영원하다는 이치를 체득하였기 때문이다.

 

3)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본심미묘(本心微妙) 육자대명왕진언 (六字大明王眞言)

옴 마니 반메 훔(3번)

 

<관세음보살 본심미묘 육자대명왕진언>을 풀이하면 ‘관세음보살의 본래 마음은 미묘하며 밝음 중에 으뜸인 대명왕(大明王)을 여섯자로 표현한 ’진언’이란 뜻으로 이것은 <광명진언>의 내용을 축소시킨 것이다. 대명왕(大明王)이란 크게 밝고 권력이 가장 세다는 뜻이니 밝음 중에 으뜸인 대명왕이라 했다.

 

옴 aum : a는 시초음이고, u는 과정음(過程音)이며 m은 종결음(終結音)으로 aum은 이 우주만유의 처음이자, 과정이며, 마지막을 이루는 근본 힘이라는 뜻이다. 이 뜻에서 우주의 핵심, 소리의 어머니, 진언의 왕, 항복, 조복, 섭복 등 여러 가지 의미와 신비한 힘을 가진 진언의 정형구로 사용하고 있다.

마니 mani : 마니구슬, 여의주. 마니보주(摩尼寶珠)는 지극히 맑고 투명하여 붉은 것이 오면 붉게, 푸른 것이 오면 푸르게, 무엇이나 오는 그대로 비춰 주는 본질을 가지고 있다. 그럼으로 마니는 현재의 “나”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해 주고, 내가 원하는 “나”로 승화하는데 필요한 조건들도 자연스럽게 볼 수 있게 하고, 갖출 수 있게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능력이 있음으로 마니는 여의주(如意珠), “뜻대로 이루어지게 하는 구슬”이라 한다.

반메 padme : 원래 ‘빠드메’이다. 그 뜻은 연꽃이다. 연꽃 중에서도 홍연(紅蓮)에 해당한다. 연꽃의 본성은 아무리 더러운 곳에 처하여도 항상 깨끗한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그리고 연꽃은 다른 꽃과 달리 열매를 같이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불교의 인과론을 상징한다고 본다. 우리의 본성도 연꽃처럼 물들지 않는 성질을 근본으로 함으로 여기에서는 가장 이상적인 관세음보살을 나타내는 동시에 우리가 수행을 쌓아서 가장 이상적인 인물이 되었을 때도 연꽃에 비유한다. 어려운 과정을 해치고나와 이상적인 인물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연꽃’은 일체중생에게 여의주라는 불성이 있음으로, 중생이 불성을 믿는 의지만 있으면 어려움은 반듯이 극복될 수 있으며, 어려움을 극복함으로서 자비희사를 할 수 있는 지혜광명이 갖추어져 있는 불보살의 세계에 들어가게 된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꽃이다.

훔 hum : 이구청정(離垢淸淨)이라고 해서 ‘더러움을 벗어난 청정한 진리의 세계’를 뜻한다. 즉, 번뇌 망상이 모두 사라진 상태를 말한다. 티끌이 있는 옥에서 티끌을 씻어내고 순수한 옥을 나타냈다는 의미이다. 즉 더러움에서 깨끗함을 얻은 것이나 깨끗함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 아니라 더러움에 묻혀있었던 깨끗함을 순수한 깨끗함으로 하였다는데 의미가 있는 것이다. 즉 ‘훔’은 더러움에서 가장 깨끗한 ‘옴’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옴 마니 반메 훔>을 외우면 모든 악업이 소멸되고 복덕이 생겨날 뿐 아니라, 일체의 지혜와 선행의 근본이 된다고 하여 일찍부터 널리 염송되었으며, 오늘날에도 티벳이나 몽고 등에서는 대부분의 불자들이 평생토록 이 진언만 외우는 경우도 많다.

티벳어 경전인 <마니캄붐>에 의하면 아미타부처님께서 몸을 나투시어 말씀하시기를,

 

대자 대비한 성관음(聖觀音)은 ‘옴 마니 반메 훔’의 여섯 자에 의해 육도에 있는 생사의 문을 닫는다. 옴은 천, 마는 아수라, 니는 인간, 반은 축생, 메는 아귀, 훔은 지옥의 문을 닫느니라. 이 여섯 글자가 육도를 완전히 비게 할 것이니, 마땅히 반복하여 염하고 지닐지니라.

 

아울러 이 주문을 외우면 무량한 삼매와 법문을 갖추게 되고, 다함없는 변재와 청정한 지혜를 갖추게 된다고 하였다.

정녕 이 세상에서 가장 맑고 밝은 것이 무엇인가?

우리의 본 고향인 마음자리이다. 이 마음자리에는 어떠한 것이 오더라도 그를 배척하지도 물들지도 않고, 오히려 연꽃의 씨앗에 힘을 실어주는 ‘마니보주’, 진흙 속에서도 예쁘게 필 수 있는 ‘연꽃’, 더러움을 깨끗함으로 전환할 있는 ‘훔’을 하는 본성과 그 작용이 있다. 이를 육자대명 왕 진언 ‘옴 마니 반메 훔’이라 하였다.

여기에서 특별히 유의할 점은 식물이 더러움에서 영양을 습취하듯이 사람도 어려움, 번뇌, 두려움, 망상 등을 배척하기보다 영양가로 전환할 수 있을 때 구속에서 해탈, 중생계에서 극락세계로 갈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도리를 알고 ‘옴 마니 반메 훔’을 외우면 그야말로 마음으로부터 광명이 샘솟게 된다. 내 마음이 대명왕(大明王)이 되면서 일체의 장애가 깨달음의 영양가로 전환되어 깨달음의 문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4) 준제진언(准提眞言)

 

나무 사다남 삼먁삼못다 구치남 다냐타

옴 자례 주례 준제 사바하 부림

옴 자례 주례 준제 사바하 부림

옴 자례 주례 준제 사바하 부림

 

<나무 사다남 삼먁삼못다 구치남 다냐타>는 다음 문장의 도입구절이다.

나무: 귀의한다 / 사다남: 완성, 성취 / 삼먁: 정등(正等) / 삼못다: 정각(正覺), 붓다 / 구치: 천만억 / 남: 복수 / 다냐타: (진언을) 설해 가로되(이어주는 말).

이를 모두 합치면, ‘칠천만억의 정등(正等) 정각(正覺)을 이룩하신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그러하오니’가 된다.

 

<옴 자례 주례 준제 사바하 부림>이 진짜 준제진언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자례: 동회존(動回尊), 유행존, ‘움직이고 흘러 다니는 분이시여’라는 뜻 /

주례: 두상(頭上) 정계존(頂髻尊)이시여, 정계(頂髻)란 제일 높은 부처님의 두상(頭上) / 준제: 묘의(妙意) 청정존이시여 / 사바하: 원만 성취 / 부림: 전륜왕의 종자. 전륜왕은 머리에 법륜과 같은 수레바퀴를 달고 있는 신장.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대장격에 해당한다.

이를 모두 합치면, 옴, 동회존(動回尊)이시여, 두상(頭上) 정계존(頂髻尊)이시여, 묘의(妙意) 청정존이시여 원만히 성취하게 하소서, 전륜왕(轉輪王)의 종자를 성취하게 하소서!

『칠구지불모준제대명다라니경』에서는 준제진언이 “모든 재앙을 소멸케하여 부처님의 깨달음을 신속하게 얻게 하는 힘을 갖추고 있다”고 하였다. 따라서 준제진언은 그 어떤 진언보다 강한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마장(魔障) 또한 크다고 하여 함부로 외우지 못하게 하고 있다. 그러므로 준제진언을 외우는 수행자는 자기의 근기에 맞는 진언인지 점검해야 한다.

준제진언은 깨달음을 얻음으로 해서 오는 불사의업(不思議業)의 작용을 곧 바로 일러주고 있다. 준제진언을 외우는 수행자 또한 그 마음가짐을 크게 가져야 한다. 그리고 대원을 세워 준제진언을 외우는 공덕을 널리 회향하는 발원을 해야 한다. 그 발원문은 아래와 같다.

 

아금지송대준제(我今持誦大准提)

즉발보리광대원(卽發菩提廣大願)

원아정혜속원명(願我定慧速圓明)

원아공덕개성취(願我功德皆成就)

원아승복변장엄(願我勝福遍莊嚴)

원공중생성불도(願共衆生成佛道)

 

제가 지금 준제진언을 지극하게 지송하오며

보리심을 발하옵고 광대한 원 세우옵니다.

원하오니 선정과 지혜 속히 원만히 밝아지고

모든 공덕 남김없이 모두 성취하여 지이다.

원하오니 수승한 복으로 모든 방편 두루 갖추어

모든 중생 다함께 불도를 이루어 지이다.

 

아금지송대준제(我今持誦大准提)

지송(持誦)의 지(持)에는 계속해서 유지한다는 뜻이 있으니 지송(持誦)은 소기의 목적을 이룰 때까지 계속해서 끝없이 독송한다는 의미이다. ‘내가 지금 대준제진언을 지송한다’는 뜻은 내가 지금 간절한 마음으로 계속해서 한도 끝도 없이 정등(正等) 정각(正覺)을 이룬 부처가 될 때까지 기도하겠다는 대서원이다. 이러한 이유로 준제진언을 나무 칠구지 불모(佛母) 대준제보살이라 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마음 자세로 기도를 열심히 하면 영감이 생긴다. 삶을 살아가면서 영감이 비교적 다른 사람보다 수승한 사람들이 보다 경건한 삶을 살아가고, 상대방에 대한 자비심도 많고, 선심이 두텁고, 좋은 인간성을 갖춘 사람들이다. 영감이 강한 사람들은 맑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다.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 맑은 마음으로 생각하고 맑은 마음으로 결정하는 사람의 미래는 항상 맑고 아름답게 전개되어 간다. 맑은 마음이 아니면 선택의 카드를 올바로 잡지 못해 실수하는 비율이 높아진다. 영감이 있는 사람은 자기가 하는 일에 판단을 정확하게 내릴 수 있는 확률이 높지만 영감이 없는 사람은 항상 어두운 밤길을 가는 기분이다.

자신에게 보다 맑은 영감이 일어나게 하기 위해 항상 경건하게 기도하면서 살아가다보면 어느 날 갑자기 영감이 생기고, 영감이 생김에 따라 미래의 문이 활짝 열린다. 모든 성공한 과학자, 의사, 사업가, 정치가는 모두 남보다 탁월한 영감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즉발보리광대원(卽發菩提廣大願)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아금지송대준제(我今持誦大准提)를 하면 즉발보리광대원(卽發菩提廣大願)이 일어나는 것이다. ‘발보리’란 깨달음의 길을 나가려는 마음이 생긴다는 뜻이다. ‘광대원’은 넓고 큰 원이라는 뜻으로 나만 잘 살겠다는 이기적인 마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제도하고 구제하여 이 세상의 빛이 되고 등불이 되겠다는 서원이다. 처음에는 개인이나 가정의 문제로 기도하다 보면 기도의 의미를 체험하게 된다. 그 깊은 의미를 체험하게 되면 더 크고 넓은 발심을 하게 된다.

 

원아정혜속원명(願我定慧速圓明)

‘원하옵건데 정(定)과 혜(慧)가 속히 원만하게 밝아지게 하여 주소서’라는 발원이다. 기도를 계속하면 마음이 안정되고 맑아지고 밝아져서 원만하고 지혜로워진다. 마음이 밝아지면 모든 것이 잘 보이기 때문이다. 기도를 하지 않으면 이런 세계가 열리지 않는다. 이와 같은 정(定)과 혜(慧)의 세계를 열어가기 위해 절실히 필요한 작업이 곧 기도와 참선이다. 정(定)은 모든 번뇌 망상이 소멸되어 마음이 안정되는 것이고, 혜(慧)는 안정된 마음으로 세상의 이치를 알아 모든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지혜이다.

마음이 뚜렷이 밝아지면 보통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게 된다. 기도를 열심히 하면 마음의 눈이 밝아지고 마음의 폭도 넓어져 마음의 세계가 넓어진다. 마음의 세계가 넓어짐에 따라 모든 것이 뚜렷이 밝게 보인다. 세월이 지나면 이런 사람들은 저절로 남다른 공덕을 짓게 된다.

 

원아공덕개성취(願我功德皆成就)

밝은 눈으로 모든 것을 볼 수 있게 되어 많은 중생들을 이익 되게 하고 행복하게 하여 중생 모두 크고 넓은 모든 공덕을 이루게 하여 주소서라는 발원이다. 맑고 밝은 눈을 가진 사람들이 중생을 위해 수승한 공덕을 짓게 된다.

 

원아승복변장엄(願我勝福遍莊嚴)

‘원하옵건대 모든 것을 두루 장엄할 수 있는 수승한 복을 얻게 하여 주소서’라는 발원이다. 남을 도울 수 있는 여러 가지 필요한 방편이 두루 갖추어져 크고 넓은 공덕을 모두 성취하는 것이 자신을 위한 수승한 복덕이 되고, 수승한 복덕을 지은 마음은 곧 부처님의 마음으로 장엄된 마음이라는 의미이다.

 

원공중생성불도(願共衆生成佛道)

‘원하옵건대 모든 중생들이 함께 성불하여 지이다.’ 우리들의 삶의 구경(究竟)의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돈도 명예도 애정도 구경의 목표로 가는 한 여정에 불과하다. 성불만이 모든 불자들의 이상이다. 이 점도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고자 하는 사람만 구원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어야만 구원받는다는 타종교와 다른 점이다.

 

이것이 바로 준제진언 뿐만 아니라 모든 진언과 다라니를 외우는 기본자세이며, 이러한 대원을 품고 외우면 마장에 걸리지도 않는다.

소원은 처음 기도 시작할 때와 마지막 끝날 때 한 번씩만 생각하고 기도 자체에만 일념으로 집중해야 한다. 그래서 기도와 자기 자신이 하나가 될 때 비로소 오롯한 정신상태가 될 수 있다. 그렇게 되어야만 힘이 솟아나고 또한 그 힘을 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기도의 대상이 관세음보살이라면 그 관세음보살과 자신의 힘이 하나로 합쳐질 때 자유자재로 그 힘을 쓸 수 있는 것이다.

어떠한 역경이 다가오고 죽음이 닥칠지라도, ‘나’는 일념삼매를 통하여 부처를 이루는 이 길을 그냥 갈 뿐이다. 결단코 ‘나’의 본성을 깨달아 생사윤회의 길을 벗어나서 모든 이들과 함께 불국정토로 나아가겠다는 마음으로 지송해야 한다.

이러한 대원을 기초로 삼아 일념삼매를 이루는 선정과 지혜를 밝게 닦아나가면 일체중생을 살리면서 사는 힘을 갖출 수 있게 되고, 일체 중생을 살리는 그 수승한 복은 다시 우주법계를 장엄하게 되어, 나 혼자만이 아니라 일체 중생 모두가 다함께 성불하는 길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