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신묘장구대다라니의 소덕

   

대다라니를 수지(受持), 독송(讀誦), 사경(寫經)하는 공덕을 다음 6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 사방찬(四方讚)

- 도량찬(道場讚)

- 참회게(懺悔偈)

- 참제업장(讖除業障) 십이존불(十二尊佛)

- 십악참회(十惡懺悔)

- 참회진언(懺悔眞言)

 

가. 사방찬(四方讚)

 

일쇄동방결도량(一灑東方潔道場)

이쇄남방득청량(二灑南方得淸凉)

삼쇄서방구정토(三灑西方俱淨土)

사쇄북방영안강(四灑北方永安康)

 

사방찬(四方讚)이란 동남서북의 네 방향을 찬탄하는 것이다. 즉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일념으로 독경, 서사(書寫) 함으로서 관세음보살의 위력이 우주에 두루 충만하여 진다. 관세음보살의 위력이 우주에 충만하므로 해서 다음과 같은 결과가 얻어진다는 뜻이다.

일쇄동방결도량(一灑東方潔道場)

첫째, 동쪽을 향해 물을 뿌리면, 도량이 청결(맑음)해지고,

동쪽 해가 밝아올 때 대비주를 외우면 마음이 맑아지고

이쇄남방득청량(二灑南方得淸凉)

둘째, 남쪽을 향해 물을 뿌리면, 청량(시원)함을 얻고,

한 낮에 대비주를 외우면 마음이 시원해지고

삼쇄서방구정토(三灑西方俱淨土)

셋째, 서방을 향해 물을 뿌리면, 정토를 갖추며,

해가 지는 것을 보고 대비주를 외우면 마음이 깨끗해지고

사쇄북방영안강(四灑北方永安康)

넷째, 북방을 향해 물을 뿌리면, 편안하고 건강함이 영원하다.

잠자기 전에 대비주를 외우면 밤새도록 편안하고 건강하게 잠을 이룬다.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일념으로 송경(誦經)하거나 사경한다고 하는 것이 어떠한 의미가 있기에 도량 즉 마음이 청결해져서 영원히 편안하고 온화하여질 수 있을까?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송경하거나 사경할 때, 송경을 방해하는 번뇌가 생긴다. 입으로는 <다라니>를 외우고 있지만 생각은 딴전을 피우고 있는 것도 일종의 번뇌이다. 이러한 잡념에 잠겨있는 번뇌에서 깨어나게 하는 선호신(善護神)이 대자대비하신 <다라니>의 관세음보살이다. <다라니>의 대자대비하신 관세음보살의 위력은 방해하는 번뇌를 그대로 두고 오로지 일념으로 <다라니>를 놓치지 않고 전념으로 지송(持誦)하게 한다. 이와 같이 <신묘장구대다라니>를 반복하고 또 반복하는 가운데 대비주(大悲呪)의 위력이 마음속에 있는 모든 번뇌를 소제하고 자신의 마음 안에서 대비심이 강화된다. 대비주(大悲呪)의 위력이 강화되어 나아가는 가운데 대비주(大悲呪)를 설하신 부처님의 마음과 송경하는 사람의 마음이 하나가 되어도 하나가 되어 버린 줄 모르는 어떤 경지(境地)에 이르게 된다. 이것은 같은 것을 끊임없이 전념(專念)으로 반복하는 가운데에서 일어나는 극치이다. 정신 통일(統一)의 경지를 넘어 삼매로 몰입하는 현상이다.

이것을 우리는 우리의 마음이 부처님의 마음에 머문다고 한다. 부처님의 마음은 일체 번뇌가 없어 걸림이 없고 장애가 없고 텅 비어있는 태허(太虛)와 같은 마음이면서 무한한 능력의 소유자이므로 부처님의 마음자리에 머무는 우리들의 마음도 조금도 번뇌와 같은 걸림이 없는 아주 공허(空虛)한 마음이요, 대자대비한 마음이요, 모든 고통 받는 중생, 모든 어려움에 처해 있는 중생, 모든 병으로 고통 받는 중생과 하나 되어 구제할 수 있는 지혜와 방편을 갖춘 성인(聖人)이 된다. 이러한 성인은 모든 번뇌에서 벗어나 청결하여졌으므로 너와 나, 내 것과 네 것이라는 능소(能所)가 없어져, 가는 곳마다 하는 일마다 시원하여 청량함을 얻는다. 자기 자신의 마음의 시원함을 얻음으로써 가정의 일들을 시원하게 풀어 갈 수 있고, 이웃과 사회 문제 해결이 시원해지고, 모든 인간관계가 시원해진다. 가는 곳마다 하는 일마다 청량하므로 이러한 성인은 머무는 곳이 바로 정토(淨土)가 되는 것이다. 정토를 구족하였음으로 영원히 편안하고 온화한 생활이 자연스럽게 진행된다. 자기 자신이 편안함을 가질 때, 가족이 편안해지고, 더 나아가 이웃과 사회, 온 인류가 편안함을 얻도록 도울 수 있다는 것이다.

 

본문으로 다시 돌아가면,

일쇄동방결도량(一灑東方潔道場)

일쇄(一灑)의 일(一)은 첫 번째라는 의미이고 쇄(灑)는 뿌린다, 씻는다는 뜻이니 대비주를 외워 마음의 때를 씻어낸다는 말이다. 마음의 때란 번뇌 망상을 의미하고, 동방(東方)은 해가 뜨는 동녘을 의미함으로 시간적으로 보면 새벽을 뜻하고, 결도량(潔道場)의 도량(道場)은 절(寺), 집, 직장 등 수행처를 의미하나 여기서는 내 마음을 수행처로 본다. 결도량(潔道場)은 마음이 깨끗해진다는 말이다. 즉 새벽 일찍 일어나 대비주를 외워 번뇌를 씻어내면 마음이 깨끗해진다는 뜻이 일쇄동방결도량(一灑東方潔道場)이다.

 

이쇄남방득청량(二灑南方得淸凉)

이쇄(二灑)의 이(二)는 하루 일과 중 두 번째라는 뜻이고, 쇄(灑)는 위와 같고, 남방(南方)은 남쪽이니 시간적으로 정오(正午)이다. 득청량(得淸涼)의 득(得)은 얻는다이고 청량(淸涼)은 맑고 서늘하다, 시원하다이다. 새벽에 대비주를 외우고 하루 일과를 시작해서 정오(正午) 경에 덥고 힘들고 피곤할 때 대비주를 외우면 피곤이 풀리는 것이 마치 더운 여름에 샤워 하듯이 시원해진다는 뜻이 이쇄남방득청량(二灑南方得淸凉)이다.

 

삼쇄서방구정토(三灑西方俱淨土)

삼(三)은 하루 일과 중 세 번째라는 뜻이고, 서방(西方)은 해지는 곳을 의미함으로 저녁 때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때를 의미하고, 구정토(俱淨土)의 구(俱)는 갖춘다는 말이고, 정토(淨土)의 정(淨)은 깨끗한 것이니 근심 걱정이 없어 맑고 깨끗한 것이며, 토(土)는 흙 혹은 땅이니 여기에서는 마음이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그날의 일이 모두 원만히 진행되었음에 감사한 마음으로 대비주를 외우면 하루의 피곤이 모두 사라지고 마음이 맑고 깨끗하게 회복된다는 뜻이 삼쇄서방구정토(三灑西方俱淨土)이다.

 

사쇄북방영안강(四灑北方永安康)

사(四)는 하루 일과 중 네 번째라는 뜻이고, 북방(北方)은 시간적으로 어두운 밤을 의미하니 잠잘 때이다. 영안강(永安康)의 영(永)은 오랫동안, 안강(安康)은 편안하고 건강한 것이니, 잠자리에 들기 전에 대비주를 외우고 자면 밤새도록 편안하고 건강하게 잠을 잘 잔다는 뜻이 사쇄북방영안강(四灑北方永安康)이다.

동남서북(東南西北)을 하루 시간에 비유하여 설명하였지만 사계절(四季節)에 비유하여도 같은 해석이 나온다. 동(東)은 봄, 남(南)은 여름, 서(西)는 가을, 북(北)은 겨울에 비유된다. 매일 새벽, 점심, 저녁, 잠잘 때 네 차례씩 대비주를 열심히 외우며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에도 대비주를 열심이 외우며 밭을 매며, 가을에도 대비주를 열심히 외우며 추수하여 일년 농사에 감사하고 만족하며, 겨울에 대비주를 외우며 편안하고 온화하게 쉰다는 뜻도 된다.

또 동남서북(東南西北)을 유년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로 볼 수도 있다. 유년기에 매일 새벽, 점심, 저녁, 잠잘 때 네 차례 씩 대비주를 외우며 자기 할 일을 열심히 하고, 청년기에도 대비주를 외우며 자기 할 일을 열심히 하며, 장년기에도 대비주를 외우며 자기 할 일을 열심히 하고, 노년기에도 대비주를 외우며 열심히 자기 할 일을 하면 그 때, 그 때 해야 할 일들을 원만히 성취하여 만사형통하고 편안히 일생을 마감할 수 있다는 의미도 된다.

그리고 불교에서는 동서남북이라하지 아니하고 동남서북이라고 부르는 점에 주의하여야 한다. 유교나 다른 종교에서 만물을 상대적인 개념으로 보기 때문에 동서남북이라 부르는 것이 타당하지만 불교에서 사물을 상대적인 개념으로 보지 아니하고 진리에 순응하는 안목으로 보기 때문에 동남서북이 되는 것이다. 해가 동쪽에서 떠 남쪽 서쪽 북쪽으로 돌아가는 것이 진리이므로 그 순서를 따르고 있다. 이는 일체가 이와 같이 하나로 돌아간다는 의미가 있으므로 상대적인 개념과 정반대의 의미가 있다.

 

나. 도량찬(道場讚)

 

도량찬(道場讚)이란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번뇌가 없는 마음을 찬탄한다는 뜻이다.

 

도량청정무하예(道場淸淨無瑕穢)

삼보천룡강차지(三寶天龍降此地)

아금지송묘진언(我今持誦妙眞言)

원사자비밀가호(願賜慈悲密加護)

 

도량청정무하예(道場淸淨無瑕穢)의 도량은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수행하는 사람의 마음이고, 청정(淸淨)의 청은 맑은 것, 사념(邪念)이 없는 것이고, 정은 깨끗한 것이니 맑고 깨끗한 것이다. 무하예(無瑕穢)의 무는 없는 것이고, 하(瑕)는 옥의 티나 허물이며 예(穢)는 더러운 것이니 허물이나 더러움이 없는 것이다. 그러하니 대비주(大悲呪)로 수행하는 사람의 마음은 맑고 깨끗하여 티가 없고 허물도 없으며 더러움도 없다가 된다.

삼보천룡강차지(三寶天龍降此地)의 삼보(三寶)는 불법승(佛法僧) 삼보이고 천룡(天龍)은 천룡팔부 신장님으로 우리들의 신앙의 대상으로써 우리들을 악귀(惡鬼)로부터 보호하여 주시고 소원 성취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불가사의한 위신력을 갖고 계신 신(神)이다. 이러한 선신(善神)들이 대비주를 항상 외우며 수행하는 사람의 청정한 마음자리에 내려오셔서 머무신다는 뜻이다.

아금지송묘진언(我今持誦妙眞言)의 아금(我今)은 지금 내가이고, 지송(持誦)의 지(持)는 가지다 유지하다이고, 송(誦)은 외우다 암송하다이니 계속 끊임 없이 암송하다이다. 묘진언(妙眞言)은 묘한 진언이니 대비주(大悲呪)를 의미하는 것이므로, ‘내가 지금 끊임없이 대비주를 암송하고 있사오니’가 된다.

원사자비밀가호(願賜慈悲密加護)의 원사(願賜)는 내려주시기를 원한다이고, 자비(慈悲)는 관세음보살님의 대자대비하신 위신력이며, 밀가호(密加護)는 은밀한 가피로 보호한다는 뜻이니, ‘원하옵건데 대자대비하신 관세음보살님의 은밀하신 가피로 저를 보호하여 주소서’가 된다.

대비주(大悲呪)를 지송해 마음이 티 없이 맑아진 사람에게는 모든 사람 모든 중생이 다 부처로 보이게 되고 부처님께 공양 올린다는 것은 곧 그들에게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해 주는 것이다. 이것이 곧 처처불상(處處佛像) 사사불공(事事佛供)이라는 의미이다. 내 아내 부처님, 내 남편 부처님, 내 시아버지 부처님, 내 시어머니 부처님 모두가 부처님이라고 생각하고 대하게만 되면 좋고 편안하고 훌륭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마음은 몸에도 늘 좋고 건강한 기운(氣運)을 흐르게 하여 정상적이고 건강한 세포가 생성된다. 건강하고 좋은 세포는 좋은 파장을 내보내 건강한 정신을 만든다. 그러므로 좋은 세포는 좋은 생각을 만들어내는 그릇이다. 좋은 세포는 좋은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에너지를 끊임없이 생산하여 남보다 앞선 생각을 항상 유지하게 하여 세상을 이롭게 한다. 이러한 이유로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자유롭고 풍요롭게 살 수 있는 비결을 가진다고 하고, 여기에서는 삼보천룡강차지(三寶天龍降此地)라고 했다.

반대로 나쁜 생각을 가진 사람은 기도도 되지 않을 뿐더러 나쁜 기운을 만들어 나쁜 세포를 만들고 나쁜 세포는 나쁜 생각을 방출하여 주변을 어지럽게 하고 삼보와 천룡의 보호도 받지 못한다.

대비신주를 외워 마음이 티 없이 맑아진 사람의 마음에는 모든 업장이 녹아내려 아무런 근심 걱정이 없는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의 마음에는 아무런 장애가 없어 마음이 허공처럼 가없는 마음이 되어 삼보와 모든 천룡 신장님들이 머무는 곳이 됨으로 삼보천룡강차지(三寶天龍降此地)라고 한다.

항상 이 대비신주를 외우고 있는 마음이라는 뜻으로 아금지송묘진언(我今持誦妙眞言)이라 했고, 우선 내 몸과 마음, 가정과 사회, 인류와 중생을 위해 자비하신 관세음보살님께서 은밀하게 저의 소원을 이루게 하여 주소서라는 서원으로 원사자비밀가호(願賜慈悲密加護)라고 했다.

 

다. 참회게(懺悔偈)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주기적으로 계속 반복하여 지송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복잡했던 마음이 순화(純化) 되어간다. 그러면서 자기의 잘못을 알게 되고, 뉘우치게 되며, 부끄러운 마음이 일어나게 되어 저절로 참회를 하게 된다.

 

아석소조제악업(我昔所造諸惡業)

개유무시탐진치(皆由無始貪瞋癡)

종신구의지소생(從身口意之所生)

일체아금개참회(一切我今皆懺悔)

 

위에서 모든 번뇌를 없앤다고 하였는데 그 방법은 바로 참회이다. 참회는 언제나 먼저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는데서 시작되는 것이다. 상대가 잘못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한 진정한 참회가 될 수 없다. 자기의 잘못을 알고, 인정하고, 잘못한 말과 행동을 후회하고, 마음속으로 그 잘못한 이치를 깨달아, 간절하게 참회하는 것을 이참(理懺)이라고 한다. 절실하고 간절한 이참(理懺)이 없이는 숙세에 지은 업(業)의 습(習)을 소멸하기 어려운 것이다.

담배를 피우는 습이나, 노름을 하는 습이나, 술을 마시는 습에 대해 비록 자기가 잘못된 것이라고 인정하면서도 끊기가 어렵다. 이것은 자기의 잘못에 대해 간절하고 절실한 이참(理懺)이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간절하고 절실한 이참(理懺)과 더불어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청소 간병 등의 노동 봉사, 혹은 5백배 절을 한다든지, 남을 즐겁게 하는 말을 하고 이롭게 하는 일을 한다든지, 재물 보시 행, 독경 혹은 사경 등을 하는 것을 사참(事懺)이라고 한다.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은 상대와 하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지만,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성품은 상대와 별개(別個)로 존재하거나 서로 반목하는 감정적인 요소를 가지게 된다. 그러므로 상대와 별개로 존재하는 성품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지송하는 공덕이 쌓이게 되면 그 공덕의 위신력이 먼저 그 성품을 무너뜨리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성품이 먼저 무너져야만 한다. 왜냐 하면 이러한 성품을 유지하고 있는 한, 입에서 울려나오는 <신묘장구대다라니>를 듣는 자와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지송하는 자가 뚜렷하게 별개로 강화되어 주객(主客)이 항상 분명하여 주인공과 주인공 밖의 사물이 하나가 될 수 없어 염불삼매에 들 수 없기 때문이다.

주인공과 주인공 밖의 사물이 분명하게 존재할 때는, 탐욕과 진에, 대립과 경쟁, 반목과 시기 질투를 일삼게 됨으로 번뇌가 소멸되기보다 오히려 증장되기 때문이다. 즉, 성불(成佛)의 길보다 지옥의 방향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지극한 마음으로 <신묘장구대다라니>를 반복해서 지송하는 가운데 번뇌가 점차 소멸되면서 상대와 내가 별개로 존재한다는 존재 개념에 변화가 오게 되어 필경에 나와 네가 별개가 아니라는 이치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단계에 오르게 될 때 입에서 울려나오는 <신묘장구대다라니>를 듣는 자와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지송하는 자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둘이 아님을 체험하게 된다. 이렇게 둘이 아닌 단계에 오르기 위해서는 끝없는 이참(理懺)과 사참(事懺)이 계속 반복되어야 하는 것이다.

 

아석소조제악업(我昔所造諸惡業) 개유무시탐진치(皆由無始貪瞋癡) 내가 옛날에 지은 모든 악업은 시작이 없는 오랜 옛적부터 익혀온 탐진치(貪瞋癡) 삼독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탐진치(貪瞋癡)의 탐은 물질, 명예, 애정 등에 과분한 욕심을 내는 것이고, 진은 원한관계에서 일어나는 감정이나 욕심을 채우지 못하는 불만에서 일어나는 감정이며, 치는 어리석은 것이니 탐욕이나 진에를 일으키는 것이 어리석음인데 이는 모두 자기 밖에 모르는 이기심에서 나오는 것이니 이기심이 어리석은 마음이다. 그리고 탐진치 삼독은 종신구의지소생(從身口意之所生) 신구의(身口意) 삼업을 좇아서 생겨난 것이다. 삼독은 다시 백팔 번뇌가 되고 백팔 번뇌는 팔만사천 번뇌가 되는 것이고, 팔만사천 번뇌는 팔만사천 병고(病苦)가 되는 것이다. 이 병고를 치유하기 위해 일체아금개참회(一切我今皆懺悔)를 하는 것이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지은 일체의 잘못에 대해 나는 지금 모두 참회한다. 우리는 번뇌와 병고(病苦)는 아주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번뇌가 병고가 되기 전에 모두 참회하여, 미리 병고(病苦)를 예방하는 처방이 되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