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상반야, 관조반야, 문자반야

2007.02.25 19:32

bultasa Views:9705

실상반야, 관조반야, 문자반야


반야는 지혜라는 의미가 됩니다. 그런데 현상계를 보는 지혜를 반야라고 하지 않고 실상계(實相界)를 보는 안목, 보고 판단하는 지혜를 반야라고 합니다.

실상계(實相界)라고 함은 모든 이름과 형상과 문자의 얽매임에서 완전히 벗어난 상태를 말합니다. 이와 같이 벗어난 상태를 인격화 한 것이 비로자나불입니다. 비로자나불을 법신(法身)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므로 실상과 법신은 동격이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세계를 볼 수 있는 안목을 실상반야라고 합니다.

실상은 진리 그 자체이기 때문에  영원하고 불변하며 불멸하고 어느 것에 의하여도 파괴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실상반야는 법신의 무변하고 무량한 지혜가 됩니다.


실상(實相)의 이치를 관조하는 지혜를 관조반야(觀照般若)라고 한다. 실상의 이치는 현상에서 나오고 현상의 이치는 실상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상을 관조하면 실상의 이치가 나오고 실상을 관조하면 현상의 이치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상과 실상은 둘이 아닌 하나의 조화된 세계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상즉실상 상즉성(相卽性) 성즉상(性卽相) 차별즉평등 중생즉불 지옥즉열반을 관조하는 지혜를 관조반야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관조해서 실상의 이치를 꿰뚫어 볼 수 있고 실상에서 현상을 꿰뚫어 볼 수 있을 때 이 행자는 보신불(報身佛) 혹은 응신불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관조반야를 수행하는 사람들을 감응하게하고 그들이 닦은 만큼 그 결과를 체험하여 더욱 발심하여 정진하게 하는 부처입니다.


부처가 되기 위한 수행은 아니지만 우리들의 일상생활에서도 관조반야와 유사한 경우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자동차 정비공이 엔진 소리만 듣고 무엇이 고장인 것을 정확히 꼬집어 내어 고쳐서 자동차가 잘 운행될 때 이것이 일종의 관조반야가 되는 것입니다. 엔진 소리는 현상이고 고장난 부분은 실상입니다.

의사가 환자 얼굴만 보고 무슨 병인지 정확히 진단하여 처방을 내어서 환자가 완치되었으면 이것도 역시 일종의 관조반야입니다. 환자의 얼굴은 현상이고 환자가 아픈 부분은 실상입니다.

다만 불교에서 말하는 관조반야는 생명의 실상을 관조해서 알아내는 지혜인 것이 다를 뿐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치심은 문자화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글을 통해서 부처님께서 그 법을 설하실 때의 마음을 읽게 됩니다. 왜냐하면 문자는 부처님의 마음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문자를 통해서 그 당시 부처님의 마음에 영향을 미친 현상과 부처님의 마음을 표현하신 실상을 직관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게 됩니다. 문자를 통해서 현상과 실상을 직관 할 수 있는 능력을 문자반야라고 합니다. 요즈음 문자에 집착하거나 개념에 집착하여 불경(佛經)의 원 뜻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들이 흔히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들을 초월할 수 있는 것이 문자반야입니다.

문자반야에 이르기 위해서는 마음이 밝고 선명하여야 합니다. 밝고 선명하기 위해서는 청정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청정한 마음에서 문자반야를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문자반야는 금강의 밝고 선명함에 해당하고 화신불에 해당합니다. 글자를 알면서도 글자에 집착하여 자기가 글자에 또는 형상에 집착하고 있는 줄을 모르고 계속 오류를 범하고 있는 중생이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중생을 위하여 화신불이 그들을 깨우쳐서 그들의 잘못을 알게 합니다.


<금강경 강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