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상즉시비상(我相卽是非相)

2007.02.25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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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상즉시비상(我相卽是非相)


“나다”라고 내 세우는 상은 곧 상이 아니라고 해석된다. 그래도 무슨 말인지 사람에 따라서는 알송달송한 말이다.

어떤 화단에 장미, 채송화, 해바라기 그 밖에 여러 가지 꽃이 있다고 생각하여 보자. 어떤 사람은 나는 장미꽃을 좋아한다. 어떤 사람은 나는 채송화 어떤 사람은 해바라기를 좋아한다. 어떤 사람은 땅에 붙어 자라는 나지막한 꽃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큰 나무에 피는 꽃을 좋아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 꽃은 좋고 저 꽃은 싫다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이 꽃은 이렇게 예쁜데 저 꽃은 왜 저렇게 못생겼을 까고 생각하며, 그에 대한 답도 해명도 스스로 하곤 한다.

이와 같은 사람들은 역시 인간의 삶 속에서도 이 사람은 좋고 저 사람은 나쁘고 이 사람은 이래서 좋고 저 사람은 저래서 싫다고 스스로 짓고 스스로 해명하는 사람이 되기 쉽다.

꽃을 보되 좋다 싫다로 꽃을 분별하지 아니하고 그 꽃이 고유하게 가지고 있는 개성을 보는 사람은 역시 인간의 삶에서도 사람을 대함에 좋고 싫다로 사람을 분별하지 아니하고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개성을 보고자 하게 된다. 꽃을 보되 좋다 싫다로 꽃을 분별하는 사람은 금강경에서 말하는 분별심이 있는 사람이요 꽃을 보되 좋다 싫다로 꽃을 분별하지 아니하고 꽃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개성을 보고자 하는 사람은 분별심이 없는 사람이고 망념이 없는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은 인간의 삶에서도 사람을 접함에 좋고 나쁘다로 사람을 분별하지 않고 사람마다 가지는 고유한 개성을 있는 그대로 보고자함에 분별심이나 망념이 없는 사람이다.  

말하자면 이 나무는 가늘고 저 나무는 굵다. 이 나무는 곧고 저 나무는 꾸불꾸불하다고 각각의 나무가 가지고 있는 개성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나무는 가늘어서 좋고 저 나무는 굵어서 싫다든가 이 나무는 똑 곧아서 좋고 저 나무는 꾸부러져서 싫다고 하는 것은 분별심이요 망념이며, 이와 같은 식의 사고방식은 꽃과 꽃 사이에 나무와 나무 사이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 좋은 순서대로 혹은 나쁜 순서대로 차등을 매기는 망념으로 전개되고 그 사람의 망념에 의한 계급사회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각자의 개성을 바라볼 줄 아는 것은 연기법에 순응하는 이치가 된다. 이 세상에 모든 것이 연하여 생기(生起)한다는 이치이다. 꾸부러진 나무는 꾸부러진 나무대로 곧은 나무는 곧은 나무대로 가는 나무는 가는 나무대로 굵은 나무는 굵은 나무대로 모두가 각기 감당할 책임이 있고 일이 있다는 것이다. 좋다 나쁘다고 하는 것은 짧은 소견으로 세상의 이치를 볼 줄 모르는 어리석음에서 오는 것이다.

꾸부러진 나무가 필요할 때 곧은 나무가 아무리 많이 있어도 필요에 응하지 못하고, 어떤 사람이 두두 물물의 개성을 있는 그대로 본다면 이 사람은 두두 물물 일체가 평등함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노인은 싫고 젊은이는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노인과 젊은이의 차별이 이루어지는 분별심이 일어나지만, 노인은 노인대로 그 개성이 있고 젊은이는 젊은 이대로 그 개성이 있다고 보는 사람에게는 노인은 노인으로서 할 일이 있고 젊은이는 젊은이로서 할 일이 있는 법이니 본질적으로 보면 늙고 젊음이 평등하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세상의 이치를 보는 사람에게는 꾸부러진 나무가 처음부터 싫은 점이 있어서 싫어한 것이 아니라 나무를 보는 사람의 상(相)에 의하여 싫어한 것을 아상이 있다고 하였으니 그 나무에게는 아상이란 원래 없었던 것이다. 그러하니 아상이란 처음부터 나무를 보는 사람의 허상이었으니 아상이 아상이 아니라(我相卽是非相)는 말이 된다. 이와 같은 까닭에 아상도 없고 인상도 없고 중생도 없고 수자상도 없으며, 이러한 이치를 아는 사람이 아상이라고 하는 것은 곧 아상이 아니며,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라고 하는 것도 역시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와 같이 일체 허상을 여읜 사람을 부처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2003. 0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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