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내홍과 사회폭력

2011.01.17 21:31

현성 Views:6703

대한불교 조계종의 한 성직자로서 깊은 반성을 하는 주제이다.

왜냐하면 일반사회 사람들이 스님의 말을 믿고 따라 준다면 가정의 내홍과 사회폭력은 수습될 수 있는 문제이지만, 일반 사람들과 스님 사이에 신뢰가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스님의 말을 들으려 할 이가 없다.

들으려 하지 않으니 소통이 불가능하고, 소통이 불가능하니 가정의 내홍과 사회폭력에 대해 스님이 기여할 수 있는 길이 없다.

 

가정의 내홍과 사회폭력은 오랫동안 몸과 마음에 쌓여온 긴장과 스트레스가 마음의 상처가 되어 화(火)로 폭발하는 현상이다.

내가 상대하는 사람들이 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내가 원하는 일에 오히려 장애가 된다고 생각해 미운 마음이 일어나고, 그 미운 마음이 증폭되어감에 따라 긴장과 스트레스는 화로 돌변해, 감당할 수 없는 가정폭력이나 사회폭력현상으로 나타나게 된다.

즉 가정의 내홍과 사회폭력의 뿌리는 오랫동안 몸과 마음에 쌓여진 긴장과 스트레스이고, 긴장과 스트레스는 상대방이 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해 불만스러워 일어나거나, 내가 상대방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까 두려워하는 생각에서 일어난다.

 

그 뿌리는 우리들의 심성(心性)에, 남에게 기대고 싶고, 무엇인가 원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기대와 원(願)이 긴장이나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는 것은 이들은 모두 나의 생각이지 상대방이 생각하고 원하는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에 있다.

그러므로 상대방이 내 마음을 이해해 줄 이 없고, 이해해 주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실망(失望)이나 절망(絶望)이 스트레스로 이어지는 것이다.

즉 ‘나는 너를 위해 힘든 일을 다 했는데 너는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 는 불만이 솟게 된다.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사람들이 사람의 본성을 알지 못하는 데 있다.

 

사람은 각자가 자기의 세계를 형성하며 살아간다. 부인은 부인의 세계가 있고, 남편은 부인과 다른 자기의 세계를 형성하여가며 살아간다. 부모와 자식, 형제지간에도 마찬가지 이다.

내 눈에 좋다고 보이는 것이 부인의 눈에는 그렇지 않을 수 있는 것은 각자 타고난 성품인 업(業)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내가 옳다”는 생각을 하고 말을 해도 나는 나의 업에 근거해 “옳다”고 생각하고 말한다는 사실을 모른다.

남편과 부인 사이에는 업이 서로 다를 수밖에 없는 남녀(男女) 사이인데, 업이 다른 것을 인식하지 못하니 서로의 기대에 미칠 수 없는 쌍이 될 수밖에 없다. 남자이든 여자이든 본인이 업(業)의 소산(所産)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상대방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잘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주장이 고집스러워 지고 상대방은 오히려 짜증스런 대상으로 여겨지게 된다.

 

내 자신이 업의 소산이라는 것을 안다고 해도, 우리는 각자가 어떤 업의 소산인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모른다. 이것 역시 문제의 뿌리가 되는 동시에 자기 상실(喪失)의 원인이 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서 “내가 하는, 일 거수 일 투족을 알아차리는 수련을 시킨다.” 즉 내가 걸을 때 어떻게 걷고 있는가를 알아차리는 훈련이다. 매순간마다 움직이는 내 몸의 동작을 알아차린다. 내가 말을 할 때, 말하는 동작을 알아차리고, 소리를 들을 때, 소리를 듣는 나를 알아차린다.

그 다음 단계로 어떤 경우에 어떤 감정이 일어나는 가를 알아차리는 수련을 한다.

다음은 내 뜻을 내가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를 알아차리고, 감정표현을 어떻게 하고 있는 가를 알아차린다. 내 몸과 마음의 작용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한 다음, 나의 긴장이나 스트레스 그리고 무거운 마음이 어떻게 형성되고 있는지를 관찰하는 수행을 한다. 긴장, 괴로움, 슬픔, 우울함, 무거운 마음 등을 조용히 살펴보고 있으면 그 형성과정이 떠오른다. 떠오르는 형성과정을 조용히 보고 있으면, 이들이 소멸될 수 있는 방편이 떠오른다. 떠오르는 방편대로 하고 있으면 이들이 하나하나 소멸되어 마음이 가벼워지고 희열(喜悅)이 느껴진다. 희열은 업이 소멸되고 성품 변화에서 오는 가벼움이요 기쁨이다. 이 기쁨은 내 업이 소멸되었을 때 비로소, 상대방의 업이 내 눈에 비춰져 그에게 귀를 기우리게 되고, 그를 이해하고, 나로 인해 그가 받은 고통을 알아차리고 껴안아 주고, 사랑과 자비를 그에게 베풀고자 하는, 새 사람이 된 것에서 오는 희열이다.

이것은 남편이나 부인이 서로 의지하려거나 기대나 바람 등이 있는 접촉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스스로 자기가 하는 일을 알아차리고, 잘못된 업이 떠올라 소멸됨에서 오는 변화이고, 혼자만이 할 수 있는 자기 변화이다. 긴장이 없는 편안하고 자유로운 사람이 되면, 상대를 즐겁게 해 주고자하고 또 그렇게 해 줄 줄 아는 도사(道士)가 되는 도리이다

 

“나무”라는 제목으로 시(詩) 한 수 적어보겠다.

 

봄철에 하늘을 찌르듯 솟아나는 기상. /

녹색(綠色)으로 장엄하여 풍요(豊饒)를 즐기는 여름철,

누구를 부럽다 하겠는가. /

각양각색으로 아름답게 단장한 가을 철 단풍잎,

꽃보다 더 아름답지 않는가. /

겨울철이 되면 일체를 벗어 버리고,

가지와 줄기만으로도 눈보라와 한파(寒波)를 모르는

개선장군들처럼 유연하게 서 있는 그 모습,

믿음직스럽지 않는가. /

우리들 가정의 내홍(內訌)과 사회폭력(暴力),

설 곳이 어디 일까.

 

 

대한불교조계종 시카고 불타사 주지 현성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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