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斷)과 불생(不生)

2009.05.11 00:16

현성 Views:6781

단(斷)은 ‘끊음’이고 불생(不生)은 ‘나지 않음’이니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번뇌가 일어나지 않으면 끊을 것이 없으련만, 괴로움과 슬픔이 나를 괴롭히고 있으니 어떻게 이들을 끊어버려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할 수 있을까?

요즈음 자유주의 국가에서는 인권과 자존심을 국민개인의 가장 높은 권리라고 하여 이를 어떠한 상대로부터도 법적으로 보호받게 되어 있다. 부부지간에서도, 부모와 자녀지간, 고용주와 피고용인지간, 친구지간, 개인과 국가와의 관계에서도 인권과 자존심이 법적으로 보호받게 되어 있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러한 제도는 인간의 존엄성을 세우고 지켜주기 위한 고귀한 정신에서 나온 것이지만 사람들에게는 묘(妙)한 대가 있어 이 귀한 정신을 잘못 이용하여 자기의 존재 가치를 잃어버리게 하고 상대와 화목해 지는데 도움이 되기보다 오히려 불신(不信)과 불화(不和), 불평(不平)과 원한(怨恨)의 원인이 되는 예가 자주 일어나는 것이 현실이다.

불신(不信)과 불화(不和), 불평(不平)과 원한(怨恨)은 많은 번뇌를 일으키게 하여 자신의 안녕과 가정과 사회의 사랑과 화합(和合), 행복(幸福)과 평화를 장애하게 된다.

 

어떻게 해야 인간의 존엄성을 대변하는 인권과 자존심을 보호하면서도 불신(不信)과 불화(不和), 불평(不平)과 원한(怨恨)이 일어나지 않게 할 수 있을까?

상대로부터 내 인격에 손상이 되는 말이나 행동을 받았을 때, 속상하는 감정이 일어나기 마련인데 어떻게 하면 그 속상한 감정을 끊을 수 있을까? 아니, 그 감정이 일어나지 않게 할 수 있을까?

누가 나를 모욕했을 때, 일어나는 상(傷)한 감정을 끊는다든가 상할 감정이 처음부터 일어나지 않게 한다는 것은 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나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법이 있다는 것은 가해자(加害者)와 피해자(被害者)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가해자가 있는 한 피해자가 있고, 피해자가 있으면 가해자가 있기 마련이지만, 피해자에게 가해자가 원하는 것이 없다고 가정하면, 가해자가 상대를 해(害)할 원인이 없어진다. 그리고 가해자가 상대의 재물(財物)에 욕심을 내지 않아도 또한 가해(加害)할 원인이 소멸되는 법이다. 어떻게 해야 피해자에게는 가해자가 원하는 것이 없고, 가해자는 피해자에게서 원할 것이 없을 수 있을까?

 

사람들에게는 애욕(愛慾)과 물욕(物慾)이 있다. 그들이 이기적(利己的)으로 작용할 때는 그가 가해자가 되어 피해자가 생길 가능성이 있음으로 그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해야 한다. 그러나 이타적(利他的)일 때, 그의 애욕(愛慾)은 전체를 사랑하는 자비심(慈悲心)으로 일어나고, 물욕은 대중의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게 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하고자 하는 일이 이타적(利他的)일 때는 상대를 돕고자 하는 것이므로 가해자와 피해자가 성립될 수 없다. 이러한 이타적인 사회가 될 수만 있다면 법적으로 호소할 인권이 자연스럽게 끊어지고 이타적인 사회가 성숙되어 가면서 인권이라는 법적권리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

인간의 존엄성을 권리로서 주장하는 법적 쟁의(爭議)는 이기주의적(利己主義的)사회에서 일어나는 현상이고, 인간의 존엄성을 권리로서 주장하지 않아도 항상 그 자리에 머물고 있는 현상은 이타주의적(利他主義的)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다. 이기주의적 사회는 불신(不信)과 불화(不和), 불평(不平)과 원한(怨恨)이 만연하는 사회가 되고, 이타주의적사회는 신뢰(信賴)와 화목(和睦) 그리고 사랑과 평화가 있는 사회가 될 것이다.

 

과연 이타주의(利他主義)가 가능한 것일까?

현대사회에 와서 힘 있는 사람들이 하는 이기주의적 사고(思考)와 행동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이고 있다. 이기주의는 항상 상대로부터 득을 보려는 사상이므로 폭력, 살상, 투쟁, 쟁의(爭議), 지능적 사기(詐欺), 성추행, 가정불화, 사회불안, 종교 간의 대립과 전쟁 등이 시간과 더불어 점점 무성해져 가 급기야 사회 전체를 살기 어려운 위험한 지경에 이르게 했다. 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들 사이에서도 불신(不信), 불화(不和), 불평(不平)과 원한(怨恨) 등을 일으키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우주의 실상(實狀)인 연기법(緣起法)을 무시하는 이기주의(利己主義)적 사고(思考)와 행위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 연기법이라고 알려진 우주의 법질서에 순응하기 위해 이기주의적 사고와 행위는 끊어져야 하고 인간사회에서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여 상대에게 해(害)를 끼치기보다 도움이 되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해 가야 한다.

불교적 이타주의는 이 우주의 일체 존재들은 각기 다른 모든 존재들과 서로 인연을 맺으면서 살아감으로 남의 생명을 존중하는 것이 바로 나의 생명을 존중하는 것이 되고, 상대를 공경하는 것이 바로 나를 위하는 것이 되는 것이며, 상대의 생명이 위험하면 내 생명이 곧 위험해지는 법이니 ‘나’를 위해 나는 없고 상대만 있다는 마음으로 상대와 하나 되고 이웃과 하나 되어 하나 된 마음으로 이웃을 위하는 일에 적극적이어야 한다는 사상이면서 신앙의 대상이다.

 

「금강경」제17품 끝 부분에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통달(通達) 무아(無我) 법(法) 자(者)는 진시(眞是) 보살(菩薩)이다. 라고 하셨다. ‘나는 없다’는 무아법(無我法)을 통달한 사람은 만 중생의 근심 걱정을 끊어버리게 하고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여 그들을 편안하게 하는 일에 전념하게 되는 참된 보살(菩薩)이라 하셨다.

불교의 무아법(無我法)을 이해하고 실행함으로서 자기 스스로 자신의 편안을 얻고, 부족함을 모르는 가정의 사랑과 사회의 평화를 위해 도움이 되는 삶을 영위하시기를 기원한다.

 

대한불교조계종 시카고 불타사 주지 현성 합장

2009.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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