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경쟁과 극한투쟁

2009.06.02 19:06

현성 Views:6995

우리는 무한경쟁시대에 살고 있다. 무한경쟁은 자연스럽게 극한투쟁으로 전개된다. 극한투쟁이란 자기의 이익을 위해 투쟁을 극대화 하는 것이니 서로 간에 혐오(嫌惡)감도 더할 수 없이 깊어지고 그 싸움에서 진자는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는 극단에 처하게 되니 삶보다 죽음을 택하게 되는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애도를 표하고 명복을 빌기 위해 꽃과 향을 숙연한 마음으로 올린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노 전 대통령의 서거가 이 세계 전체의 흐름, 즉 정치, 경제, 사회, 교육의 흐름을 재평가하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왜냐하면 노무현 전 대통령뿐만이 아니라 한국, 미국 그리고 모든 나라에서 무한경쟁과 극한투쟁으로 말미암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고 또 지금도 희생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나 미국 내 기업과 기업사이가 그러하고, 기업과 노동자와의 사이에서도 그러하며, 세계의 기업과 기업이 그러하며, 중동지역의 전쟁이 그러하고, 이란과 유럽과의 관계가 그러하며, 북한과 이웃나라들과의 관계도 그러하다. 몰리면 죽는 것이니 끝까지 싸울 수밖에 다른 수가 보이지 않는 세계에 우리 모두가 살고 있고 물들여져 있다.

 

무한경쟁시대와 극한투쟁은 이기주의(利己主義)를 공인(公認)하는 이 세계와 이 시대에서는 불가피한 흐름이다. 이기주의의 이점(利點)을 무시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기주의로 인한 실점(失點)이 이점(利點)을 능가하고 있는 예도 무수히 많다.

전쟁으로 인한 손실, IMF, 현재 휩쓸고 있는 금융 쓰나미 및 기업 도산(倒産), 자살, 범죄, 송사(訟事), 고민, 우울증 등 수많은 사회적 병과 인간 병의 원인의 주범(主犯)이 바로 이 이기주의가 아닌가.

사람과 사람사이에 서로 믿을 수 없는 것도 언제 저 사람이 나의 경쟁자로 변신할지 모르기 때문이고, 서로 의지하고 믿고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의 형성을 불가능하게 하는 것도 이기주의적 사조(思潮)가 만연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불교에서는 이기심(利己心)은 탐욕(貪慾)의 원인이고, 자신이나 단체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병(病)과 불화(不和)의 원인이기에 자신과 남을 위해 반드시 소멸해야할 대상으로 취급한다.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이기심(利己心)을 완전히 소멸하는 길만이 남이 나를 신뢰하고, 의지하고, 정(情)을 나누며 살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이기심이 조금도 없는 마음을 무심(無心)이라하고 무심을 실천할 수 있는 ‘나’를 무아(無我)라고 한다. 전체의 이익을 위해 자신을 완전히 희생할 수 있는 마음의 자세이다. 이를 무아(無我)사상이라고 부를 수 있는데 현대사회의 조류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사상이다.

현 시대를 주름잡는 지도자들이 바로 이 점을 깨달아 실천해야 한다. 특히 정치와 금융계통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무아사상이야말로 진정으로 나를 구원하고 남을 구원할 수 있는 길’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오로지 남을 위해 자기를 바치는 일이 사람으로 태어나 해야 할 책임이라고 인식하고 그렇게 실행할 때 사람들은 그를 신뢰하고 의지할 대상으로 받들 수 있고 정(情)을 나눌 수 있게 될 것이다.

사람을 대할 때 득을 보려는 마음보다 돕고자하는 마음이 앞서 있을 때 비로소 사람과 사람 사이에 신뢰가 형성되고 정을 나눌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며 서로가 전체를 위해 무엇인가 하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나는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다.

전통적인 한국문화 민족은 항상 전체를 위해 자기를 희생할 수 있는 마음의 자세가 되어 있었다. 우리말에 주어로서 “나”라고 하여 자기를 세우는 어법(語法)은 대단히 무례(無禮)하게 들렸다. “우리”가 항상 주어로서 “우리”라고 부르는 것이 극히 자연스러운 것은 바로 우리 민족이 공동체를 존중하는 문화민족임을 새롭게 인식하게 한다. “나”를 세우는 서구문화에서 이기주의가 나온 것이지 “우리”를 세우는 우리의 고유문화에서 나온 것은 아니다.

 

혹자는 무아주의가 이기주의보다 경제를 발전시킬 수 없을 것이라고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는 근거가 있다. 역사적으로 위대하였던 과학자, 철학자, 음악가, 예술가들은 결코 이기주의자가 아니라 무아주의자들이다. 왜냐하면 이기주의자들에게는 자신을 위해 원하는 것이 있기에 그들이 발전할 수 있는 한계가 있다.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경제 위기가 바로 그 한계에서 온 것이다. 그러나 무아주의자들은 자신을 완전히 비우고 전체를 위해 전념할 수 있는 사람들이기에 상상을 초월하는 새로운 세계를 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전체가 다 같이 서로 믿고 의지하고 정을 나누며 풍요 속에서 평화롭게 잘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가 형성될 수 있는 마음의 자세가 바로 이기심(利己心)이 없는 무심(無心)이다.

무심(無心)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과 사람사이, 단체와 단체사이, 국가와 국가사이에서 무한경쟁을 할 이유가 없을 것이니 극한투쟁을 할 이유도 물론 없을 것이다. 국가 간에 일체 전쟁무기가 필요 없을 것이니 그 많은 돈을 인류 평화사업을 위해 활용하여 지구상에 기아(飢餓)문제와 온난화를 해결할 수 있게 될 것이고 무한경쟁과 극한투쟁으로 인해 일어났던 자살(自殺)이라는 비극이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이 세상은 아름답고 안락(安樂)하게 살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오직 5% 미만의 사람들의 이기심(利己心)이 그들의 눈앞의 이익을 위해 순박(淳朴)한 전체를 불안(不安)하게 하고 절망(絶望)의 함정으로 몰아가고 있는 현실을 직시(直視)해야 한다.

 

2009년 6월 1일

대한불교조계종 시카고 불타사 현성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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