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人間)과 인생(人生)

2009.07.06 01:02

현성 Views:7611

 인간(人間)이라 함은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를 의미하는데, 빈부(貧富)의 차이로 일어나는 감정문제나 계급의 상하(上下)에서 생기는 감정문제를 비롯해 종교 간의 문제, 남녀 간의 사랑문제, 송사(訟事)나 전쟁도 모두 인간문제이다.

인생(人生)이라 함은 사람의 목숨이 생(生)하고 멸(滅)하는 문제이니 생노병사(生老病死)의 문제이다. 태어나서 건강하게 살거나 병드는 일들이 모두 인생문제이니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던 상관없이 나이는 먹어야 하고, 나이가 들면 몸은 쇠약해지며, 더욱이 죽음은 받아 들여야 하는 일 등이 인생문제이다.

사람들이 이 세상에 태어나 살면서 고민을 떨쳐버릴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사람으로서 겪지 않을 수 없는 인간문제와 인생문제이다. 때로는 인간문제가 머리 아프게 하기도 하고, 혈압이 높아지게 하기도 하며, 심하면 자살 충동이 일어나게 하기도 한다. 때로는 인생문제로 죽음에 대한 공포감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물욕(物慾)의 충동은 현재 미국사회에 관한 한 인생문제라기 보다 인간문제에서 일어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불교에서는 이러한 인간문제와 인생문제가 일어나는 원인은 인간의 무지(無知) 때문이라고 한다. 인간문제이든 인생문제이든 자신은 물론 세상은 수시(隨時)로 변하고 있는데 그 변함을 보지 못하는 무지(無知)가 문제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변하고 바뀜으로서 일어나는 문제를 변하고 바뀌는 안목으로 보고 해결책을 찾으려 하니 문제의 실상을 바로 진단할 수 없고 또 바른 해결책이 나올 수 없다. 모든 변화 속에는 반드시 상대적인 변화도 있고, 변하지 않는 실상(實相)이 있는데 그 상대적인 변화와 실상을 함께 볼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면, 얼음이 녹으면 물이 되고, 물은 습기가 되어 안개가 되기도 하고 구름이 되고 비가 되기도 하며, 이슬이 되기도 하고 증기(蒸氣)가 되기도 한다. 이와 같이 물은 다양한 모습으로 변하고 바뀌어 가면서도 물이라는 속성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각 형태의 농도가 높을 때는 상대적으로 낮을 수 있고, 낮은 것은 높을 수 있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얼음이 주변의 기온의 변화에 따라 녹을 수 있는 것인데 만약 얼음이 녹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녹지 않으려고 얼마나 발버둥 치며 괴로워할까? 얼음이 다 녹아 버리는 것을 죽음이라고 생각한다면 얼마나 괴로운 일일까?

얼음에게 괴로움이 일어나는 것은 얼음이 얼음으로 영구히 존재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음이 얼음이면서도 물의 성질을 가지고 있음을 깨달을 수만 있다면, 얼음 자신이 얼음이면서 그 본질은 물이요, 물이면서 얼음인 것을 지각(知覺)할 수 있을 것이다. 얼음의 본질이 물이므로 『반야심경』의 구절을 인용하여 얼음은 물과 다르지 않고, 물은 얼음과 다르지 않으며, 얼음이 곧 물이요, 물이 곧 얼음이라는 법칙을 설할 수 있다. 구름, 안개, 이슬 등을 가지고도 이렇게 설할 수 있다.


그리고 얼음이라는 형체가 사라지는 것을 공(空)해지는 것이라 하고, 얼음은 한 물질로서 색(色)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색(色)은 공(空)과 다르지 않고, 공은 색과 다르지 않으며,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라는 부처님의 말씀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공(空)이라는 의미가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는 뜻을 비유로서 설명할 수 있다. 얼음이 공(空)해지니 얼음의 본래의 성품인 물로 돌아갔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바로 공(空)의 도리이다. 즉 공해진다는 것은 앞에 것은 없어지지만 뒤의 것인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니 진공묘유(眞空妙有)의 깊은 뜻이 있는 것이다.

사람은 죽으면 지옥, 아귀, 축생, 사람, 아수라, 하늘로 육도윤회(六道輪回)한다고 한다. 마치 물이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하듯 사람은 자기가 지은 업(業)에 따라 여섯 가지 다른 길로 다음 생의 몸을 받게 되는 것이라 한다. 이 생(生)에서 죽는 것을 공(空)이라 한다면 아무 것도 없는 공(空)이 아니라 이 몸의 본래의 모습인 의식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마치 물이 어떠한 모습으로 변하더라도 물의 성질을 여의지는 않는 것과 같이, 사람의 의식(意識)도 어떠한 몸을 받아 윤회한다고 하더라도 그 의식을 여의지는 않는다. 죽는다고 하는 것은 얼음이 녹듯이 몸이 사라지는 것이고, 얼음이 녹아 물이 남듯이 몸이 사라지면 의식인 마음이 남게 된다.


인간사(人間事)를 바르게 해결하지 못하는 원인은 변하고 바뀌는 것을 보고 변하고 바뀌는 것으로 해결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얼음이 자신이 녹는 것을 보고 해결책을 찾으려 하니 바른 대책이 나올 수 없지만, 혹 변하지 않는 물이 녹고 있는 얼음을 보게 되면 그에 대한 바른 해결책이 나올 수 있다는 말씀이다. 인생사(人生事)와 인간사(人間事)에 있어서도 항상 문제에서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 때문에 문제를 오히려 더 복잡하게 얽히게 만들어 간다.

인생사(人生事)와 인간사(人間事)의 문제는 어떠한 문제라도 의식(意識)을 떠나 있는 문제는 없다. 그리고 인생문제와 인간문제가 공(空)해지면 의식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니 의식의 입장에서 인생문제와 인간문제를 바라보고 그 해법을 찾아야 한다.

의식의 입장에서 이 두 문제를 보게 되면 첫째 몸은 나고 죽음이 있지만 의식은 나고 죽음이 없음으로 그에 대한 두려움이 일어나지 않으니 인생사가 문제될 것이 없고, 둘째 의식은 윤회하는 과정에서 특정한 몸을 받고 또 죽는 것은 일체 만물과 상호관계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음으로 남을 위하는 것이 바로 나를 위하는 것이요, 남을 해치는 것은 바로 나를 해치는 결과가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자신을 위한 물욕(物慾)보다 이웃을 돕고자 하는 인덕(仁德)과 지혜로서 세상을 보고 다스리게 될 것이니 인간문제도 처음부터 일어날 일이 없다. 이러한 의식은 육도윤회에 대한 걱정을 할 이유도 없다.

  

2009. 7. 6

대한불교 조계종 시카고 불타사 주지 현성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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