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와 탐욕

2009.08.16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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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좋은 사람을 흔히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하는데, 불교적으로 보면, 돈을 잘 버는 머리를 가졌다고 지혜로운 사람이라 하지 않는다. 그 돈을 버는 직업과 인연된 사람들과도 편안한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돈을 잘 벌 수 있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그리고 벌은 돈을 사회에 회향(回向)함으로서 부(富)의 사회공유(共有)사상을 유지해 가는 사람을 지혜롭고 또 자비(慈悲)로운 사람이라 한다. 이러한 자비행(慈悲行)을 보살행(菩薩行)이라 하고, 보살행을 하는 사람을 보살(菩薩)이라 부른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보살행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의 이치를 깨달아 실천하는 사람이라 하여 부처를 이루었다고 성불(成佛)한 사람이라 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음(陰)을 배척하지 아니하고 양(陽)을 구하기도 하고, 양을 배척하지 않고 음을 구하기도 하여 음과 양의 조화를 이루게 할 수 있는 묘(妙)가 있는 사람이다. 길고 짧은 것, 아름답고 추(醜)한 것, 선(善)하고 악(惡)한 것, 천국(天國)과 지옥(地獄), 돈이 있고 없는 것, 명예가 높고 낮은 것, 등 수 많은 상대적인 현상세계에서 타(他)를 멸시하거나 버리지 아니하고도 구(求)할 것을 구해 항상 타(他)와 조화(調和)를 이루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고,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을 위한 탐욕이 없고, 남을 위해 발고여락(拔苦與樂)하는 자비심이 강하고, 사회의 자유와 평화를 위한 원력이 있다.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한 행위로, 남을 이롭게 함으로서 자신에게도 이롭게 하는 마음은 탐심(貪心)이라 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에게 주는 피해(被害)를 감안하지 않거나 무시하는 사람의 마음을 탐욕심(貪欲心)이라 한다. 이러한 사람이 아무리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하더라도 불교에서는 지혜로운 사람이라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러한 사람은 돈을 많이 벌수록 스스로 자신을 탐욕의 올가미에 씌워지게 하여 자유를 잃게 하고 돈이 있는 것이 오히려 마음의 고통을 면할 수 없게 하기 때문이다.

탐욕은 지혜의 눈을 가리게 하는 동기가 된다. 어떤 사람의 눈에 돈만 보이고 의리(義理)가 보이지 않는 것은 지혜의 눈이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혜의 눈을 열기 위해서는 우선 탐욕을 비워야 한다. 탐욕은 주로 3가지로 나타나는데, 우선 돈에 대한 탐욕이고, 다음은 이성(異性)지간에 일어나는 불륜(不倫)관계로 맺어지는 애욕(愛欲)이라 하겠다. 현대사회에서 새로운 문제로 대두되는 비만(肥滿)증세는 식욕(食慾)의 과욕(過慾)으로 지혜의 눈을 잃은 탐욕이다.

그러므로 탐욕과 지혜는 서로 배척하려는 관계에 있다. 탐욕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지혜를 버려야 하고, 지혜를 세우기 위해서는 탐욕을 지워야 한다. 일체 탐욕을 악마의 군데라고 하여 마군(魔軍)이라 하는데, 이를 완전히 소탕(掃蕩)한 자리를 마군의 구속에서 해방되었다고 하여 해탈(解脫)이라 한다. 해탈하는 찰나 진리를 체험하게 되는데, 이를 정각(正覺)이라 하고, 정각을 이룬 사람은 탐욕에 얽매임이 없어 사실을 사실대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되는데 이를 사물을 바르게 보는 정견(正見)이라 한다. 사물을 바르게 보는 사람이 부처이다.

 

탐욕과 지혜는 지극히 상반(相反)되기는 하지만 조금 깊이 보면 믿음에 관한 문제가 된다. 어떤 사람이 돈이 곧 힘이라고 무조건 믿는다면 맹목적으로 돈을 추구하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이는 어리석게 자기 밧줄로 자기를 묶는 자승자박(自繩自縛)이 되어, 남이 자기 돈을 뺏을까 의심, 공포(恐怖), 불안(不安)속에 있게 된다. 애욕(愛欲), 식욕(食慾), 명예욕(名譽慾)도 이와 같다. 탐욕으로 일으킨 모든 것은,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결국은 모두 허물어지게 되는 허망(虛妄)과 허무(虛無)에 빠지기 마련이니 믿음을 잘못 선택한 결과이다.

지혜(智慧)는 돈이든, 애욕이든, 식욕이든 무엇이든 형상(形相)이 있는 모든 것은 모두 허무하다는 것을 믿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이렇게 믿는 사람의 마음은 걸림이 없어 거울처럼 맑고 깨끗해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지혜의 눈을 가지게 된다. 불쌍한 사람을 불쌍하게 볼 수 있는 눈을 가져 그들의 고통을 들어주고자 하는 마음, 기쁨을 나누어 주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나게 된다. 이것이 곧 욕심이 없는 마음에서 지혜가 일어나고, 지혜로운 마음에서 자비심이 소생하며, 자비심은 모든 불쌍한 중생을 돕고 구원하고자 하는 원력을 일으키게 된다.

 

우리들의 마음에는 탐욕스런 마음도 있고, 지혜로운 마음도 함께 있다. 다만 환경과 조건의 영향을 받아 살기 위해 각자가 그들의 근기에 따라 믿는 바가 다를 수 있을 뿐이다. 즉 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 되는가 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라 해도 결국 죽음은 찾아오는 것이니, 그간에 잘못한 과보를 받게 될 것이니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는 사람은 남에게 해(害)가 되는 일보다 득(得)이 되는 일을 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니 그 공덕(功德)의 과보를 받게 될 것이니 지혜로운 사람이 된다.

그리고 지혜로운 사람의 마음에는 바로 부처의 모든 공덕이 그의 마음에 있다는 사실을 믿는 마음이니, 모든 생명을 존중하는 지혜심과 그들의 어려움을 돕고자 하는 자비심, 그리고 일체 중생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헌신(獻身)하겠다는 원력(願力)이 있게 된다.

탐욕과 지혜는 상반(相反)되는 극(極)과 극이나 믿음에서 나눠진 극이니, 믿음을 바로 세움이 한 인생의 일대사 인연 중 가장 긴요한 인연이다.

 

 

대한불교 조계종 시카고 불타사 현성 합장

2009.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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