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

2007.09.17 17:22

bultasa Views:7533

오랜 세월 동안의 습관대로 지금도 새벽 3시면 잠이 깬다. 5년 전 화계사에서부터 들여진 버릇인데 아무리 이불 속에서 게으름을 피워도 10분, 15분 이상은 몸이 쑤셔서 누워있지 못한다.
허리운동, 발 때리기, 등 운동을 하고, 정좌를 하고 이산해연선사 발원문과 법성게 그리고 때로는 화엄경 약찬게를 암송한다. 그리고 나서 조용히 앉아 있으면 어제 있었던 일과 오늘 할 일들이 생각나고 점차 정념(正念)에 든다.
4시 30분에서 40분 사이에 일어나 절 앞문을 연다. 항상 시원한 향기가 온몸을 적시고 상쾌한 기분을 안겨준다. 하늘을 바라보면 구름이 꽉 차서 전혀 움직임이 없는 날, 비 오는 날, 구름이 빠른 속도로 달리는 날, 새벽마다 다른 그림들을 펼쳐 보여준다. 오늘 새벽에는 별들이 총총히 반짝이고 찬바람이 스며드는 맑은 가을 하늘이다. 저 하늘에 별들이 저렇게 매달려 있고 이 지구도 공중에 매달려 있다고 생각해 보면 변화무상한 하늘 속에서 각자의 궤도를 달리는 만상(萬像)이 신비하기만 하다.

오늘따라 구름 한 점 없이 반짝이는 저 하늘이 바로 영원히 죽지도 않고 나지도 않는 내 본래의 마음자리, 아무런 연(緣)이 없을 때 나타나는 본래의 모습, 불생불멸(不生不滅)의 모습이 아닐까? 구름, 바람, 비, 기온 등이 인연 따라 일어나는 각양각색의 모습이고, 이들이 때로는 재앙을 불러오기도 하고 사라지면 온화하고 향기로운 날씨를 일으켰다가 또 변덕스럽게 풍파를 일으키는 저 하늘이 바로 예측불허(豫測不許)하게 나고 죽는 나의 모습이 아닐까? 일어났다 사라지는 이 모습들이 바로 인연 따라 일어나는 생멸(生滅)의 법칙이고, 인생무상(人生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의 도리가 아닐까? 구름 한 점 없는 저 하늘이라는 바탕이 있기에 구름이 일어났다 사라질 수 있는 것이고, 구름 없는 저 하늘은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더러워지는 것도 아니고 깨끗해지는 것도 아니며 늘지도 줄지도 않으니 이를 불생불멸하다고 했다. 이 불생불멸이 곧 생멸(生滅) 작용이 일어날 수 있는 근본이기에,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이 불생불멸하는 하늘이 전능한 힘을 가진 하늘이고, 이 하늘이 곧 모든 생명들이 가지고 있는 본래의 마음이며 이로부터 나온 것이니, 이가 곧 전능한 힘과 지혜를 가진 부처이다. 부처로서 모두가 평등하니 모두는 항상 일체 중생을 공경하라고 하셨다. 이 말씀이 곧 가정의 화목과 세계 평화의 지침이다. 

4시 50분에서 5시 사이에 이와 같은 진리를 가르쳐주신 부처님께 새벽예불을 모신다. 깨끗한 청정수와 향을 올리고 예불을 모신다.
「제가 이제 이 깨끗한 물로 감로(甘露) 차를 만들어 삼보님께 받들어 올리오니 받아 주소서, 간절한 마음으로 올리오니 받아 주소서, 지극한 마음으로 청하옵나니 받아 주소서.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 삼계(三界)에 오르는 길을 가르쳐 주시는 스승이시고 태로 낳는 생명, 알로 낳는 생명, 습기로 나는 생명, 화(化)해서 생기는 생명, 이 네 가지 법으로 태어나는 모든 생명들의 자비하신 아버님이시고 가장 근본 되시는 우리들의 스승 석가모니부처님께 마음 다해 청정한 목숨의 자리로 돌아가 예경하나이다.」라고 하며 예불문이 시작된다. 그리고 나서,
「조석으로 부처님 전에 향과 등불 올리며 삼보님께 귀의하고 세존님께 예경하나이다. 부처님 법 바퀴 굴려 이 지구상에 모든 병란(兵亂)이 소멸되고 백성들이 안녕(安寧)하고 천하가 태평하게 되여 지이다.」하며 축원을 하고, 모든 업장을 소멸시키고자 하는 반야심경을 봉독한다.
또, 「정구업진언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하며 천수경 봉독을 시작한다. 천수경 중 한 대목은 「하늘땅의 모든 성중 모두 함께 보살피사 백 천 가지 온갖 삼매 순식간에 이루어져 삼매광명 지닌 몸은 밝고 빛난 깃발 되고 삼매광명 지닌 마음 신통함을 갖추었네. 세상티끌 씻어내고 고통바다 어서건너 대보리의 방편문을 속히 얻게 하사이다. 대비주를 항상 외워 이제귀의 하옵나니 원하는 일 마음 따라 원만하게 하사이다.」이렇게 관세음보살님의 심오한 영험을 체험하는 말씀이 계속되고 난 다음 「정법계진언(淨法界眞言), 라자의 색이 선명하고 흰 것이 둥근 점으로 장엄된 것은 상투를 구슬로 장식함과 같으니 ‘람’자를 가장 높은 곳에 놓아라! 진언은 법계와 같아서 한량없는 죄업을 모두 없애니 일체 더러운 곳에 이 ‘람’자를 놓아라. 나무 사만다 못다남 남.」하고 천수경을 맺는다. 그리고 사람들의 고통은 원래 없는 것이었으나 사람들이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 사상(四相)을 세움으로서 일어나는 법이다. 이러한 상은 꿈과 같고 아지랑이와 같은 것이니 집착하면 고통이 따를 뿐이다. 이 사상을 소멸함으로서 위없이 높고 바른 도를 깨닫게 된다는 최상승법문인 금강경 독송을 하고, ‘얼마나 닦아야’ 혹은 ‘청산은 나를 보고’를 한 곡 부르고 새벽 예불을 마친다.

단조로운 새벽 예불이지만 ‘나’를 지켜주시는 기둥이고 ‘나’를 길러주시는 양식이다. 현재의 염원과 고민은 ‘이 땅에 와, 발을 굴리고 손을 놀릴 수 있는 자유를 얻고자 하시는 많은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 주지 못하는 미약함이다. 새벽 예불 때마다 이들의 안녕과 평화, 그리고 자유로운 삶을 위해 기도드린다. 

대한불교 조계종 시카고 불타사 주지 현성
2007. 9.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