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어라!

2008.08.26 22:38

현성 Views:6949

멈추어라! 


불교에서는 멈출 지(止)자를 많이 쓴다. 지관(止觀)은 멈추는 것을 바라봐라 이고, 또 지동(止動)이라고 하여 움직임을 멈추라는 말도 있다. 요즈음같이 빠르게 달려야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에서 멈추라는 말은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미국 이민생활 30년, 40년간을 회상해 보면 달리고 또 달려왔지만 자녀를 기르고 교육시킨 것 외에 특별히 한 것이 무엇인가 의문스러운 때도 있다. 부부지간에도 달리기만 해왔지 추억에 남을 만한 사랑을 해본 것도 아득하게 느껴지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불타는 성취욕을 만족시키기 위한 최선의 노력이었지만 만족할만한 성공도 해보지 못하고 인생만 석양(夕陽)빛이 가득하게 되었다. 어떻게 이렇게 되었을까? 멈출 줄을 몰랐기 때문이다.


하던 일을 잠시 놓고, 조용한 시간을 가질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졌더라면 인생의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도 생각해볼 여유가 있었을 것이다. 인생의 가치를 생각해 봤더라면, 내 몸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감지해 낼 수 있었을 것이고, 가족들의 변화도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가졌을 것이다. 더욱이 내가 보고 듣지 못해 알지 못하는 세계가 내가 아는 세계보다 몇 천만배 더 깊고 넓다는 것을 생각해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즉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미미(微微)한 것인가를 알게 되었을 것이다.


내 욕망을 멈추고 고요히 생각해 보면, 불행이나 몸의 병은 욕망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욕망을 멈추면 곧 편안해짐을 알게 된다. 지관(止觀)이란 고요한 마음으로 움직이는 욕망을 바라봐 멈추게 하는 수행이다. 욕망이 멈추어지면 곧 마음의 평화가 온다.

술을 마시고자 하는 욕망이나 담배를 피우고자 하는 욕망에 따라 술 담배를 하다보면 그 욕망이 증폭될 뿐 만족은 없다. 그러나 술 담배의 욕망을 끊어 멈추게 되면 그 스스로가 술 담배 없이도 자족(自足)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욕망을 추구하기보다 욕망을 멈추어서 자족할 수 있는 이치를 깨달을 때, 자신을 비롯하여 그의 주위에 있는 일체가 시간상으로나 공간상으로 이 우주와 하나가 되어 끊임없이 서로 의지하면서 서로 주고받으며 그 생명을 유지하다가, 그 의지가 멈춤으로 돌아가고, 그 다음 다시 남을 의지해 생명을 받는 것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 몸 자체에 이 우주에 있는 모든 요소들을 구비하고 있어 소우주가 되는 것이다. 그러하니 이 몸을 보고 우주를 알 수 있으며, 시작이 없는 예로부터 이어온 역사를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욕망을 멈춤으로서 이 몸과 마음의 신비성(神秘性)을 감지하여 고요함 가운데서 자족(自足)할 수 있는 고유한 성품을 찾아갈 수 있게 된다. 이 성품을 찾으면 우주의 다양성(多樣性)에서 조화(調和)를 볼 수 있게 됨으로 불만이 사라지고, 불만이 사라진 고요함이 곧 안락(安樂)이 되는 것인데, 이 안락(安樂)은 간단(間斷)이 있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안락이므로 열반(涅槃)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극락(極樂)이라고 하기도 한다.


다양성에서 조화를 이룬다고 함은 나와 다른 것을 대립적(對立的)이거나 적대시(敵對視)하는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또 서로에게 이로움을 줄 수 있는 관계로 발전시켜 갈 수 있는 지혜의 문이 열리게 된다는 의미이다. 한국을 비롯하여 세계 역사가 혼탁하게 엮여져가는 원인을 생각해보면 다양성에서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나와 다른 것이나 집단을 적대시하는 습성에서 오는 것이라 생각된다.

불교에서 공동체의 화합을 최상의 목표로 삼는 원인이 여기에 있다. 그리고 성취욕이 그렇게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왜냐하면 자기의 욕망을 성취하고자 서로 공생(共生)할 수 있는 기회를 끊어버리고 부질없이 하는 일은 많아도 행복할 수는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취욕에 대한 불만의 극치가 핵가족가정마저 해체되고 있는 현대 사회의 모습이다.


공생(共生)의 조화(調和)는 욕망의 움직임을 멈추게 하는 지동(止動)의 수련이나 지관(止觀)법을 닦아서 이 몸 자체도 나의 영(靈)이 홀로 이룬 것이 아니라 부모의 연을 받아 물, 불, 흙, 열 기운을 받아 이루어졌고, 유지되어 가다가 연이 다하면 흩어지는 것이고, 부모의 연은 시작이 없는 예로부터 비롯된 것이니 이 몸에 그 역사가 다 있는 것이요, 물, 불, 흙, 열은 이 우주를 구성하는 요소이면서 그들 자체도 홀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상호 의존하고 있는 것이니 공생(共生)의 조화(調和)를 떠나 홀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이 우주 안에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이 우주 운행(運行)의 이치이니, 욕망 추구를 근본으로 하는 현대사회는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 공멸(共滅)하는 길로 가고 있는 불행한 사회라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까닭에 지동(止動)의 수행이나 지관(止觀)법을 닦아 자신의 몸 안에 있는 신비성(神秘性)을 감지하고 자족할 수 있는 지혜의 문을 열어 이 우주 법계의 다양성을 조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길러서 언제 어디서나 누구를 만나도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어 이익을 서로 나눌 수 있는 아량과 안목이 증장되기를 기원한다.


대한불교 조계종 시카고 불타사 주지 현성 합장

2008. 6.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