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와 나

2007.02.25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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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와 나


정해년(丁亥年) 돼지들은 한결같이 ‘내’가 있기에 ‘남’이 있고 ‘남’이 있기에 ‘내’가 있는 이치를 알기에 ‘남’을 항상 배려하고 공경한다. 이들은 현명해서 ‘햇님’이 있기에 ‘내’가 있고 ‘내’가 있기에 ‘햇님’이 빛을 보내주시는 사실을 알아 ‘햇님’에게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다. 이들은 지혜로워 ‘바닷물과 강물’이 있기에 ‘내’가 있고 ‘내’가 있기에 ‘바닷물과 강물’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 ‘물’을 마실 때마다 두 손 모아 합장한다.

정해년 돼지들은 한결같이 ‘내’가 있기에 ‘지구라는 땅’이 있고 ‘이 땅’이 있기에 ‘내’가 걸어 다니며 자연을 즐길 수 있게 하고, 먹고 살 수 있는 곡식이 자랄 수 있게 한다는 사실을 알아 이 ‘땅’에 감사한다. 이들은 ‘내’가 있기에 ‘하늘’이 있고 ‘하늘’이 있기에 ‘내’가 숨을 쉬고 이렇게 살아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 공기를 더럽히는 어리석은 자들을 경계한다.

정해년 돼지들은 총명하여 ‘부모 형제’가 있기에 ‘내’가 있고 ‘내’가 있기에 ‘부모형제’가 있는 이치를 알기에 ‘부모’를 공경할 줄 알고 형제간에 당연히 정답게 살아간다.


이들은 우둔하지 아니하여 배부르면 배부른 줄 알아 욕심내지 아니하고, 명예란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조차 모르니 허망한데 신경 쓰지 않고, 부정(不淨)할 줄 모르니 부패(腐敗)해지지 아니하며, 내가 누구인지도 알고 사랑이 무엇인지도 알아 남을 사랑할 줄 아니 항상 즐겁고 보람 있게 그리고 화목하게 살아간다.

정해년 돼지는 천국(天國)에서 금년에 특별이 이 땅에 오셨기에 지혜롭고, 현명하고, 총명하며 우둔하지 아니하다. 천국에서 오셨기에 ‘나’라는 뜻을 알고 ‘자유(自由)’라는 말의 의미를 생활화 할 줄 안다.

사람들은 ‘자유’와 ‘평등’을 삶의 원칙으로 삼고 있다. 부부간에도 평등하고 부자지간에도 평등하며 남녀지간에도 사회의 계층간에도 모두 평등원칙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자유도 마찬가지이다. 아들도 부모로부터 자유, 부인도 남편으로부터 자유, 남편도 부인으로부터 자유, 나는 너로부터 자유, 너는 나로부터 자유(롭기를 원한다. 이렇게)를 주장하는 현세에서는 자유와 평등이 오히려 이기심(利己心)을 조장하고, 조장된 이기심은 결국 단합하기 어렵고 행복하기 어려운 세계(로)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들어 가는 원심력(遠心力)의 근본이 된다.


정해년 돼지는 최고의 자유를 누리는 돼지들이다. 돼지들의 자유는 인간사회의 자유와 달리 돼지 각자의 내면적인 자유이다. 내면적인 자유라는 것은 내가 좋다고 하고 나쁘다고 하는 것이 나의 과거의 경험에 비춰봐서 좋다고 하기도 하고 나쁘다고 하지만 같은 경험이라도 시간과 장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과거의 경험에 구속받지 않는 자유이다.

옳다 그르다 하는 것도 시간과 장소가 변하면 옳았던 것이 지금은 그를 수도 있고 그르던 것이 옳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과거사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를 누린다. 즉 개념으로부터의 자유, 습관으로부터의 자유, 감정으로부터의 자유, 말과 행동으로부터의 자유를 누릴 줄 안다. 그러므로 돼지의 세계에서는 ‘너’로부터 ‘내’가 자유롭다는 뜻으로 보다 ‘내’ 심성(心性) 중에 부정(不淨)하고 잘못된 성질로부터 ‘내’가 자유로워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사람들의 평등은 가진 자와 가지지 않은 자, 남자와 여자, 그리고 ‘너와 내’가 평등하다는 의미에서 출발하지만 돼지의 세계에서의 평등은 내 목숨이 나에게 가중 귀중한 것이라면 남도 그의 목숨이 그에게는 가장 중요한 것임을 알아 그의 건강을 내 몸처럼 보호하라는 의미에서의 평등이며, 나에게 ‘참 나’가 있음과 같이 그에게도 그의 ‘참 나’가 있으니 그의 인격을 존중해야 한다는 의미에서의 평등이다.

내 물건이 나에게 귀중하다면 남도 그의 물건이 그에게는 귀중한 줄 알고, 내가 아내에게 갖는 사랑이 아름다우면 아내가 나에게 갖는 사랑도 아름다운 것임을 알고 행하는 것이 돼지세계에서의 평등사상이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자유와 평등이 인간과 인간 사이를 오히려 소연(騷然)하게 하고 분리(分離)시키는 원인이 되지만, 돼지와 돼지 사이의 관계에서의 자유는 자기 내에서 남과의 사이에서 문제가 될 만한 성품을 사전에 제거함으로서 얻어지는 자유이고, 평등은 상대를 나와 그의 입장에서 볼 줄 아는 것이 평등이므로 상대의 입장과 근기를 이해 할 수 있게 되고, 그의 입장과 근기에 맞추어 대하게 됨으로 그를 편안하고 그리고 부드럽게 만들어 주게 된다. 이러한 자유와 평등은 돼지들이 아무리 수가 많더라도 항상 하나로 뭉쳐지게 하는 구심력(求心力)이 되는 근본이 된다.


그러면 돼지와 나는 같은 것일까 다른 것인가? 돼지는 애물(愛物)이 아니고 식용(食用)이니 나는 돼지를 먹는다. 돼지를 내가 먹었으니 내 안에 돼지가 있다. 내 안에 돼지가 있으니 나는 돼지와 다르다고 할 수도 없고, 돼지가 나와 다르다고 할 수도 없는 관계이다.

대기(大氣)의 공기의 기운도, 햇빛의 기운도, 지구의 흙 기운도, 바다와 강의 물 기운도 곡식과 야채 과일로 화하여 모두 내 몸 안에 이미 있으니 우주의 만법이 곧 ‘나’요, 내가 곧 우주의 만법이다. 이러하니 ‘나’는 이 우주의 모든 법을 나와 같이 사랑하고 공경하지 않을 수 없는 존재이다.  


2007. 2. 18.
대한불교 조계종 불타사 현성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