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親日派)

2007.02.25 19:06

bultasa Views:6573

친일파(親日派)


원효스님은 그의 『대승기신론별기』에서 사람 마음의 바탕은 본래 사사로움이 없고, 공평무사(公平無私)하다고 했다. 사람 마음의 바탕이 사사로움이 없는 이치는 때 묻지 않아 맑은 하늘과 같이 깨끗하기 때문이고, 공평(公平)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마음이 본래 바다와 같이 넓고 거대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바꾸어 말하면 사람의 마음에 때가 끼어있어 업장(業障)이 두터우면 사견(私見)에 눈이 어둡게 되어 마음이 깨끗하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이 좁고 작으면 한 쪽으로 치우침이 강하여 공평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사람 마음이 하늘처럼 맑고 깨끗하고 거대한 바다처럼 넓어 공평(公平)하면 주어진 환경에 따라 움직임과 고요함이 일어난다. 움직임이 일어나는 곳에는 높이 솟아나는 것도 있고 아래로 내려가는 것도 있으며, 더러워지는 것도 있고 깨끗해지는 것도 있다. 는 것을 볼 수 있는 눈이 있다.

움직임과 고요함은 별개의 것이거나 배타적인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조건에 따라 움직이고, 조건에 따라 움직임이 쉬는 것이 고요함이니, 주어진 환경에 따라 파도가 일어나면 움직이는 것이고 파도가 잠자면 고요한 것이다. 파도도 물에서 일어났고 고요함도 물에서 일어나는 것이니 파도도 물이요 고요함도 물이다. 그러하니 파도와 고요함은 서로 배타적인 관계에 있는 것같이 보이기는 하지만 둘이 아닌 것이라 분리(分離)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파도와 고요함은 서로 조화(調和)를 이룰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치로 높이 솟아오르는 것도 아래로 내려가는 것도 배타적인 관계인 것처럼 보이지만 배타적인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솟아오르는 것도 물이고 내려가는 것도 물이니 분리할 수 없어 서로가 상대를 버릴 수 없기 때문에 융화(融和)를 이루게 할 수 밖에 없다. 더러운 것과 깨끗한 것과의 관계도 이와 같다. 더러운 물이 일어나는 것도 환경에 따라 일어나는 것이요, 깨끗한 물이 솟아나는 것도 주어진 환경에 따라 일어나는 것이니 처음부터 더럽고 깨끗한 물이 따로 있었던 것도 아니요, 물 스스로 자기를 더럽힌 물도 없고 물 스스로 자기를 깨끗하게 한 물도 없다는 것이다. 더러운 것도 물이요 깨끗한 것도 물이니 바다처럼 넓고 하늘처럼 깨끗한 마음으로 사심(私心) 없는 공평(公平)한 마음으로 융화할 수밖에 없다고 원효스님은 말씀하신다.

요즈음 우리들의 조국인 한국의 정치권에서는 60년전 친일파를 수색한다고 나라가 시끄럽고 방향감각을 잃은 것같이 보인다. 원효스님의 말씀에 따라 이 문제를 살펴보면 첫째 이 문제를 검색할 수 있는 주체는 하늘처럼 맑고 깨끗하여 사사(私私)로움이 조금도 없는 사람들이 바다처럼 거대한 마음을 가지고 공평무사(公平無私)하게 친일파를 가리는 작업에 임하여야 한다. 그러나 현재 친일파를 수색하고자 하는 주체가 여당이고 당리당략에 눈이 어두운 사람들이 일을 밀어 붙이고 있으니 나라에 또 하나의 불행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할 수 밖에 없다. 둘째는 더러운 물이든 깨끗한 물이든 환경에 따라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오늘의 더러운 물이 정화되어 깨끗한 물이 될 수도 있고, 깨끗한 물이 환경에 따라 오염되어 더러운 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더러운 물도 물이고 깨끗한 물도 물이기 때문에 배타적인 관계에 있는 것도 아니요 서로 버릴 수 있는 관계에 있는 것도 아닌 것이다. 이와 같이, 한 때 각자의 주어진 조건에 따라 친일적인 행위를 했던 사람도 해방 후 애국한 사람도 있고, 설사 일제 때 친일을 하지 않은 사람도 625라는 환경에서 반애국적이었던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이들은 모두 엄밀하게 따져보면 나라에 주어진 불행한 조건에 의하여 생성된 일들이다. 친일파로 규정을 해도 한국 사람이요, 친북파로 규정을 하여도 한국 사람이고, 이러한 규정을 받지 않은 사람도 한국 사람이다.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은 각자가 자기 나름대로 자기의 위치에서 귀중한 존재이기에 누구도 상대를 배타적으로 단죄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서로가 불행한 조건에서 일어난 상대의 불행을 감싸주어 조화(調和)를 이루고 융화(融和)하는 길만이 모든 한국 사람들이 편안히 살 수 있는 길이다. 자기편이 득을 보려고 상대편을 불행하게 하고자 함은 또 하나의 편을 가르고 불행한 씨를 심는 어리석은 일일 뿐, 나라와 사회와 국민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 없다.

면면히 이어져 온 우리의 민족정신을 화해(和解)와 융화(融和)의 대화합(大和合)정신으로 지켜 나가야 한다. 불행한 환경에서 서로 다르게 일어난 과거지사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집착하지 말고, 서로 잘한 것을 칭찬하고 못한 것을 감싸는 융화(融和)정책이 더 시급하다. 더러운 물과 깨끗한 물이 서로를 받아들이듯이 더러움과 깨끗함이 서로 융화할 수 있는 공평무사(公平無私)한 정책을 쓴다면 모두가 몸과 마음으로 화합하여 어려움을 극복하고 편안하게 살 수 있는 힘과 지혜를 규합할 수 있을 것이다.


2004.8.20.
대한불교 조계종 시카고 불타사 주지 현성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