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신년사 - 공(空)과 불공(不空)

2007.02.25 19:10

bultasa Views:7045

2005년 신년사 - 공(空)과 불공(不空)


을유년 새해를 맞이하여 불교에서 말하는 공(空)과 불공(不空)의 뜻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인간은 지배욕이 있습니다. 이 지배욕은 자연을 지배하려 하기도 하고, 남의 나라를 지배하려 하기도 하며, 인간과 재물을 지배하려 하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좋은 것은 가지려 하고 싫은 것을 버리려 하는 차별심도 있습니다. 이러한 지배욕과 차별심은 지구상에 전쟁과 테러, 지구와 공기의 오염, 그리고 국가 사회 가정의 불화 등을 일으키는 요인이 되어 모든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불안 속에서 강박한 심정으로 살아가게 만듭니다.

지배욕은 ‘나’와 나의 상대가 있고 그 상대를 남보다 먼저 ‘내’가 독차지 하려는 심정이나 남이 가지고 있는 것을 빼앗아 ‘자기 것’으로 만들어 지배하려는 마음에서 생깁니다. 차별심은 이 세상에 ‘내’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만져보는 모든 것이 마음에 드는 것이 있고 들지 않는 것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마음에 든다고 취하려하고 들지 않는다고 버리려하는 마음이 강하여 집착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많은 문제와 불화를 일으키는 요인이 됩니다. 즉 다시 말하자면 꽃이 예쁘다고 보는 것은 좋지만 꺾어서 자기 방에 갖다 놓고 자기만 보고자 하는 마음이 문제입니다.

이러한 지배욕과 차별심을 불교에서는 거짓되고 허망한 마음, 즉 망심(妄心)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망심을 제거하지 않는 한 잘못된 세계와 사회 그리고 가정을 구제할 수 없다고 봅니다. 이러한 망심을 제거하는 작업을 공(空)한다고 합니다. 곧 망심을 부정(否定)하고 버릴 때 그것을 공(空)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가정에서 부인이 남편의 뜻에 따라 순종하는 것은 부인이 남편을 지배하려는 마음이 없는 것이요, 남편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있지만 부인 자신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없으므로 이 부인은 자기의 지배욕과 차별심을 공(空)한 것입니다. 이럴 때 오로지 남편은 있지만 자기는 없는 것입니다. 부인이 이와 같은 마음을 지속하는 한 가정은 원만하고 화목할 것입니다.

그러나 남편이 부인을 너무 무시한다는 생각이 들게 되면 부인은 더 이상 순종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집니다. 오히려 반항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을 때는 남편을 지배하고 싶은 마음과 남편이 자기에게 하는 행동이 좋고 나쁘다는 차별심이 일어나는 동시에 ‘나’는 존재하고 남편이 보이지 않게 됩니다. 이 때 이 부인은 더 이상 공(空)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공(空)이 불공(不空)이 된 것입니다. 불공(不空)은 내가 있는 것이니 유(有) 혹은 색(色)이라 하기도 하고 망심(妄心)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불공(不空)이 된 시점(時點)이 공(空)의 마지막 시점과 같기 때문에 이 시점에서 보면 공(空)은 불공(不空)과 다르지 않으니 이것을 반야심경에서 색불이공(色不異空) 공불이색(空不異色)이라 하여 색은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은 색과 다르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부인이 남편의 설명을 듣고 거듭 생각한 후에 역시 내 남편이 제일이라고 믿고 순종하면, 이 때 부인은 불공(不空)을 공(空)하였으니 공(空)만 남게 됩니다. 부인이 남편을 지배하고자 하는 마음과 남편의 말에 차별을 두는 마음이 사라지니 ‘나’는 없어지고 남편만 있게 됩니다. 이것을 불가(佛家)에서 공(空) 또는 무(無)라고 표현합니다.

이와 같은 생활에서 부인이 자신에게 있는 자신의 성격을 소멸하고 거짓된 망심을 완전히 여의어 더 이상 공(空)하게 할 망심(妄心)이 없을 때의 공(空)을 여실공(如實空)이라합니다. 이 여실공(如實空)의 시점은 곧 여실불공(如實不空)이 일어나는 시점입니다. 즉 여실공과 여실불공은 다르지 않습니다. 다르지 않기 때문에 여실공이 곧 여실불공이요 여실불공이 곧 여실공이 됩니다. 이것을 요약하면 공이 곧 불공이요 불공이 곧 공이 됩니다. 그런데 불공(不空)은 공한 것이 아니므로 색(色)이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불공(不空) 대신에 색(色)을 넣은 것이 바로 반야심경에서 말씀하시는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 됩니다. 그러므로 반야심경에서 말씀하시는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은 여실공(如實空)과 여실불공(如實不空)의 경지입니다.  

여실공(如實空)이 여실불공(如實不空)이 되는 이치는 부인이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은 자기를 버리고 남편을 따르는 점에서 공(空)이지만 이 공은 수동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이 지나면 부인은 남편의 마음을 미리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생겨 능동적으로 남편을 보필하여 훌륭한 남편의 내조자가 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지혜(智慧)가 생기게 되어 지혜로써 남편을 보필하게 됩니다. 지혜가 일어나는 것이니 지혜는 있는 것이고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공이 아닙니다. 공이 아니니 불공(不空)이 됩니다.

앞에서 설명한 불공(不空)은 망심이 남아 있는 가운데서 일어나는 불공(不空)이고, 후자의 불공은 망심이 완전히 사라진 가운데서 일어나는 불공(不空)으로 모든 문제를 개척해 나갈 수 있는 지혜가 일어나는 불공(不空)입니다. 두 불공(不空)은 그 격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후자의 불공은 참되어 여여한 불공이라 하여 여실불공(如實不空)이라 하고, 여실불공을 이룰 수 있는 공(空)을 여실공(如實空)이라 합니다. 이 여실불공은 가난을 극복하고 부(富)를 창조하는 지혜와 자신의 안정(安定), 가정의 화목, 사회와 국가를 평화롭게 할 수 있는 지혜의 보고(寶庫)인지라 그 안에 무루성공덕(無漏性功德)을 구족하고 있다고 부처님께서 설하셨습니다.

새해에는 모든 사람들이 아상(我相)을 여의고 망심(妄心)을 제거하여 여실공(如實空)을 성취하고 여실불공(如實不空)의 지혜로서 보다 원만하고 성숙한 삶을 창조하여 무궁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자신 가정 사회 나라를 이룩하기를 지극한 마음으로 기원합니다.


2004.12.25.
시카고 불타사 주지 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