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성지 순례기(5)

2007.02.25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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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성지 순례기(5) - (2005.3.27, 현성스님)


1월20일 목요일 새벽 일찍 바라나시를 출발하여 수자타 마을의 대탑을 참배하고 니련선하를 건너 보드가야에 들어와 마하보디 대탑에 도착하였다. 이 때는 이미 해가 상당히 저물어 대탑 사진을 찍기에는 너무 어두워 대단히 아쉬웠다.

보드가야는 고타마 싯달타가 위없이 높은 우주의 진리를 깨달으시고 성불(成佛)하신 지명이고 마하보디 대탑은 부처님의 성도(成道)를 기념하기 위해 기원후 2세기경에 지어졌다고 하는 170피트, 그러니까 거의 60미터 높이의 대탑사원이다. 탑 안에는 대형 부처님이 모셔져 있고, 수많은 순례자들이 기도하고 있었다.

이 탑 바로 뒤에 보리수가 있고 보리수 아래 넓고 평평하게 생긴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가 부처님이 성도하실 때 앉으신 자리라 하여 금강보좌라고 한다. 그 곳에서 부처님의 발자국이 새겨진 바위가 발견되었다 한다.

우리 일행은 많은 순례자들이 보는 가운데서 108배 하고난 후 예불을 모시고 기도하고 난 다음 탑과 보리수 주위를 탑돌이 하였다. 이 탑 주위에 많은 순례자들이 자리를 펴고 앉아 기도하는 사람, 참선하는 사람, 티벳식 오체투지하는 사람 등으로 가득하여 빈틈이 없었다.

이 탑 밖에는 티벳, 일본 등 많은 외국인 사원들이 자리 잡고 있었으며 불교용품 상가들이 매우 활발한 영업을 보이고 있었다. 부처님 성도지(成道地)에 너무 늦게 도착 하였는데다 사람이 너무 많아 조용히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을 갖지 못하고 아쉽게 호텔로 가야했다.


1월21일 금요일 새벽5시에 버스편으로 보드가야를 출발하여 오전10시경에 나란다 대학에 도착하였다. 나란다 대학터는 보드가야에서 62키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부처님께서 이 곳에 여러 번 오셔서 설법하신 것을 기념하기 위해 기원전 300년에 아쇼카왕이 스님들이 기거하며 수행할 수 있는 사원을 건립하였다. 5세기 경에 굽타(Gupta)왕이 부처님과 인연 깊은 이 사원을 확장하여 나란다대학을 건립하였다.

이 대학에서는 스님들을 교육하고 불교를 연구, 발표할 뿐만 아니라 불교, 미술, 천문, 의학, 출판술, 도서관 등 다양한 종합 교육기관으로 발전시켜갔다. 인도 학생은 물론 중국 한국 등 세계 각국에서 오는 유학생들이 기거하며 공부하는 교육기관으로 발전하면서 7세기와 9세기 두 차례 더 크고 더 넓게 증축되었다.

폭 5키로미터 길이 10키로미터에 자리한 이 대학에 1만여명의 학생에 2천여명의 교수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12세기에 이슬람교도들이 인도를 침입하여 모든 도서와 건물을 불태워버려 지금은 그 터만 남아있다. 그 터에서 부처님을 모셨던 법당, 강당, 학생들의 공부방 등을 안내원이 설명하여 주었다.


이 곳은 또 사리불의 출생지라 하여 사리불탑이 현재 크게 자리 잡고 있다.

이 곳에서 서울 동국대학교 동창 비구니 두 스님을 만났다. 이 두 스님은 보드가야에서 2개월간 수행하고 있었는데 그날 아침에 나란다 대학에 가 보고 싶어 왔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 일행은 오늘 왕사성으로 먼저 갈 예정이었으나 왕사성으로 가는 길에 다리가 파손되어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나란다 대학에 오전에 들리게 된 것이었다. 정말 신기하게 만난이 이루어진 순간이었다. 그 중 유진스님은 내가 미얀마에 갔을 때 한 수행처에 한국스님들이 약 30명이 수행하고 있다고 하여 호기심으로 한번 방문해 보고 싶어 1시간 정도 짬을 내어 방문하였는데 그 때 그 곳에서도 기이하게 만난 적이 있는 스님이다.


오후에 마갈타국의 수도 왕사성에 도착하여 법화경 설법지인 영취산에 올라가 영취산 봉에 독수리바위 옆 평평한 바위 위에 부처님께서 법화경을 설하신 자리가 있었다. 우리 일행은 이 곳에서 관음기도 염불을 하고 부처님께 예불하였다.

부처님 성도 후 1년에 마갈타국 국왕 빔비사라왕이 부처님께 귀의하고 부처님과 제자들에게 공양을 올리던 중 부처님이 거처하실 건물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부처님의 허락을 받아 사원을 건립하여 부처님께 기증하였다. 이것이 최초의 사원이고 대나무 숲에 있다고 하여 죽림정사(竹林精舍)라 하였다.

이 곳에는 현재 이슬람 사원이 들어와 있었으나 부처님 당시 아주 넓게 자리 잡은 사원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지금은 이슬람 사원이 된 죽림정사의 비운(悲運)을 무엇으로 형용할 수 없는 요동이 우리 일행의 가슴을 한 없이 치고 있었다.


가슴을 치는 요동 소리를 들으며 불멸 후 최초의 경전 결집장인 칠엽굴을 향하였다. 칠엽굴을 본 후 3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파트나에 도착하여 투숙하였다.


지난 주 탐방기에서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바는 사성계급(四姓階級)을 만든 하느님(梵天)이 없을 뿐만 아니라 남녀의 차별을 만든 하느님도 없고 상을 주고 벌을 주는 하느님도 없다고 하였다. 그 시대에 이 혁명적인 깨달음을 부처님께서 어떻게 설하셨기에 네 계급 중 가장 높은 계급인 바라문족이 그를 해(害)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국왕들이 오히려 그에게 귀의하였을까?


한 때 바라문의 한 청년이 부처님께 와서, “고타마여 사문은 어떻게 하여 하느님(梵天)의 율법을 무시하고 바라문을 능멸하는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젊은이여, 나는 내 부모님을 1대로 할 때 그 위로 4대까지는 왕족인 것을 분명히 알고 있소. 그러나 그 위는 내가 분명히 알 수 없으므로 내가 왕족이라고 주장할 수 없소.

젊은이는 본인이 바라문족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부모님,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증조아버지와 할머니의 족보를 찾아보십시오. 젊은이의 증조할머니가 바라문족이라고 생각 하십니까. 이 사실을 분명히 아셔야 합니다. 만일 증조할머니께서 바라문이 아니었다면 할아버지는 바라문족입니까 아닙니까. 그리고 내 앞에 서 계시는 젊은이도 바라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부처님을 해(害)할 작심을 하고 그렇게 당당하게 대들던 젊은이는 이 말씀을 듣고 그것이 사실인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풀이 죽어 가슴을 조아리고 부처님 발에 절을 하고 물러났다.

이 부처님의 말씀에는 지나간 천년동안 소수의 바라문족이 인도를 지배하여 오면서 천민여인들과의 관계가 혼잡하여져 100% 바라문의 피를 가진 바라문족은 없어졌다. 바라문족이 없어졌으니 왕족도, 서민도, 천민도 없으니 사성(四姓)이 평등하다. 그러하니 사성계급을 만들었다고 하는 하느님은 처음부터 없었다는 의미가 깔려 있다.


한 바라문 남자와 천민 여인 사이에 관계가 있었다고 하여 바라문이 남자에게는 죄를 묻지 않고 천민여인에게만 가혹한 형벌을 내리고 있는 광경을 부처님이 목격하셨다. 부처님이 바라문에게 말하였다.

“똑 같은 장소에서 똑 같은 시간에 남녀가 똑같은 행동을 했는데 어떻게 남자에게는 죄가 없고 여자에게는 죄가 있는가? 만일 남자에게 죄가 없다면 여자에게도 죄가 없어야 할 것이요, 만일 여자에게 죄가 있다면 남자에게도 당연히 죄가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러나 남녀의 사랑에는 본래 귀천이 없는 법이니 아름답고 숭고한 사랑은 모든 사람들이 존중하여야 할 것이오. 어서 그 여인을 풀어 놓아 주시오.”

부처님의 이 말씀을 들은 바라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 여인을 놓아 주었다. 부처님의 이 말씀에는 남녀간에 차별을 만든 하느님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요, 남자에게는 상을 주고 여자에게는 벌을 주는 하느님도 역시 없다는 의미가 깔려 있다.


<사진 첨부 파일>

070: 나란다대학 입구에서
073: 나란다대학 유적지에서
074, 076: 나란다 대학 내 부처님의 가장 훌륭한 제자 사리불의 탄생지에 세워진 대탑, 기원전 3세기에 아쇼카왕이 세운 후 증축됨. 현성스님과 일행.
086: 부처님이 출가하신 후 계속 나무 아래에서 기거하셨는데 우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성도 후 1년에 마갈타국 빈비사라왕이 죽립정사를 지어 부처님에게 기증하니 이것이 부처님이 거하신 첫 건물정사이다. 이 곳의 죽림(竹林)과 우리 일행.
083: 부처님이 법화경을 설하신 신령스런 독수리 산 이라고 알려진 영취산(靈鷲山)을 배경으로 찍은 우리 일행. 오색 천으로 만든 장식은 티벳 불교신자들이 신령스러움을 장엄하는 장식이다.
078, 079, 080: 향로가 있는 곳이 부처님이 앉으셔서 법화경을 설하신 자리라고 한다.
062: 보드가야에 있는 마하보디 대탑. 저녁 때라 사진이 명확하지 못하다.
063, 065: 마하보디 대탑 바로 뒤에 보리수가 있고 보리수 아래 평평한 바위가 있는데 이 곳이 부처님이 성도하신 금강보좌라 한다. 장식한 천은 티벳 사람들이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066, 067: 마하보디 대탑 안의 조각과 불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