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가치

2014.04.14 11:32

현성스님 Views:9319

삶을 살아가는데 최대의 가치와 행복은 남녀가 만나 결혼하고, 아기 낳아 기르고 공부시키고, 취직 하는데 돕고, 결혼시켜, 부모로부터 독립한 가정을 이루게 하는데 있다고 본다.

자녀를 낳아 기른다는 것은 어떠한 종류의 삶을 놓고 봐도 가장 위대하고 행복할 수 있는 삶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실제 결혼생활을 하는 당사자들이 느끼는 감정은 행복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느낀다.

 

누구나 삶의 의미를 찾고 행복할 수 있는 부부의 연인데 왜 그렇지 못할까?

특히 자녀가 장성해서 취직해 독립해 나가면 부부의 연이 더 깊어져 가야 하는 것이 보통인데 그렇지 못한 경우들이 있다. 왜 그럴까?

혹 경제적으로 수입이 지출을 감당하기 어려울 때 오는 불만이 쌓여 부부간의 갈등이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금강경』 제11품 ‘함이 없는 복이 수승하다’는 품에서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항하강의 모래알 수만큼 많은 항하강이 있고, 그 많은 항하강의 모래 수만큼 많은 금은보화를 남에게 나누어 준다면 그 복이 많겠느냐고 묻고, 그렇게 얻는 복과 『금강경』의 사구 게만이라도 수지 독송하고 남에게 가르쳐 준다면 전자의 복은 후자의 복에 조금도 미치지 못한다고 했다.

 

『금강경』에서 어떻게 이른 말씀을 했을까?

사람들이 육체적인 생명을 유지하고 자녀를 양육하기 위해 재물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재물이 행복의 조건이 될 수는 없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진정한 행복은 『금강경』 중 사구게 하나만이라도 수지 독송하고 이웃에게 그 가르침을 나누어 주는데 있다고 했다.

『금강경』은 ‘내가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금강경』을 수지 독송한다는 뜻은 내가 내 마음의 움직임을 알아차리고, 나다 너다, 내 것이다 남의 것이라고 하는 분별 심을 내려놓게 된다는 뜻이다. 분별심을 내려놓고 보면, 이 법계에 생명이 있는 것이든 없는 것이든 일체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임을 깨닫게 되고, 그를 위해 일념으로 정진하게 된다.

이웃도 자기의 삶에 집착하기보다 공동체의 한 부분임을 깨달아 모두 함께 행복할 수 있도록 『금강경』독송을 권할 때 일어나는 행복감은 무엇과도 비유할 수 없는, 모두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유일한 행복이라는 가르침이라고 해석한다.

 

부부 사이에 배우자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라고 생각할 때, ‘나’라는 상(相)도 세우지 않고, 무엇인가 바라는 상도 없으니 무아(無我)가 된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랑이야 말로 가장 가치 있는 사랑이고 귀한 사랑이며 지속가능한 사랑이다.

금생에 이와 같은 무아(無我)사랑을 하는 사람은 자기의 마음 밭에 이렇게 사랑할 줄 아는 종자를 많이 심어 놓았기 때문에 내생에는 금생보다 더 아름답고 복된 연을 만나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행복한 국토를 장엄하게 될 것이다.

금생과 내생에 행복할 수 있는 삶의 가치를 바르게 인식하고 금생에 ‘참나’를 구(求)하기 위해 자신의 마음작용을 반조(返照)한다. 일체 분별하는 마음을 알아차려 내려놓을 때 무분별지(無分別智)를 체험하게 된다. 이 무분별지를 사용하는 마음이 가장 바람직한 사랑을 할 수 있는 마음이고, 삶의 가치를 위없이 높게 할 수 있는 마음이다.

 

2014. 4. 13.

대한불교 조계종 시카고 불타사 주지 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