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계통화분(法界通化分) 第十九  (법계를 다 교화하다)

須菩提 於意云何 若有人 滿三千大千世界七寶 以用布施 是人 以是因緣 得福 多不 如是 世尊 此人 以是因緣 得福 甚多 須菩提 若福德 有實 如來不說得福德多 以福德 無故 如來 說得福德多

"수보리야, 네 생각에 어떠하냐. 만일 어떤 사람이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찬 칠보로써 보시한다면 이 사람은 이 인연으로써 복을 얻음이 많다 하겠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사람은 이 인연으로써 복을 얻음이 매우 많겠습니다." "수보리야, 만일 복덕이 실로 있다면 여래가 복덕 얻음이 많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복덕(에 실다움)이 없으므로 여래가 복덕 얻음이 많다고 말하였느니라."


앞 장 제 17장에서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것은 실무유법(實無有法)을 증득하였기 때문임을 설하고, 18장에서 여래에게 육안이 있고, 천안이 있고, 혜안이 있고, 법안이 있고, 불안이 있다고 하였다. 이 뜻은 우리 범부가 육안을 가지고 있으나 천안이나 혜안이 없는 것은 우리들의 마음에 때가 있고 번뇌 망상이 있기 때문이다. 천안이 열린다고 하는 것은 마음의 때가 없어져 번뇌 망상이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혜안 법안도 이와 같은 의미이며 불안은 청정이 최상에 달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한 부처의 마음은 항하강의 모래 알 수만큼 많은 항하강이 있고 그 수많은 항하강의 모래알 수만큼 많은 불세계를 다 드려다 볼 수 있는 눈을 가졌기 때문에 그 안에 있는 모든 중생의 마음의 움직임을 모두 다 알고 계시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알고 계시는 중생의 마음은 모든 때를 여읜 청정한 마음이기 때문에 번뇌가 생멸하는 시간의 개념이 없다고 하였다. 생멸하는 시간의 개념이 없기 때문에 과거심도 현재심도 미래심도 없고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고 하였다. 이러한 마음을 『반야심경』에서 불생불멸의 마음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마음에서 번뇌를 더 이상 여의려야 여읠 것이 없으므로 실(實)다운 마음이고, 더할 수도 없고, 빼낼 수도 없는 실다운 마음을 『반야심경』에서 부증불감(不增不減)의 마음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부증불감한 마음은 무분별(無分別)한 마음이다. 무분별한 마음은 과거 현재 미래를 분별하지 않는 마음이다.

이러한 무분별의 마음은 무의식의 마음이기 때문에 생멸하는 마음과 인연이 되어야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돌아 온 마음을 우리는 무분별지(無分別智)라고도 하고 후득지(後得智) 혹은 정체지(正體智)라고도 한다. 후득지란 무분별을 증득한 다음에 오는 지혜라는 의미이다.

보통 우리들이 지혜라고 할 때는 우리들의 마음에서 탐욕이 미처 다 제거 되지 않았을 때의 지혜이고, 무분별지는 모든 탐욕을 우리들의 마음에서 완전히 소제한 후에 오는 지혜이다.

어떤 사람이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찬 칠보로 보시한다면, 혹 이 사람이 아직 무분별의 경지에 달하지 못하였으면 이 사람은 탐욕이 있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탐욕이 있는 우리들의 의식으로 탐욕이 있는 사람이 칠보로 보시하여 받는 복덕의 량을 헤아릴 수 있으므로 그 복덕이 많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혹 이 사람이 무분별지(無分別智)의 경지에서 보시한다면, 개인의 모든 욕심이 없어, 구하는 마음 없이 보시하는 마음은  실다운 것이라 무의식이 의식화한 지혜가 하는 보시이다. 무의식이 의식화한 지혜가 하는 보시의 복덕은 아직 탐욕에 가려진 우리들의 의식으로는 그 량을 헤아릴 수 없고 분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마음이 짓는 복덕이 불가사량하여 없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부처님이 베푸시는 보시는 그 복덕이 실답기 때문에 부처님이 얻는 복덕이 많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생이 베푸는 보시는 그 복덕이 아직 실답지 않기 때문에 중생이 얻는 복덕은 실로 많다고 하는 것이다.    


부부사이에 있어서도 서로가 상대에게 구하는 마음이 있을 때는 - 예를 들면 생활비를 더 달라든가, 내 말에 순종하라든가 하는 등 - 그 얻을 수 있는 복덕이 한계가 있어 그 복덕이 적다 많다고 할 수 있지만, 서로가 상대에게 아무 것도 구하는 마음 없이 참되고 실다운 마음으로 상대에게 베푸는 사랑은 그 얻을 수 있는 행복이 불가사량하고 실답고 참된 사랑이라는 것이다. 실답고 참된 사랑에서 경험하는 행복은 더 이상 보탤 수도 없고 뺄 수도 없는 한없는 행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한없는 행복이 부증불감의 경지에 오를 때 이 사랑에서 얻는 행복이 부증불감이므로 없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직장 생활에 있어서도 구하는 마음이 있고 사심(邪心)을 가지고 행하는 보시는 오히려 부정(不淨)한 일을 일으키기 쉽고 많은 업을 짓게 된다. 사심이 있는 보시 행은 오히려 삿된 액운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구하는 마음이 없고 사심이 없을 때 그 마음은 순수하여지고 순수한 마음은 곧 실다운 마음이고 이 실다운 마음이 베푸는 보시는 불가사량한 복덕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실다운 마음이 얻는 복덕은 불가사량하여 이미 그 극에 달하였으므로 더 이상 보태고 빼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복덕이 부증불감하여 얻을 것이 없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장에서는 중생심과 보살심을 비교하고 있다. 아직 탐욕을 다 여의지 못한 중생의 마음이 베푸는 보시는 그 한계가 있으므로 그 얻는 복덕이 적다 많다고 할 수 있고, 또 때로는 그 중생의 마음에 사심(邪心)이 작용할 때는 오히려 액운을 불러 올 수도 있는 것이다.

모든 탐욕을 여읜 보살, 혜안이 열린 보살이 보시하는 마음에는 그 한계가 없으므로 그 얻는 복덕도 한계가 없는 것이다. 혜안이 열린 보살의 마음은 광대무변하고 참되고 실다우므로 그 받는 복덕도 광대무변하고 참되고 실답다. 그러므로 그가 받는  복덕이 부증불감의 경지에 있는 것이다. 그 복덕이 부정불감의 경지에 있으므로 그 얻는 복덕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있는 것이 극에 달하면 없는 것이 되는 것이요 없는 것이 극에 달하면 있는 것이 되는 이치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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