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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산행원 큰스님과 불타사와의 관계

 

시카고 불타사는 1974년 2월 지학(智學)스님의 집전으로 Chicago Logan Square 지역 Sawyer Avenue에 소재하는 아파트에서 첫 법회를 시작한 것이 인연이 되어 금일에 이르렀다.

지학(智學)스님은 1972년 일본 유학중에 프로비덴스 재미(在美) 홍법원(弘法院)에 주석(駐錫)하셨던 숭산행원(崇山行願) 큰스님의 초청을 받고, 1973년 연말에 도미(渡美)하여 프로비덴스를 거쳐 시카고에 정착하여, 1974년 초, 숭산스님의 지도 하에 첫 법회를 집전하고 큰스님을 은사로 득도하고 큰스님의 지도하에 불타사 창건불사에 전념하게 되었다.

숭산스님께서는 1974년 5월 17일에 수계법회를 집전하시어 임대지거사를 비롯해 많은 불자들이 수계하였다. 큰스님께서는 매년 1~2회 몸소 불타사에 오셔서 모든 지도와 보살계 수계 등 세세한 면까지 불사 운영을 지도해 주셨고, 1978년 말 지학스님이 불타사를 떠난 후에도 불타사를 방문하시어 법회 및 수계법회를 주관하여 주셨다.

불타사 창건 이래 최초로 모신 현재 극락전 아미타부처님은 1975년에 숭산스님께서 한국에서 조성하시어 불타사에 모시고 오셔서 점안하셨다. 그리고 1989년에 무설전 석가모니부처님과 원불 봉안 및 점안식을 봉행하시는 등 건강상의 사유로 외국출입이 어려우실 때까지 지원해 주셨기에 불타사와 숭산스님과는 불타사가 창건된 태동기부터 내용상으로는 조실(祖室)의 인연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2002년 4월 서울 화계사에 계셨던 현성스님이 미국 서부지역에 와서 불교현황 및 전법활동을 답사하고 동부 뉴욕지역으로 가던 중 7월 6일 불타사에 와서, 7월 7일 일요법회를 집전하였다. 그 당시 주지 직이 공석 중이어서 불타사 신도회와 이사회에서 스님에게 주지 직을 맡아 주실 것을 청하였고, 스님께서는 한국에 계셨던 스님의 은사이신 숭산행원스님의 재가를 받아 이에 응하시어 8월 4일 시카고 불타사 11대 주지 진산식을 갖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04년 10월 31일 본유 Paul Lemrise를 불타사 법사로 임명하여 중, 고등학생 및 대학생 참선지도 법사로 활동하게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본유 Paul은 숭산스님의 지도를 받은 미국 법사들의 지도를 받고 그들과 함께 현재도 수행하고 있다.

숭산행원 대선사께서는 2004년 양력 11월 30일, 음력 10월 19일 오후 5시 15분 화계사에서 세수 77세 법랍 57세로 입적하셨다. 불타사에서는 큰스님 상좌이신 현성스님이 큰스님 장례식에 참여하셨고, 매년 음력으로 종사의 다례식을 집전하셨다. 금년(2007) 제 3주기 다례식을 11월 25일 모실 예정이다.

2007. 7. 22. 현성스님, 대덕 조재이, 청암 박영규, 대지 임관헌, 정법심 이경숙, 대행 원인식, 명성행 류순하, 승파 최순용, 법광 김승한, 보현 김경환이 모인 가운데 숭산행원 큰스님을 불타사 조실로 모실 것을 현성스님이 제안하고 이에 만장일치로 합의하여 이 안을 8월 5일 제23회 법등회의에 제안 인준받기로 했다.

2007년 8월 5일 제23회 법등회의에서 숭산행원 큰스님을 불타사 조실로 추대하는 안을 현성스님이 제안하고 이 안이 만장일치로 가결되어 숭산행원 큰스님을 불타사 조실로 모시게 되었다.

 

숭산행원 큰스님

 

한국 불교를 해외에 알리는데 선구적 역할을 한 승려이다. 대한불교신문사를 설립한 후 초대 사장을 지냈다.
저서로는 《천강에 비친 달》《부처님께 재를 털면》등이 있다.

호  행원

본명  이덕인

국적  한국

활동분야  종교(불교)

출생지  평안남도 순천

주요수상  세계평화상, 만해포교상

주요저서  《천강에 비친 달》 《세계일화 1,2,3》 《부처님께 재를 털면》

1927년 8월 1일 평안남도 순천시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이덕인(李德仁), 호는 행원(行願)이다. 순천공립학교와 평양의 평안공립학교에서 공부하였다. 1944년 독립운동에 참여하다가 일본 헌병대에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1945년 동국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하였고, 절대진리에 대한 탐구를 위하여 1947년 마곡사에서 출가하였다.

1949년 수덕사에서 고봉(古峰)에게 비구계를 받은 뒤, 1951년 마곡사 강원 사교과를 졸업하였다.
1958년 대한불교조계종회 의원, 화계사 주지가 되었으며 1960년 대한불교신문사를 설립하여 초대 사장에
취임하였다. 1961년 대한불교조계종 총무부 부장, 1964년 동국학원 이사로 재직하였다. 그 뒤 한국 선불교의
보급을 위하여 해외포교에 나서, 1966년 일본 신주쿠[新宿] 홍법원, 1969년 홍콩 , 1972년 미국, 1974년 캐나다 토론토, 1980년 영국 런던, 에스파냐 팔마, 1983년 브라질 상파울로, 1985년 프랑스 파리 선원 등 세계 각지에 국제선원을 개설하여 한국불교를 세계에 알렸다. 2004년 현재 세계 32개국에 120여 개의 선원이 개설되어 있다.

1985년 세계평화문화인대회에서 세계평화상을 수상하였고 1996년 만해사상 선양회가 수여하는 만해포교상을
수상하였다. 1999년부터 화계사 조실로 일하였으며, 2004년 11월 30일 입적하였다.

저서로는 《천강에 비친 달》(1992), 《세계일화 1,2,3》(2001), 《선의 나침반 1,2》 《오직 모를 뿐》
《부처님께 재를 털면》《온 세상은 한 송이 꽃》(2001)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