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2013 현성스님 법문 2. 사랑과 행복

2013.12.16 22:50

반야화 Views:6278

12월 8일 두번째 Leadership Training 에서는 '사랑과 행복' 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현성스님의 법문을 들었습니다.

연기사상에 기초한 일인(一人) 일세계(一世界) 를 깨달아 나와 나의 상대가 서로 다른 사람임을 먼저 인정하고, 서로를 감사/소중히 하는 마음을 가져 서로 맞추어 간다면 사랑하는 사람과 나는 우리몸의 오른쪽/왼쪽 같이 말 안해도 서로 아는 대칭관계가 이루어 질수 있음을 알아야 겠습니다.

다음 Leadership Training은 12/22/2013 1:30pm 정도방에서 있을 예정입니다.
모두 모두 그때 보아요~~!!

동영상 법문 1

동영상 법문 2

동영상 법문 3


 2013. 12. 8. 법문 2. 사랑과 행복


선우청년회 6대 생활신조

독점보다는 공유를

폐쇄보다는 개방을

대립보다는 조화를

갈등보다는 협력을

편중보다는 균형을

개인보다는 전체를 위해 최선을 다 한다.


사랑이란

몸은 오른 쪽과 왼쪽이 대칭되어 있음으로서, 몸이 할 바를 원만히 할 수 있고 또 이를 완성해 자신도 즐기고 이웃도 즐겁게 한다. 사람은 양성(陽性)인 사람은 음성(陰性)인 사람을 만나 대칭을 이루고자 하는 욕구가 있고, 음성(陰性)인 사람은 양성(陽性)을 만나 대칭을 이루고자하는 심리적인 욕구가 있다. 음성인 사람과 양성인 사람이 만나 대칭을 이루고자 할 때, 느끼는 기쁨이 사랑이고, 대칭 관계가 원만히 이루어져, 해야 할 바를 함께 하나처럼 작용해 원만히 성취해, 자신들도 즐기고 이웃도 즐겁게 할 수 있을 때 느끼는 기쁨이 행복이라 생각한다.

사랑의 대상과 그 관계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대상을 필요로 한다.

대상이 사람일 경우 외모나 음성이 평소에 알게 모르게 원했던 사람과 일치하였을 때, 가까이해 포옹을 하든지 키스라도 해 그 사람과 하나가 되고 싶은 충동을 사랑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사랑은 육체적이고 감상적인 사랑이라 일시적인 사랑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지성을 요구하는 현실생활에서 지속되기 어렵다.

대상인 사람이 부자 집 아들이라든지, 명예나 지위가 높은 분의 아들, 학벌이 좋거나 높다든지, 직장이 좋다든지 하는 이유로 사랑을 느낄 수도 있다. 이것은 바라는 것이 충족 되었을 때 느끼는 사랑이다. 바라는 것이 있는 사랑은 현대사회에서 흔히 경험하는 사랑이지만 사랑이 소유욕 충족이라는 왜곡된 사랑으로 변하기 쉽고, 왜곡된 사랑은 의심과 불평불만이 심하게 일어나는 원인이 된다. 불평불만이 심한 결혼생활은 불행해 지기 마련이고, 불행은 이혼으로 이어지는 이혼사유가 된다. 바라는 것은 처음부터 막연하기 때문에 원만하게 이루어 지지 않는 속성이 있고,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의심과 번뇌가 심하게 일어나기 마련이다. 의심과 번뇌는 불평불만으로 변하고, 불평불만은 불행해 지는 원인이 된다.

어떤 대상은 직위도 없고, 학벌도 없으며, 볼품도 별로지만 마음 씀이 내 마음에 드는 사람도 있다. 사귈수록 깊어지는 정을 느낀다면 아래 글을 참작해서 장래를 같이 설계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요즈음, 젊은이들 사이에 결혼 전에 호기심으로 정을 나누는 행위가 있는데, 이러한 행위는 언젠가 큰 과보를 받아 남은 인생이 불행하게 될 원인을 만드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순결한 사랑이 아름답고 가격을 정할 수 없는 고귀한 사랑임을 알아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 사이

사랑하는 사람 사이는 대칭관계에 있는 사이이다. 마치 왼손과 오른 손이 서로 대칭관계에 있어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상대를 도와서 몸이 해야 할 일을 하듯이 사랑이 있는 부부는 꼭 말을 해서가 아니라 이심전심으로 상대를 도와서 가장으로서 혹은 부인으로서 해야 할 일을 원만히 할 수 있도록 서로 도와주는 관계에 있을 때 행복을 느끼는 부부사랑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불교연기사상을 바르게 이해하고 실천할 때 가능하다. 연기사상에 의하면 남편은 부인의 도움을 받아야 이루고자 하는 일을 이룰 수 있으니 그 연에 항상 감사하고 부인을 소중히 여겨 부인의 생각을 잘 이해하고 불편함이 없도록 보살펴주는 사랑을 하며, 부인도 남편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자 하는 일을 잘할 수 있으니 그 연에 감사하고 소중히 대하며, 남편이 하는 일을 잘 이해하고 필요한 것을 찾아 돕는 사랑을 하면, 나날이 행복한 가정을 이루게 된다는 가르침이다.   

이 연기사상에 지나칠 수 없는 중요한 원리가 하나 있다. 요즈음 결혼한 부부사이에 사랑을 자기의 이기심을 충족시켜주는 대상, 혹은 소유욕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개인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자본주의 경제와 정치제도의 영향을 받아 알게 모르게 결혼한 상대를 내 아내, 내 남편이라고 나의 소유로 생각하는 경향이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랑을 소유로 삼는 것은 왜곡된 사랑이다. 왜곡된 사랑에서는 남편은 부인이, 부인은 남편이 자기 것으로 알고 자기 생각대로 상대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기를 집요하게 요구한다. 이러한 소유욕은 부부관계를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로 변질시켜 대립과 의심, 미움과 갈등을 증폭시키고 수많은 불행한 가정을 만드는 요인이 된다.

불교의 연기사상에서는 일인(一人) 일세계(一世界)가 있음은 자연의 이치이고, 일인 일세계가 있으므로 서로 연기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고 한다. 즉 부인에게는 부인의 세계가 있고, 남편에게는 남편의 세계가 있다. 아들은 아들의 세계, 딸에게는 딸의 세계가 있다. 누구나 자기의 세계를 창조해 가는 주인이다. 그러나 자기의 세계는 무엇과 연()하여야 창조가 가능하게 되어 있는 것이 진리이다. 이것을 연기법이라 한다. 즉 부인은 남편의 연을 만나야 가정을 이루고, 남편도 부인의 연을 만나야 가정을 이룰 수 있다는 원리이다. 바로 이 원리가 존중받아야 할 점이다. 혹 남편이 생각하기를 부인은 남편이 하라는 대로 해야 한다고 한다면 부인을 소유물로 착각하는 것이라, 부인을 억압하는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부인이 남편을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다. 그러나 일인(一人) 일세계(一世界)의 진리를 믿는 부부사이에서는 남편은 부인의 세계를 존중하고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그 세계의 발전을 위해 도우며, 부인은 남편의 세계를 존중하고 지극한 관심을 가지고 그 세계의 발전을 위해 돕는다. 서로 돕는 사랑, 그 안에 무한한 행복이 있다.

불교의 결혼관

불교의 연기사상은 남녀가 만나 어떻게 하면 대칭관계를 잘 이룰 수 있는가를 설명하고 있다. 이 결혼관에 의하면, 결혼한 남편은 부인의 세계를, 부인은 남편의 세계를 상호 존중하고 깊은 관심을 가지고 서로 도움으로서 두 사람의 세계가 자연스럽게 하나 되는 관계로 발전한다. 두 세계가 하나로 되어 갈 때, 더 깊은 사랑과 더불어 느낄 수 있는 행복감이 있고, 결혼생활 중 더 넓고 깊으며 높은 아름다운 사랑의 가치와 향기를 창조하며 살아갈 때, 느낄 수 있는 행복감은 이 두 사람 사이 외 다른 곳에서 느낄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부인은 남편과의 연()에 감사하고 남편이 하는 일을 존중하며 돕고자 하는 마음이 울어나는데, 이 때 이 마음에는 자기 개인적으로 원하는 일이 전혀 없는 무아(無我)가 되어, 오로지 남편을 돕고자 하는 마음뿐이다. 남편도 부인과의 연()에 감사하고, 그 연을 소중히 여기며, 상대를 돕고자 하는 마음뿐 사심(私心)이 전혀 없는 마음이다. 그 간절한 마음에는 남편에게나 부인에게 필요한 일을 도울 수 있는 방법과 능력이 나타나게 되어 있다. 이러한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은 열정적이고 새로운 가치와 아름다운 향기를 창조할 수 있는 열의(熱意)와 열기(熱氣)가 솟아나는 사랑이다. 이 열정적(熱情的)인 사랑이 열의(熱意)적으로, 열의(熱意)적인 사랑에 열기(熱氣)가 함께 해질 때, 아름답고 새로운 가치를 가진 꽃을 창조하고 그 향기 온 누리에 가득하게 된다. 이 때, 사랑하는 두 사람이 느끼는 기쁨이 행복이 아닐까.  

어떻게 해야 친구들과 친해 줄 수 있을까?

연기법이란, 내가 무엇인가 이루고자한다면, 이루고자 하는 것과 관련이 있는 모든 조건들과 인연이 될 때, 이루어진다는 법, 즉 진리이다. 내가 좋은 친구를 만나기를 원한다면, 우선 어떠한 친구가 나에게 좋은 친구인지 알아야 한다. 어떠한 친구가 내가 원하는 친구인지를 잘 알지 못할 때는 너무 막연하여 막연하게 사람들을 만날 수밖에 없다. 내 자신이 원하는 친구가 정확히 어떠한 친구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내 스스로 그러한 사람인지 성찰해 보고, 그렇게 되도록 지극 정성으로 노력해야 한다. 나의 그릇과 비슷한 친구들이 내 주위에 모이고, 그들과 친구인연을 맺기 때문이다.

첫째, 내가 바라는 나는 현명한 사람이다. 현명한 사람이란 사람이나 사물 또는 사건을 볼 때, 긍정적으로 보고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 때, 부정한 것에서도 긍정적인 면을 볼 수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사람들이 싫어하는 겨울에서도 좋은 점을 볼 수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한 수, 두 수, 세수, 네 수 앞을 볼 수 있고, 그를 대치(對治)할 수 있는 사람이다.

둘째, 내가 바라는 나는 지혜로운 사람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생각은 생각일 뿐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 생각의 구속에서 해방된 사람이다. 모든 분별하는 마음은 생각이 만드는 것이니 생각의 구속에서 해방된 사람은 분별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감정은 감정일 뿐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 화가 일어나는 법이 없다. 지혜로운 사람은 편견이 없어, 자기와 주변사정이 하나 된 마음이라 사정을 정확히 이해하고, 어려움을 극복하거나 더 좋은 관계설정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정확히 알고 해결할 방법을 제시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셋째, 내가 바라는 나는 예의 바른 사람이다. 나는 나 아닌 사람들과, 사물 그리고 자연과의 인연 속에서 만이 존재할 수 있고, 하고자 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으로 주위의 모든 것에 감사하고 그들을 소중이여기고 그들에게 보답코자 하는 마음을 가진다.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은 항상 겸손하고 예의 바른 사람이다. 이에 반대되는 사람은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고, 하고자 하는 일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하는 일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오만과 자만에 빠지기 쉬운 사람이라 예의 바른 사람이 될 수 없다.

넷째, 내가 바라는 나는 성실(誠實)한 사람이다. 성실한 사람이란 하는 말이 간결하고 말대로 실천해 결실을 맺는 사람이니 하는 일을 바로 볼 줄 알고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은 사람들로부터 신뢰(信賴)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다.

내 스스로 이러한 사람이 되도록 자신을 성찰하고 쇠신 하려고 노력하면, 친구들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있고, 신뢰를 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나의 가까운 친구가 될 것이다.

다섯째, 내가 바라는 나는 가까운 사람의 사정을 잘 이해하고 필요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다. 나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 연()이 되어 좋은 일이든 궂은일이든 같이 할 수 있는 인연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그들 각자의 세계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살펴보면, 그 세계를 이해할 수 있고, 도움이 필요한 일들을 볼 수 있게 된다. 그들과 하나 된 마음(나의 생각을 뺀 마음)으로 보면 필요한 방법도 보인다.

사랑에 필요한 조건은 무엇일까?

두 사람이 만나 사랑을 함에 필요한 한 조건은 신뢰(信賴)를 받을 수 있고 지킬 수 있는 사람이라는 믿음이다. 이러한 믿음이 있어야 사랑하는 두 사람이 서로 믿는 의지처가 될 수 있다. 이러한 믿음이 없으면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믿음이 일어날 수 없으니, 사랑이 솟는 분위기가 형성될 수 없다.

신뢰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좋은 성품과 역량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첫째, 좋은 성품은 위에서 논한 바와 같이 좋은 친구를 만나기 위해 필요한 다섯 가지 성격에 마음 관리하는 능력이 포함되어야 한다. 마음 관리하는 능력이란 사음(邪淫)을 포함한 재물 명예 나쁜 습관 등의 유혹이 처음부터 일어나지 않게 하고, 혹 일어났다면 잘 관리하여 항상 자유롭고 평화로운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영적인 건강을 잘 유지할 수 있도록 마음관리를 잘 해야 한다. 그리고 또 직장에서는 윗사람 동료 아랫사람들과 같이 일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으니 이들과 더불어 좋은 관계를 가질 뿐만 아니라 각자가 가지고 있는 특기를 알아 원활히 유통해서 더불어 창조적인 생산 유통의 길로 갈수 있도록 내 마음부터 관리를 잘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둘째, 역량(役糧)이란 생활에 필요한 재원을 조달하는 능력이다. 물론 한 달에 얼마 버느냐 혹은 일 년에 얼마 버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그 금액을 보는 각도이다. 이 금액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보는 각도도 있지만, 그 금액으로 조금 줄여서 우리집안이 살아 갈 수 있음에 감사하고, 직장의 번영을 위해 직장과 하나 된 마음으로 직장의 전반적인 사정을 바르게 관찰하고 직장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일들을 찾아하는 사람이 되면 그 사람은 그 직장의 주인의식을 가진 사람으로, 그 직장에서는 가장 역량이 높은 사람으로 발전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와 같은 시각으로 보고 행하면 역량은 시간과 더불어 나날이 발전하게 될 것이다. 

아이를 가지는 조건

젊은 남녀가 만나 결혼하게 되면 가정을 이룬다. 가정을 이루게 되면 임신을 하게 되고 출산하여 아이들과 함께 사는 가정을 이룬다.

이렇게 가정을 이루는 신혼부부는 한 생명을 창조하는 신비한 기회를 가짐을 인식하고 임신할 아기를 위한 정중한 기도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왜냐하면 아이가 출생 후 30살이 되고 50살이 되면 지금 결혼한 부부는 60, 80살이 된 부모가 되는데, 그 때도 50살날 아들 딸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이와같은 깊은 부모와 자녀지간의 사랑을 감안하여 보면 무엇보다 임신할 부부의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임신할 아이를 위해서라도 부부가 다정하게 상대에 감사하고 존중하며 상대를 위해 필요한 일을 찾아 하는 사이라면 임신할 아이를 위해 가장 잘 준비된 태교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부부가 서로 바라는 것이 많은 부부는 불평불만이 많을 수 있다. 이런 가정환경은 태교에 가장 부적합한 환경이다. 임신된 아이는 임신하면서부터 엄마와 호흡도 같이 하고, 먹는 것도 같이 먹으며, 엄마의 감정도 아이와 함께할 수밖에 없으므로 엄마의 감정이 그대로 아이에게 전달되고 아이의 녹음기에 저장되었다가 출산할 때 이 녹음기를 가지고 나온다. 즉 기본적인 성격의 씨가 엄마 배에 있는 동안에 심어진다. 이 아이가 커서 그 씨가 연을 만나 발아하여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은 부모가 임신했을 때 지은 과보이다. 준비된 부모 하에서는 좋은 과보, 준비를 잘 못한 부모 하에서는 나쁜 과보를 받을 수 있다. 준비된 아이의 부모는 선대에서부터 유전되어 오던 모든 나쁜 과보도 아이를 위해 임신 전에 다 소멸한 부모가 됨으로 나쁜 과보를 귀여운 아이에게 유전하지 않고,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는 새로운 씨앗을 심는다. 훌륭한 부모의 성품이 아이의 녹음기에 그대로 녹음된다. 임신한 엄마가 아이가 세상에 나와, 잘 자라 큰 사람이 되어 어려운 세상을 밝고 살기 좋은 세상으로 만들어 다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땅으로 혁신하는 작업에 동참하여 기여하는 삶을 살기를 발원하는 큰 원을 세우고 간절한 기도를 하면 그 원과 기도가 태아의 녹음기에 녹음돼 세상에 나올 때 가지고 나온다. 태아 때 부모가 일상생활에서 주고받은 사랑과 어려움을 극복하는 마음, 근심걱정 하는 마음, 즐거움 기쁨, 취미 생활하는 마음 그리고 아이를 위해 기도하는 마음 등이 출산 후 아이의 타고난 기질이 될 씨앗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