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하지 말자. 무념(無念)

2009.10.05 12:06

현성 Views:7945

‘생각을 하지 말자’는 말이 황당하게 들릴 수 있다. 우리가 생각을 하지 않고는 못살 것같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각을 하는 것이 득인지 생각을 안 하는 것이 득인지는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우울증 초기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 세상일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이유가 자기가 열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자기의 열등을 남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혼자 생각에 잠기다보면 그 증세가 심해져 우울증 증세로 나타나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반대의 현상도 볼 수 있다. 남이 나를 열등하다고 생각하지 못하게 서두에서부터 공격적으로 말을 많이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러한 우울증 초기 증상은 우리들의 일상생활에서도 흔히 보게 된다.

예를 들면, 남편이나 부인이 잘못하는 것을 생각하다보면 잘못하는 것이 너무나 많아 한 없이 미워지는 수가 있다. 그러나 막상 남편이나 부인이 눈앞에 있으면 미운 생각들이 사라진다.

상대가 정말 무엇을 잘못해서 잘못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내가 보는 시각차에서 잘못한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잘못한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시각차가 어디에 있는지를 찾아보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물론 부부가 문제 인식을 같이 하면 공감하는 해결 점은 곧 찾을 수 있겠지만, 부부 중에 하나가 자기 생각에 잘못이 없다고 고집을 부릴 때 문제는 심각해진다.

사업을 하면서도, 직장 일을 하면서도, 가정사를 돌보면서도 생각이 오히려 장애를 일으켰음을 흔히 경험한다. 이것은 모두 우리들의 생각이 사실과 다른 점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이렇게 일어나는 생각들에 대해 불교에서는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불교에서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 업에 따라 보고 듣고 느낀다고 말한다. 업에 따라 보고 듣고 느낀다는 말은 사람의 성격이 업에 따라 형성 되었다는 말이다. 내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습관에 의해 성격이 형성되는데, 이것을 불교에서 업이라 한다.

사람마다 자기가 보고 듣고 느꼈던 것이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그 보았다는 사실은 보는 그 사람의 성격에 비춰본 사실이니 허상(虛相)이라고 한다. 마치 식당에서 맛본 김치를 맛이 있다 없다고 분명한 의사 표시를 하지만, 내 입에 맞는 김치가 다른 사람의 입에는 맞지 않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의 입에 맞는 김치가 내 입에 맞지 않을 수도 있으니, 실제 김치가 문제일 수도 있지만 내 입맛이 문제일 확률이 높고, 그 입맛은 성격에서 온 것이니 내가 맛본 김치 맛은 허상(虛相)이고, 다만 나의 업(성격)이 표출되었을 뿐이라고 한다.

부부지간에서도 내가 보았다는 것이 과연 있는 그대로 보았는가? 아니면 내 업에 비춰진 대로 보았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부부지간에 문제가 있는 집안에서는 사실대로 본 것이 아니라 부부 각자의 업에 비춰져 보인 것을 사실이라고 착각하여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대서 불화가 증폭될 수 있다. 왜냐하면 상대방에서는 그의 업에 비춰봐 수긍할 수 없는 말을 나는 나의 업에 따라 옳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연으로 불가(佛家)에서는 내가 본 것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고, 오히려 환상일 수도 있음을 알라는 수련을 철저히 시킨다. 그 대표적인 가르침이 금강경의 한 사구게인 범소유상(凡所有相) 개시허망(皆是虛妄) 약견제상비상(約見諸相非相) 즉견여래(卽見如來)이다.

본대로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다시 보고 다시 봐라. 다시 보면 내가 본대로 있는 것이 아닌 참된 것(如來)이 있음을 알리라는 말씀이다.

여래를 본다는 말씀은 누구에게 의지해야 구할 수 있을 것 같이 보이던 일들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지 말고’ 자세히 보면 자기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여래와 같이 스스로 할 수 있는 능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 존재임을 알게 된다는 말씀이다.

모든 불만은 누구에게 의지해서 구하려고 하는데서 일어나고, 불만이 일어나면 온갖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기 때문에 처음부터 남편을 혹은 아내를 의지해서 구하려는 ‘생각을 하지 않아도’ 스스로 할 수 있는 능력을 이미 충분히 구비하고 있다는 말씀이다.

 

이렇게 남에게 의지하려하거나 미워하거나 용서할 수 없다는 잡된 ‘생각들을 하지 않는 것’을 무념(無念))이라 하는데, 의지해서 구하려는 생각을 접기 시작하면 점차 마음의 평정을 얻을 수 있음을 느낄 수 있고, 느낄수록 잡된 생각들을 하지 않는 수련(修鍊)에 박차를 가하게 되어 점차 모든 것을 바르게 보는 눈이 열리게 된다. 어느덧 완전한 무념이 된 곳에 정견(正見)이 있음을 알게 된다.

업이라는 때가 생각하는 거울이 아니라 때가 없는 거울에 비춰봐 사실대로 보는 정견(正見)이 이루어지고, 바로 보면 바로 알고, 바로 알면 바른 생각과 말과 행동이 바른 일을 할 수 있게 한다. 이러 한 것을 지혜 혹은 반야(般若)라 한다.

즉 업이 다하여 잡생각이 전혀 없는 생각을 정각(正覺)이라 하고, 정각에서 하는 말과 행동을 지혜 혹은 반야(般若)라 한다. 반야에서 보면, 너는 큰 나의 한 부분이고 나는 큰 너의 한 부분이니 너와 나는 남이 아니라 하나이다. 하나이니 의지할 생각도 미워하는 생각도 용서 못한다는 생각도 할 것 없이 다만 해야 할 일에만 전념(專念)하면 이루지 못할 일이 아무것도 없고 편안하지 못할 순간도 없다.

 

2009년 10월6일

대한불교 조계종 시카고 불타사 주지 현성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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