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神秘)와 ‘나’

2009.12.13 23:57

현성 Views:6933

‘나’는 내 몸(=몸둥이)을 가리키며 이것이 ‘나’라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있다. 그러나 누군가가 무엇이 ‘나’인가라고 물어보면 “이것이 ‘나’”라는 대답 외는 다르게 할 말이 없다. 이 몸을 가지고 ‘나’라고들 하지만 이 몸은 ‘나’아닌 것으로 만들어져 있지 않는가?

‘나’의 의사(意思)와 관계없이 생명이 주어진 것도, 숨을 쉬고 맥박이 뛰며 생명을 유지하는 것도, ‘나’ 아닌 ‘내’가 아니고 무엇인가? 뼈와 살, 혈관과 신경의 재생(再生)과 그 작용도, 배고프다고 밥 달라는 것도, 짜다 맵다고 하는 것도, 모두가 ‘나’ 아닌 ‘내’가 하고 있는 일이니 신비하다.

더욱 신비한 것은 ‘나’ 아닌 ‘나’의 몸 자신이 이롭고 해로운 것을 알아서, 이로운 것은 스스로 만들어 내고, 해로운 것은 배설하기도 하고 방어할 수 있는 면역성을 만들어내 이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생각하면 생각 할수록 신비한 것은 ‘나’라고 알고 있는 ‘나’가 아닌 ‘나’를 ‘나’로 알고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말 신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생각해 보면, 시카고나 서울이라고 하는 것(=명칭)도 역시 원래 시카고나 서울이라는 것이 있어 시카고나 서울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시카고나 서울이 아닌 것으로 만들어진 곳을 시카고 혹은 서울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마치 ‘나’ 아닌 것을 ‘나’라고 부르는 것과 같이. 오늘을 서기 2009년 12월 13일이라고 하는 것도 원래 서기 2009년 12월 13일이라는 것이 있어 서기 2009년 12월 13일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부르자고 약속해서 부르는 것이니 이 날도 이 날이 아닌 것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사람들이 그렇게 귀중하게 생각하는 돈도 돈 아닌 것으로 만들어진 것이고, 다이아몬드도 일종의 흙으로 만들어진 것이니 다이아몬드도 다이아몬드가 아닌 것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이것이 무엇일까? ‘나’도 ‘나’ 아닌 것으로 만들어졌고, 내가 살고 있는 시카고도 시카고 아닌 것으로 만들어졌으며, 오늘이 2009년 12월 13일이라는 것도 시간이 아닌 시간으로 만들어졌으며, 그렇게 귀중하게 생각하는 돈도 다이아몬드도 돈도 아니고 다이아몬드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 졌으니 참으로 신비한 세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이 ‘나’이며 언제 어디에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오직 신비할 뿐이다.

사람들의 생각은 더욱 더 신비하다. 사람들의 생각이 ‘나’ 아닌 ‘나’를 ‘나’라고 믿고 생각하고 행동하게 만들었고, 시카고가 아닌 시카고를 시카고라고 믿고 생각하고 행동하게 했으며, 서기 2009년 12월 13일을 오늘이라고 믿고 생각하고 행동하게 하고, 돈이나 다이아몬드를 귀하게 믿고 생각하고 행동하게 만들었다. 이 모든 것이 사람들의 생각이 만들어낸 것이지만 생각이 만들어낸 것인지를 모르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있으니 더욱 신비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생각은 이와 같이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으나 의사(醫師)에 따라 약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다. 요즈음 사람들이 경제난에 시달리는 것도 사람들의 생각이 만들어낸 것이요, 지구 온난화 문제와 환경문제도 사람들의 생각이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에만 급급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 우주에 독이 되는 것이고, 자신보다 이 우주의 이익을 위해 하는 생각은 약(藥)이 된다. 독이 되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 되고, 약이 되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 된다.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에만 급급하다보면, 분명히 ‘나’가 존재하고, 좋아하는 것이 있고 싫어하는 것이 있으며, 좋은 것은 많이 가지고 싶고 싫은 것은 버리고 싶다. 갖고 싶고 버리고 싶은 것이 많을수록 불만이 많고 화가 심하게 된다. 죽는 것은 두려워하면서도 살고 있는 것도 고달프다. 이러한 모든 것은 모두 다 ‘나’의 생각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즉 ‘나’가 존재한다는 것도 ‘나’의 생각이요,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도 ‘나’의 생각이며, 많이 가지고 싶거나 버리고 싶은 것도 ‘나’의 생각이고, 불만도 화도 모두 ‘나’의 생각이며,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도 ‘나’의 생각이고, 삶이 고달프다는 것도 역시 ‘나’의 생각에 불과한 것이다. 결국 ‘나’의 생각이 ‘나’를 고통스런 번뇌감옥에 가두어 두는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解脫)은 이렇게 생각으로 만들어진 고통스런 번뇌감옥에서 탈옥(脫獄)하라는 뜻이다. 어떻게? 생각으로 만들어진 감옥이니 생각 하나 바꾸는 찰나 해탈한다고 경전에서 말한다. 그러나 그 생각들이 모두 수많은 생동안 거듭되어온 생각이라 쉽게 바뀌지 않는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지은 업(業)의 장애(障碍)라고 하여 업장(業障)이라고 하는데, 업장은 그릇된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니 중생들을 위해 좋은 일을 많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함으로서 업장을 소멸하고, 나아가 좋은 복(福)을 많이 짓고, 깨끗한 도(道)를 닦아 지혜를 얻고 어려운 중생들을 구원하기 위해 큰 원을 세워 복과 지혜로서 살기 좋은 우주를 창조해 가라고 했다.

이와 같은 도(道)를 이룬 사람은 ‘나’가 있데 ‘나’가 ‘나’아닌 것으로 이루어진 사실을 알기에 ‘나’를 위해 욕심낼 일이 아무 것도 없다. 세상은 아름답고 귀한 보배로 충만(充滿)해 있지만 내 것으로 만들어도 내 것이 될 수 없는 이치를 알기에 내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다. 욕심낼 일이 없으므로 불만도 화도 낼 일이 없고, 죽음도 ‘나’ 아닌 ‘나’가 죽는 것이므로 두려워하지 않는다. 일체가 인연 따라 이루어지는 법이니 큰 원을 세워 복과 지혜로서 일체 중생들이 살기 좋은 우주를 창조하는 좋은 인연을 지을 뿐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시카고 불타사 주지 현성 합장

불기 2553(2009)년 12월 13일

No. Subject Author Date Views
138 불교의 믿음 현성 2010.12.06 8389
137 스트레스 천국 현성 2010.11.14 6578
136 수다원계 수계법문 - 나는 누구인가? 현성 2010.11.09 6998
135 내가 탄 열차 현성 2010.05.31 7107
134 부처님 오신 날 봉축 현성 2010.05.16 7126
133 안일(安逸)한 마음 현성 2010.05.04 7145
132 생업(生業)과 불교 현성 2010.04.25 7928
131 내 몸은 내 몸이 아니다 현성 2010.04.05 7827
130 법정스님과 무소유 현성 2010.03.14 7155
129 하나인가 둘인가 현성 2010.03.08 7002
128 행복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에게 온다 현성 2010.02.15 7443
127 마음 쉬는 공부 현성 2010.02.08 8211
126 참회와 관음기도 현성 2010.01.24 8927
125 100일 관음기도 현성 2010.01.11 11413
124 [신년 인사] 희망과 꿈 현성 2010.01.02 7109
123 사랑과 방편 현성 2009.12.20 7333
» 신비(神秘)와 ‘나’ 현성 2009.12.13 6933
121 영가님께 현성 2009.11.03 8248
120 불교는 무엇을 믿는 종교인가? 현성 2009.10.18 7651
119 생각을 하지 말자. 무념(無念) 현성 2009.10.05 79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