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회와 관음기도

2010.01.24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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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慙悔)란 잘못한 일에 대해 부끄러워하고 뉘우치는 행위를 참회라 한다. 사람들이 일을 잘못하는 것은 어리석음이 있기 때문인데 어리석음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보고 들어도 모르는 것인데, 예를 들면 이 법문을 들어도 모르고, 앞에 계시는 부처님을 봐도 모르는 것 등을 말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일상생활에서도 보고 들었어도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들이 흔히 있는데 이것 역시 어리석은 탓이다.

두 번째 어리석음은 좋은 것을 나쁘다고 보고, 나쁜 것을 좋다고 보는 것을 어리석다고 한다. 선(善)을 악(惡)으로 보고, 악(惡)을 선(善)으로 보는 사람을 범부(凡夫)라 하고, 선을 선으로 악을 악으로 보는 사람을 보살(菩薩)이라 한다.

 

악을 짓는 행위를 악업(惡業)이라 하고 선을 짓는 행위를 선업(善業)이라 하는데, 이 업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를 천수경 참회게(懺悔偈)에서 말씀하고 있다.

한문 참회게는 법요집 26쪽, 한글 참회게는 16쪽에 있다.

한문 참회게는 : “아석소조제악업(我昔所造諸惡業) 개유무시탐진치(皆由無始貪瞋癡) 종신구의지소생(從身口意之所生) 일체아금개참회(一切我今皆懺悔).“

한글 참회게는 : “옛적부터 제가지은 모든 악업은 모-두가 탐진치로 말미암아서
뜻과 말과 행동으로 지었사오니 제가 이제 진심으로 참회합니다.“

 

현세에 짓고 있는 업은 전생에서 유래한 업의 소산(所産)이고, 그 악업은 모두 시작이 없는 옛적부터 내려오는 탐진치 때문인데, 그 탐진치는 몸과 말과 뜻으로 나타나고 또 그렇게 지은 업은 과보로 남게 된다.

그리고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 중 신업(身業) 3가지는 살생(殺生), 투도(偸盜), 사음(邪淫)이고, 구업(口業) 4가지는 망어(妄語), 기어(綺語), 양설(兩舌), 악구(惡口)이며, 의업(意業) 3가지는 탐, 진, 치(貪瞋癡)이다. 이에 대한 참회를 십악(十惡) 참회라 하는데 한문은 27쪽, 한글은 17쪽에 있다.

 

한문 십악참회(十惡懺悔)는 :
살생중죄금일참회(殺生重罪今日懺悔) 투도중죄금일참회(偸盜重罪今日懺悔)
사음중죄금일참회(邪淫重罪今日懺悔) 망어중죄금일참회(妄語重罪今日懺悔)
기어중죄금일참회(綺語重罪今日懺悔) 양설중죄금일참회(兩舌重罪今日懺悔)
악구중죄금일참회(惡口重罪今日懺悔) 탐애중죄금일참회(貪愛重罪今日懺悔)
진에중죄금일참회(瞋恚重罪今日懺悔) 치암중죄금일참회(痴暗重罪今日懺悔) 

한글 십악참회는 :
살생 참회하여 방생하고, 투도 참회하여 보시하며, 사음 참회하여 사랑하고는 신업(身業) 3가지이니, 선업(善業)인 방생, 보시, 사랑도 몸으로 지어야하는 업이니 말이나 생각으로 하는 업은 신삼업(身三業)이 될 수 없으니 반드시 몸으로 해야 한다.

망어 참회하여 바른말하며, 기어 참회하여 이로운 말하고, 양설 참회하여 화목한 말하며, 악담 참회하여 덕담하고는 말로 짓는 4가지 업이니 바른말, 이로운 말, 화목한 말, 덕담이 선업(善業)이 되려면 소리 나는 음성으로 해야 한다. 이들 중에는 경전(經典)을 독경하거나 염불(念佛)을 하는 것도 구업(口業)으로 지은 악업을 선업으로 돌리는 방편이다.

탐애 참회하여 자비심 내며, 화냄 참회하여 미소 짓고, 어리석음 참회하여 지혜롭겠습니다. 는 마음으로 지은 삼업(三業)이니 탐애나 화냄이 일어나는 순간 이를 알아차려 사유(思惟)로써 참회한다.

 

십악(十惡)과 십선(十善)은 별개로 우리들의 마음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살생하고자 하는 마음을 돌리면 방생(放生)이 되는 것이지 살생과 방생이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훔치고자 하는 마음을 돌리면 주고자 하는 마음이 되는 것이며, 사음하고자 하는 마음 돌리면 청정한 사랑을 할 수 있는 마음이 되는 것이다. 거짓말을 돌리면 바른 말이 되고, 듣기 좋은 말보다 이로운 말을 하고, 대상에 따라 다른 혀를 놀리기보다 화목한 말을 하고, 감정을 상하게 하는 말보다 덕담을 하여 편하게 해 주는 말을 한다.

탐욕은 나에게 주는 만병의 원인이 됨을 알아, 탐욕을 돌려 자비심을 내면 편안해 지니 화낼 일이 없어지고 지혜로워 진다. 이와 같이 십악을 참회하여 십선으로 돌리면 범부가 보살이 된다. 살생하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날 때 그를 잡아 오히려 방생하게 하고, 훔치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날 때 그를 잡아 오히려 보시하게 하는 것 등이 악업보다 선업을 쌓아 감으로써 범부가 보살이 되는 방편이다.

 

그리고 또 다른 악(惡)이 있다. 요즈음 세상에 권력을 잡았다고 약(弱)한 사람을 함부로 대한다든지, 어른이라고 어린아이들을 함부로 대한다든지, 대기업이 기업을 독점해 소자본가들을 망하게 한다든지, 부자라고 가난한 사람을 무시하는 예가 흔히 있는데 이런 일은 불교에서는 강(强)이 지나치게 강한 것이라 하여 개인적인 죄보다 사회적인 죄악으로 본다.

그리고 또 사람이 부드럽고 친절한 것은 좋지만 이것도 지나쳐 나쁘게 이용당하는 일이 생기면 지나치게 약한 것이라 하여 옳은 처신으로 보지 않는다. 지나치게 강한 것도 약한 것도 공히 죄를 짓는 업이 되니 지나치지 않게 중도를 지키도록 유념해야 한다.

 

다음은 치암중죄금일참회(痴暗重罪今日懺悔) 다음에 나오는 게송이다.

백겁적집죄(百劫積集罪) 일념돈탕제(一念頓蕩除)
여화분고초(如火焚枯草) 멸진무유여(滅盡無有餘)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 심약멸시죄역망(心若滅時罪亦亡)
죄망심멸양구공(罪亡心滅兩俱空) 시즉명위진참회(是卽明爲眞懺悔)

오랫동안 쌓인 죄업 한 생각에 녹여버려 마른풀이 불에 타듯 남김없이 소멸되네.
죄의 자성 본래 없어 마음 따라 일어 난 것, 이내마음 비워내면 죄업 또한 사라지니,
지은 죄나 마음이나 모두 함께 공해져서 양쪽모두 비워지면 이것이 곧 참회라네.

“백겁동안 쌓인 죄업이라도 한 생각하는 찰나에 모두 소멸된다.” “죄는 원래 고정 불변하는 자성(自性)이 없고 다만 마음에 저장된 업에서 일어나는 것이니, 마음에 저장된 업을 소멸할 때 죄 또한 없어지는 것이니, 이것을 진정한 참회라고 했다.

 

지난 학기 반야심경 강의에서 말씀드린 바 있는데, 안이비설신의 육식(六識)이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인 대상을 접촉할 때 수상행식 중 수(受), 느낌이 먼저 일어난다. 이 느낌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감정(感情)으로 화하는데 이를 여섯 가지 정이라 하여 육정(六情)이라 한다. 대상과 감정이 반복하여 되풀이 되는 가운데 집착이 일어나고, 집착이 여러 가지 죄업을 짓게 하는 원인이 되는 것이니 이를 방지하기 위해 수(受)를 공(空)해 버리면 육정(六情)이 공해지고, 육정이 공하면 집착이 공해지고 또 그 대상인 색성향미촉법도 공해진다고 했다.

 

어떻게 느끼는 수(受)를 공할 수 있는가? 육식(六識)의 대상인 육경(六境)을 연기법으로 보면 그들과 나는 이미 하나이니 좋다고 내 것으로 만들고자 할 정도로 좋아하거나 싫다고 버리고자 할 정도로 싫어할 느낌이 있을 수 없음을 관한다. 일체가 연기법 상으로 이미 나와 하나인 사실을 인식하는 찰나 육정(六情)이 소멸되니, 이를 :

백겁적집죄(百劫積集罪) 일념돈탕제(一念頓蕩除)
여화분고초(如火焚枯草) 멸진무유여(滅盡無有餘)
그리고 이렇게 찰나 사이에 백겁동안 지은 죄를 소멸할 수 있음으로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 심약멸시죄역망(心若滅時罪亦亡)
죄망심멸양구공(罪亡心滅兩俱空) 시즉명위진참회(是卽明爲眞懺悔)
라고 했다.

 

이렇게 하는 참회를 실상(實相), 근본자리로 돌아가는 참회라 하여 실상참회(實相懺悔)라고 한다.

실상참회를 하여 실상(實相)으로 돌아가면 그 자리가 바로 여래(如來)가 머무는 자리요 관세음보살이 머무는 자리이니, 관세음보살의 가피를 입게 되어 많은 중생을 어려움에서 구원하는 보살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한 때 중국에 태전선사라는 분이 계시는 지역에 한태지라는 태수(太守)가 있었는데 사람들이 자기보다 그를 훨씬 더 공경하므로 그가 진짜 선사인가 시험해 볼 계략을 꾸몄다. 젊고 예쁜 홍련(紅蓮)이라는 여인을 보내 100일 안에 그를 유혹하게 했다. 그 임무를 띤 홍련은 태전선사에게 가까이하여 밥도 같이 먹고 잠도 한 방에서 자면서 아주 편안하고 또 재미있게 지냈으나 태전선사를 유혹하지는 못하고 100일이 지났다.

홍련이 태전선사에게 말했다. “실은 태수가 선사님을 100일 안에 유혹하고 오면 큰 상을 내리고 못하면 참수하겠다. 고 해 여기에 왔는데, 이제 돌아가면 태수가 나를 죽일 것이니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라고 물었다.

그러자 태전선사가 글을 하나 써주며 “이것을 가지고 내려가거라. 그가 너를 죽이지는 못할 것이다.” 라고 했다.

그 때 그 글이 아래 시(詩)였다.

 십년불하축령봉(十年不下鷲嶺峰) 관색관공즉색공(觀色觀空卽色空)
여하조계일적수(如何曹溪一滴水) 긍타홍련일엽중(肯墮紅蓮一葉中)
십년동안 축령봉에서 하산하지 않고 수행하고 보니
색을 보는 바로 그 관(觀)이 공해 버린즉 일체 색이 공했더라.
어찌 불조(佛祖) 혜명(慧命)의 한 방울의 물이라도
비록 홍련이 하나의 잎에 불과하지만 그 가운데에 버릴 가부냐.

색을 바라보는 그 관자(觀者)의 마음에 허물이 없으니 눈밖에 있는 색에도 허물이 없더라. 라는 태전선사의 말씀과 천수경의 심약멸시죄역망(心若滅時罪亦亡) ‘마음에 죄가 없을 때, 마음 밖의 색에도 죄가 없다’는 말씀과 상통하는 구절이다.

내 마음이 선(善)하면 내 마음 밖의 모든 것도 선(善)하게 보이고, 내 마음이 악(惡)이면 내 마음 밖의 모든 것도 악(惡)으로 보이니, 마음의 때를 씻기 위해 일념으로 “관세음보살”을 염하며 십선(十善)을 부단히 닦아 가면 어느 날, 문덕 관색관공즉색공(觀色觀空卽色空), 즉 십선을 닦는 바로 그 마음이 공해져 있는 것을 깨닫게 되는 날이 온다. 태전선사는 일체가 너와 내가 따로 없는 하나, 즉 실상(實相)의 자리에 이미 계셨으니 여인(女人) 홍련(紅蓮)이 색욕(色欲)의 대상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여인뿐만이 아니라 어떠한 물질도 사욕(私慾)의 대상으로는 보이지 않았음으로 그와 인연된 일체도 청정하여 관세음보살님과 화엄성중님들이 머무시는 곳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인연으로 태전선사는 많은 사람들의 공경을 받게 되었다고 본다.

 

대한불교 조계종 시카고 불타사 주지 현성

2009년 1월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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