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업(生業)과 불교

2010.04.25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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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살기 위해 갖는 직업을 생업이라 한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모든 과목들은 모두 생업을 위한 공부들이다. 생업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고, 경쟁이 심하고 힘든 일이 많다. 생업에서 설사 성공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계속해서 성공하기 어렵고, 한 번 실패한 사람은 재기(再起)하기 지극히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이유로 스트레스를 받기 쉽고, 스트레스 해소하는 방법으로 술, 담배, 음식, 음료 등에 호소하는 사례들이 많아져 오히려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해치게 되는 사례가 된다.

 

불교는 생업(生業)에 비해 인생(人生)을 공부하고 닦는 종교이다. 사람이 존재하는 이유와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배운 대로 익히고 닦는 것이다.

사람이 존재하는 법과 살아가는 법을 말씀하신 책을 경전이라고 하는데 불교 신자들은 경전독경을 많이 한다. 독경은 경전의 뜻을 이해하여 ‘나’를 경전의 뜻에 비춰봐 스스로 반성하며 경전의 뜻대로 되고자 하는데 의미가 있다. 즉 경전 공부는 경전에 자신을 비춰봐 자기를 알아서, 바로 세워, 편안을 얻고자 하는 공부이다.

옛 말씀에 “소가 물을 마시면 우유를 만들고, 뱀이 물을 마시면 독을 만든다.”고 한 것과 같이 똑같은 경전을 읽고도 읽는 사람의 근기에 따라 약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는 해석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선지식의 가르침을 받지 않고 집에서 혼자 불교 공부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또 하나의 불교 공부는 걷고 멈추고 앉고 눕고, 말하고, 침묵하고, 마음이 움직이고, 고요한 것을 관하는 공부이다. 즉 살기 위한 직업생활에서 자기 몸과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알아차리는 공부이다. 조급할 때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 자기 몸과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가를 알아차리는 훈련이다.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스트레스를 내가 받은 것인가? 스트레스가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인가를 관한다. 내가 스트레스라고 느끼지 않으면 스트레스가 아니지 않는가? 내가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스트레스가 있는 것이지 받지 않으면 없는 것이 아닌가?

스트레스를 받을 때 상대방을 미워하는 마음이 일어나고, 내 가슴이 뛰고, 호흡이 급해지는 것을 느끼지 않는가. 상대방이 내 인격을 무시하는 말을 했다고 생각하거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생각하거나, 내 기대에 어긋난다고 생각될 때 일어나는 나의 감정이 스트레스가 아닌가? 결국 상대방이 나에게 스트레스 받게 한다고 하더라도 내 생각이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받는 것이니, 내 생각이 받지 않으면 내 마음에서 스트레스가 일어나지 않게 되는 원리가 있다. 이와 같이 몸과 마음의 움직임을 관하는 공부를 불교에서 가르친다.

 

자기의 몸, 마음, 그리고 생각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알아차렸으면 그 다음은 그 몸과 마음을 어떻게 움직이게 하면 상대방과 나에게 이익이 될 수 있게 할 수 있는가를 찾아내는 것이다. 그를 위해서는 우선 일체 선입견이나 과거의 관습에서 벗어나는 수련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어떠한 선입견이나 관습이 마음에 남아 있으면 그 관습에 따라 생각이 일어남으로 그 관습을 벗어난 새로운 생각이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선입견이나 관습을 소멸하는 수행으로 부처님의 명호를 염하는 수행을 권한다. 석가모니불,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중 하나를 택해 계속 반복해 염하다보면 선입견이나 관습이 소멸되어 가고 마음이 지장보살과 하나가 되면서 마음이 가벼워지고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편안한 가운데에서 상대방과 나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방법이 마음속에서 문덕 떠오르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상대방과 나에게 이익이 되는 길이 부처님의 길이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불교 공부는 이 세상에 어떠한 생업(生業)도 영원할 수 없으며, 눈으로 볼 수 있는 어떠한 존재도 흩어지지 않고 죽지 않는 것은 이 우주 안에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참선을 통해 스스로 깨닫는 공부이다. 영원히 흩어지지 않고 존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말을 불교에서는 공성(空性)이라 하는데 이 공성을 체달(體達)하고자 하는 수행을 좌선 혹은 염불선이라 하고 공성을 체달한 사람을 도사(道師) 혹은 선사(禪師)라 한다. 도사와 선사는 마음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심사(心師)라고 부르기도 한다.

도사, 선사, 심사님들은 이원론(二元論)적 사유에서 불이론(不二論)적 사유의 세계로 승화하여 너와 내가 둘이면서도 둘이 아니고 그렇다고 하나도 아닌 사유의 세계에 있다. 너와 내가 하나이기에 너를 고통에서 대가를 기대하지 않고 구원하고, 그 후에는 너와 나는 하나가 아니기에 너를 자유롭게 놓아 주는 것이다. 이와 같이 베푸는 마음을 자비심이라 하는데 도사와 심사는 자비심을 베풀고자 하는 원력(願力)이 대단히 높고 고귀하여 언제나 바쁜 생활을 하게 된다.

 

생업(生業)을 하는 사람들과는 반대로 자신을 위해 얻는 것은 없지만 휴일도 근심 걱정도 모르는 늘 자유로운 생활이 심사(心師)들의 삶이다.

한국 서해에서 두 동강이가 된 천안함, 그로 인해 수많은 젊은 병사들이 손 한 번 쓰지도 못하고 명을 달리하게 된 참사를 보면서, 이원론적 사유를 가진 사람들이 이 지구상에서 저질 수 있는 횡포(橫暴)가 얼마나 무서운 재해(災害)를 인류사회에 가져오게 하는 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고, 또 그들이 얼마나 큰 대가를 치러야 그 사유(思惟)의 부당함을 절감할 수 있을 까고 생각하게 된다. 피해자와 가해자를 위해 ‘관세음보살’을 일념으로 염한다. 나무관세음보살!

 

대한불교 조계종 시카고 불타사 주지 현성 합장

201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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