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 놓아라

2008.12.02 00:49

현성 Views:12282

 엄양(嚴陽)스님이 조주스님(778-897)을 찾아뵈러 갔다. 그가 아무런 선물을 준비해 오지 못한 것을 미안하게 생각해 조주스님에게

“아무것도 가져오지 못해 죄송합니다.”라고 했다.

조주스님께서 대답하시되, “내려놓게”라고 하셨다.

엄양스님은 ‘내려놓으라.’는 말씀에 가져온 것이 없다고 했는데 스님께서 잘못 알아 들으셨나 보다고 생각하며, 더욱 미안한 마음이 일어나 당황하면서, “스님, 아무 것도 가져오지 못했습니다.”라고 좀 더 높은 음성으로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조주스님께서, “놓기 싫거든 짊어지고 가게.”라고 했다. 

조주스님의 이 말씀을 듣고 엄양스님은 크게 깨달았다고 한다.


이 조주스님과 엄양스님 사이의 이 대화는 선방에서 많이 회자되는 명구이다.

조주스님께서 ‘내려놓으라.’고 하신 말씀은 엄양스님이 조주스님께 오는데 아무런 선물을 준비하지 못한 것을 미안하게 생각하는 그 마음, 자체가 마음에 부담이 되고 있으니, 그런 부담은 아무런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니, 그런 생각을 하지 말라는 말씀이고, ‘놓기 싫거든 짊어지고 가게.’라고 한 것은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계속 고민해 보고 싶으면 얼마든지 고민해 보라. 고민해서 무엇에 도움이 되는가를 직접 체험해 보라는 말씀이다. 

이 대화는 근심 걱정을 짊어지고 다니는 짐에 비유해 말씀하신 것이다. 마치 짐이 많으면 무거운 것과 같이 근심 걱정이 많으면 머리가 복잡한 것이 큰 짐덩어리를 머리위에 언저놓은 것과 같이 무겁다.

짐을 내려놓듯이 마음의 짐을 비우라는 말씀이다.

마음의 짐이란 요즈음 사람들이 흔히 경험하는 스트레스이다. 스트레스를 받아야할 스트레스를 받을 경우도 있겠지만,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 스트레스를 준다는 사람의 마음과는 전혀 관계가 다를 수 있다.


엄양스님은 조주스님에게 선물을 가져오지 못한 스트레스가 있었지만 진작 조주스님 자신은 선물을 가져오든 아니든 아무런 상관이 없었을 것이다. 더욱이 조주스님께서 ‘놓기 싫거든 짊어지고 가게.’라고 했을 때 엄양스님은 어리둥절해져서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를 받았겠지만 진작 조주스님은 엄양스님에게 스트레스를 주려고 그렇게 표현 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스트레스는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 저 사람이 나에게 스트레스를 준다고 생각하는 것이지 사실은 다를 수 있다. 그러니 내가 저 사람의 행동이나 말에서 스트레스를 느끼지 않으면 그만이다. 이것이 바로 ‘내려놓아라.’라는 뜻이다.  

이 말씀에서 표현되지 않은 중요한 의미가 또 있다.

엄양스님은 조주스님께 수행지도를 받기 위해 왔을 텐데, ‘선물을 준비해 오지 못해 미안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한 정신 집중을 요하는 수행이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신도님들의 시주물의 은혜를 배신하는 업(業)을 짓게 될 것이다.  


그리고 스트레스는 하나의 감정인데 감정이 격하게 일어나는 정도에 따라 에너지(energy) 소모의 정도가 결정된다. 스트레스를 심하게 느끼고 나면 다른 일을 할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몸에서 기운이 소모되었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를 자주 느끼는 사람의 몸과 마음이 약해지는 원인이다.

스트레스를 받는 것도 내가 지은 업(業)이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수록 스트레스가 더욱더 심하게 증장되어 스트레스에 완전히 구속되어 버릴 수 있다. 이것이 우울증의 현상이다.

스트레스 감정이 일어날 때 이를 빨리 알아차려 그 감정의 힘을 도움이 될 수 있는 일 쪽으로 돌리면 정신 집중이 더 잘되고 일의 능률도 훨씬 좋아질 수 있다. 스트레스는 마음을 분산시키는 작용을 함으로 일의 능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스트레스 에너지를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에 쏟으면 스트레스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에너지를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돌파해 나가는 활력소(活力素)로 활용할 수 있다.


화를 잘 내는 사람들이 운동을 하고 나면 화가 풀리게 되는 것을 흔히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예가 화의 에너지를 운동하는 힘으로 방향전환 시키는 좋은 예이다. 그 폭발할 듯 한 감정을 그림으로 표현하면 훌륭한 그림이 되고 시(詩)로 표현하면 많은 사람들의 감정을 움직일 수 있는 훌륭한 시가 되는 것이다. 둔감한 감정에서 좋은 그림이나 글이 나오기 어려운 이치가 여기에 있음을 깨닫고, 스트레스를 자주 느끼시는 분들께서는 스트레스를 생산적인 활동 에너지로 전환할 수 있음을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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