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통묘용(神通妙用)

2008.08.26 22:56

현성 Views:9197

<38> 신통묘용(神通妙用)

 

방거사는 선(禪)의 황금시대라 불리는 8세기 중반에서 9세기 초까지 당(唐)대 마조선사나 석두선사가 선풍을 날리던 시대, 마조선사의 유일한 재가제자였다. 그의 아래 게송은 대혜(大慧) 종고(宗杲)(1089-1163) 선사의 어록 서장에 나오는 시이다.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일은 차별이 없다.

오직 내 스스로 짝하고 어울릴 일이다.

하는 일마다 취하거나 버리지 아니하고

가는 곳마다 베풀고 어긋나지 아니하는데

높은 벼슬을 누가 귀하다고 하겠는가?

저 산도 한 점의 티끌에 불과한 것을.

신통(神通)과 묘용(妙用)은 물 긷고 땔나무 해올 줄 아는 것일세.


日用事無別  唯吾自偶諧  頭頭非取捨  處處勿張乖

 일용사무별 유오자우해  두두비취사  처처물장괴

朱紫誰爲號  丘山絶點埃  神通竝妙用  運水及搬柴

주자수위호  구산절점애  신통병묘용  운수급반시


- 방거사


우리가 수행을 하는 목적은 일체가 하나인 것을 깨닫기 위함이다. 일체가 하나인 것을 깨닫고 보면 일체가 존재하는 이유가 있고, 장단(長短)이 있고 음양(陰陽)이 있다. 그 존재하는 이유, 장단과 음양은 모두 보고 듣는 사람의 마음에 수용될 수 있다. 일체를 수용할 수 있는 마음의 자세가 되어 있을 때 방거사가 깨달은 바와 같이 일상생활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내가 차별할 대상이 아니라 조화를 이룰 대상이 되는 것이다.


요즈음처럼 시장경제가 발달된 시대에는 이윤이 남는 것은 취하고 손해 보는 것은 버리는 일에 능하게 된다. 이러한 시대적 정신에서는 대단히 수용하기 어려운 뜻이지만 깊이 음미해볼 가치가 충분히 있는 말씀이다.

취할 사람이나 버릴 사람이 많은 세상은 대단히 삭막하고 불륜(不倫)이 만연되는 사회가 되지만 좋아하거나 미워하는 일 없이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을 때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정(情)이 살아나고 윤리(倫理)와 도덕(道德)이 앞서는 사회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벼슬보다 정(情)과 윤리를 귀중하게 생각하는 사회가 건설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서로가 다르고 차별이 있으면서도 본질적으로 같음을 인식하고 서로 같이 사는 평등함이 실행될 수 있는 불교의 근본사상이다.


그리고 우리가 듣고 볼 수 있고, 남이 말하는 것을 듣고 볼 수 있으며 그에 따라 내가 대답할 수 있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고 느낄 수 있다는 이 사실이 바로 신통묘용이라 했다. 우리가 이렇게 사유하고 듣고 보고 하는 이 자체를 떠나 무엇을 신통이라 할 수 있을까. 우리가 신통을 찾아 다니지만 신통은 바로 우리 마음안에 이미 존재하고 있다는 말씀이다. 우리는 일을 확실히 알고 잘 활용할 줄 아는 것이 묘용(妙用)이다.

남과 대립하고 경쟁하고 투쟁하고 원한이 가득한 대상들과 짝하고 어울리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이들은 먼저 이원론(二元論)적 개념에서 만족을 얻을 수 없고, 만족이 없는 곳에서는 행복을 얻을 수 없음이 인식되어야 한다. 마음에서 일체 욕망이 우선 제거되는 곳에서 방거사의 심오한 마음자리를 읽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바라는 것이 있고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한 그 기대에 어긋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으니 일상생활에서 바라는 자와 그 바램을 만족시켜 줘야할 사람과의 차별이 있고 대립관계가 성립되게 되니 신뢰(信賴)가 깨지기 쉽고 각자가 취하고 버리고자 하는 일들이 대립하게 되니 신통묘용이 작용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라는 것도 없고 의지할 것도 없는 두 사람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이 차별할 것도 없고, 취하고 버릴 것도 없으니, 짝하고 어울릴 수 있는 관계가 성립될 수 있는 것이다.       

  

방거사의 시를 다시 한번 읊어보면,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일은 차별이 없다.

오직 내 스스로 짝하고 어울릴 일이다.

하는 일마다 취하거나 버리지 아니하고

가는 곳마다 베풀고 어긋나지 아니하는데

높은 벼슬을 누가 귀하다고 하겠는가?

저 산도 한 점의 티끌에 불과한 것을.

신통(神通)과 묘용(妙用)은 물 긷고 땔나무 해올 줄 아는 것일세.


모든 일에 내 마음이 수용적이 되면 내 스스로 짝하고 어울릴 수 있게 될 것이다.

No. Subject Author Date Views
Notice 현성스님의 5분 명구(유익한 경전구절) 해설 bultasa 2007.09.19 23280
56 어디에서 왔습니까 현성 2008.11.07 8778
55 전법(傳法) 현성 2008.11.07 8787
54 언행(言行) 현성 2008.11.07 8799
53 부처를 뽑는 자리 현성 2008.11.07 8838
52 좋은 말(馬) 현성 2008.11.07 8776
51 나를 위해 차맛을 보게나 현성 2008.09.18 8797
50 비유(譬喩) 현성 2008.09.18 8818
49 하늘과 땅이 그 안에 있다 현성 2008.09.18 8795
48 절대의 한 순간 현성 2008.09.18 8806
47 끝없는 공양을 베풀다 현성 2008.09.18 8785
46 마른 똥 막대기 현성 2008.08.26 10417
45 머물지 말라 현성 2008.08.26 8790
44 믿음과 의심 현성 2008.08.26 8814
43 아나율타의 믿음 현성 2008.08.26 8798
42 백정의 믿음 현성 2008.08.26 8799
41 믿음과 불과(佛果) 현성 2008.08.26 8647
40 믿음은 도의 근원 현성 2008.08.26 8762
» 신통묘용(神通妙用) 현성 2008.08.26 9197
38 아난과 가섭 현성 2008.08.26 9369
37 삿된 가르침 현성 2008.08.26 86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