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서 왔습니까

2008.11.07 11:28

현성 Views:8781

 향주의 무착 문희(無着文喜, 821~900) 선사는 일곱 살에 출가하여 항상 계율을 익히고 경학에 열중하였다. 뒤에 대자산의 성공(性空) 선사를 만나 여러 지방의 다른 사찰들을 두루 참배할 것을 권유 받았다. 무착은 곧바로 오대산 화엄사의 금강굴에 이르러 한 노인이 소를 끌고 가기에 그를 따라갔다. 노인은 균제(均提) 동자를 불러 소를 건네주고 무착을 데리고 절에 들어갔다. 절은 모두 금빛으로 되어 있었다.


   무착이 노인과 마주앉자 노인이 물었다.

   “어디에서 왔습니까?”

   “남방에서 왔습니다.”

   “남방의 불법은 어떻습니까?”

   “말법의 비구들이 계율이나 조금 지키고 살아갑니다.”

   “대중들의 수는 얼마나 됩니까?”

   “혹 삼백 명도 되고 혹 오백 명도 됩니다.”


   다시 무착이 물었다.

   “이곳의 불법은 어떻습니까?”

   “용과 뱀이 함께 있고 범부와 성인이 같이 삽니다[龍蛇混雜 凡聖同居].”

   “대중들은 얼마나 됩니까?”

   “전삼삼 후삼삼(前三三 後三三)입니다.”


   노인은 동자를 불러 차와 소락을 대접하게 하였는데, 무착은 그것을 먹고 마음이 환하게 열리고 상쾌해졌다. 노인은 다시 파리로 된 찻잔을 들고 물었다.

   “남방에도 이러한 것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러면 평소에 어디에 차를 마십니까?”

   그러나 무착은 대답이 없었다.


   날은 저물었고 하여 노인에게 물었다.

   “하룻밤 머물고 싶은데 되겠습니까?”

   “그대에게 집착하는 마음이 있으면 머물 수가 없습니다.”

   “저는 집착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그대는 일찍이 계를 받았습니까?”

   “계를 받은 지는 오래되었습니다.”

   “그대에게 만약 집착하는 마음이 없다면 왜 계를 받았습니까?”


   무착은 물러나오고 노인은 동자에게 무착을 전송하게 하였다.


   무착이 동자에게 물었다.

   “전삼삼 후삼삼이 얼마나 되는가?”


   그러자? 동자가 “스님!” 하고 불렀다.

   무착이 “왜 그러느냐?” 하고 물었다.

   “이것이 얼마나 됩니까?”


   무착은 다시 물었다.

   “여기가 어딘가?”

   “여기는 금강굴 반야사입니다.”


   무착은 처참하였다. 바로 그 노인이 문수보살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다시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동자에게 머리를 숙이고 한 말씀 가르침이 있기를 빌었다. 그것으로 이별의 정을 달래었다. 그 때 동자가 들려준 게송이 :


얼굴에 화가 없는 것이 공양구요,

입에 화가 없으니 신선한 향기가 난다.

마음에 화가 없으니 진귀한 보배가 넘치고,

때도 없고 오염도 없으니 참되고 영원하다.


이 말이 끝나자 균제동자도 절도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다만 오색구름 가운데 문수보살이 금빛 사자를 타고 노닐었는데 홀연히 흰 구름이 동쪽에서 와서 감싸버리고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그 일로 인해 무착은 오대산에서 주석하게 되었다. 참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게송이다.


위에서 무착이 노인에게 “이곳의 불법은 어떻습니까?”하고 물으니, 노인께서,   “용과 뱀이 함께 있고 범부와 성인이 같이 삽니다[龍蛇混雜 凡聖同居].” 라고 대답했다고 하는데 이것이 무슨 뜻일까? 용과 뱀이 둘이 아니요, 범부와 성인이 둘이 아니라는 뜻이다.

즉 용의 마음의 근본이나 뱀의 마음의 근본이 둘이 아니요, 범부의 마음의 근본이나 성인의 마음의 근본도 둘이 아니라는 것을 모두 이해하고 실천하고 있기에 서로 다른 것은 인식하지만 차별대우를 하지 않는다는 뜻이 된다.


무착이 동자에게 “전삼삼 후삼삼이 얼마나 되는가?” 고 물으니 동자가 “스님!” 하고 불렀다. 무착이 “왜 그러느냐?” 하고 물으니 “이것이 얼마나 됩니까?” 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러면 “전삼삼 후삼삼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맞혀 보십시오. 알아맞히면 문수보살님을 친견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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