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물이 있습니까?

2007.11.02 13:47

현성 Views:10129

운문(雲門) 문언(文偃) (?~949)스님의 문안에서 수행하던 한 행자가 운문스님에게 물었다.
  한 생각이 일어나지 않아도 허물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운문선사가 대답하시기를 :
  허물이 수미산만큼 크다.
  불기일념(不起一念) 환유과야무(還有過也無) 운수미산(云須彌山)

어떻게 하여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스님께서 허물이 수미산만큼 크다고 하셨을까?
선문답이기도 하지만 간화선의 화두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어떻게 하여 허물이 될 수 있는가? 무슨 말을 했다면 그 말이 허물이 될 수도 있고, 어떤 행동을 했으면 그 행동이 허물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어떤 생각을 했다면 그 생각이 허물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생각이 일어나지 않았는데 어떻게 허물이 된다는 말인가? 그것도 수미산만큼 큰 허물이라 했으니?
어려운 선문답이고 화두이다.
어떻게 하여 ‘한 생각도 하지 않은 것이 허물이 된다.’고 운문스님이 대답하셨을까?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은 불교적 용어로 무념(無念)에 들어가 있을 때라는 말이 되는데 이 말의 뜻은 ‘여래의 자리’, ‘만법실상의 자리’, ‘이 우주에 항상 있는 전능한 힘의 자리’이다. 이 자리는 흔히 앞생각과 뒷생각이 끊어진 자리에 있다거나 혹은 한 생각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그 자리에 있다고 한다.
질문은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허물이 있느냐 없느냐? 허물이 없다면, 만법실상의 자리를 체험했었어야 될 것이 아니냐는 뜻이 암시되어 있다.
이 질문에 대하여 허물이 수미산만큼 크기 때문에 ‘제법실상’의 자리에 들지 못한다는 뜻으로 대답하셨다.
어떻게 하여 ‘생각이 일어나지 않았는데’ 허물이 된다고 하셨을까?

질문을 한 수행자가 생각의 꼬리를 물고, 꼬리가 꼬리를 물고, 이 꼬리가 저 꼬리를 물고 하루, 이틀, 한달, 두 달, 한 철, 두 철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으니 허물이 수미산만큼 크다고 하신 것일 것이다.
이 말은 또 무슨 말인가?
운문스님 문하에서 공부하는 수행자가 운문스님에게, ‘한 생각도 일으키지 않아도 허물이 됩니까? 안됩니까? 라고 묻기까지 그 수자가 무지하게 많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하고 그 질문을 스님에게 던졌다고 스님이 수자의 마음을 꿰뚫어보신 것이다.
질문 자체로만 보면 생각이 일어나지 않았으니 허물이 없겠지만, 이 수자가 수미산 만큼 많은 생각 끝에 한 질문이니 허물도 그와 같이 많다는 말로 해석된다. 즉 마음이 텅 비어져서 던진 질문이 아니라 생각 끝에 생각으로 지은 질문이란 뜻이다.  
이러할 때, 이 질문이 선문답이면, 말없이 질문자의 입을 때리거나 때리는 시늉을 하는 것이 정답이 될 수 있다. 생각을 멈추면 그런 질문이 성립되지 않는 것을 알고 질문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이 질문이 화두라면, 이 화두를 잡고 말의 꼬리를 물고 생각을 헤매게 하지 말고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게’까지만 화두로 삼아 화두 이외에 다른 생각이 일어나지 않게 화두만 잡고 참선을 계속하는 것이다.  

시 한 편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생각이 생각을 물고 일어나는 것
모래로 기와집을 지어
바다 위를 둥실둥실 떠다니며
풍월을 읊는 마음
생시일까 꿈일까?
현실일까 환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