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데서 구하지 말라

2007.12.22 02:07

현성 Views:8793

법안 문익 선사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다른 곳에서 구하려고 집착하지 말라.
모두가 마음으로 말미암아서 지어진다.

불착타구(不着他求) 진유심조(盡由心造)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는 바로 나의 마음이다. 다른 곳에서 답을 찾으려고 하지 말라. 세상사도 수행도 자신의 감정의 문제도 오로지 자신의 마음이 좌지우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문제해결의 열쇠는 언제 어떤 경우라도 근본인 자신의 마음에서 찾아야 한다는 말씀이다.

한국 불교의 법맥은 육조 혜능스님 밑에 남악, 마조, 백장, 황벽, 임제스님 순으로 내려오는데 대주혜해 선사가 처음에 마조스님에게 법을 물으러 갔다.
마조스님이,
‘어디에서 왔느냐?’
‘월주의 대운사에서 왔습니다.’
‘무엇하러 왔는가?’
‘불법을 구하러 왔습니다.’
자기 집에 있는 보물창고는 돌보지 않고 남의 집에 있는 보물창고를 찾아 무슨 일을 하겠다는 것인가? 이곳에는 아무 것도 없는데 무슨 불법을 구하려 하는가?
대주스님이 마조선사에게 절을 올리고 여쭈었다.
‘어떤 것이 제 집에 있는 보물창고입니까?’
마조선사가 대답하기를,
‘잘 들어요. 지금 나에게 묻고 있는 그대가 바로 보물창고이오.’
이 말을 듣는 순간 대주스님은 ‘보물창고’란 바로 ‘본래의 마음’임을 깨닫고 뛸 듯이 기뻐하며 예배하고 떠났다.
영리한 사람은 이렇게 한 마디에 ‘보물창고’를 깨닫는다.
그러나 보통 우리들은 ‘내 집에 있는 보물창고’가 무엇일까? ‘다른 곳에서 찾지 말고 내 안에서 찾아라.’ ‘일체가 마음이 짓는 것이다.’라고 해도 이 말씀들이 무슨 의미인지 여러 가지로 생각하다가 오히려 혼란스런 생각만 하게 된다.
사람이 총명하면 총명할수록, 생각이 깊으면 깊을수록 밖을 향해 답을 구하려고 한다. ‘내 집’이라니 무엇이 내 집일까? 무엇이 ‘보물창고’일까 생각하다보면 말의 꼬리가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선사들이 우리에게 말하는 ‘내 집’이다, ‘보물창고’다, ‘안과 밖’이다 하는 것 따위는 모두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니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보라는 말씀이다. ‘내 집’이다, ‘보물창고’다, ‘안과 밖’이다 하는 것들이 모두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라면 ‘달’은 무엇인가? ‘달’이다, ‘내 집’이다, ‘보물창고’다, ‘안과 밖’이라고 생각하거나 말을 하는 실체가 무엇이냐고 묻는 것이다. 이렇게 말을 하고 생각하는 실체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대주스님은 ‘보물창고’란 바로 ‘본래의 마음’임을 깨닫고 뛸 듯이 기뻐했다고 했는데 이 때 ‘보물창고’와 ‘본래의 마음’은 같다고 봐도 틀리지는 않는다. 그러나 ‘본래의 마음’이 무궁한 가능성이 있어서 ‘보물창고’라고 했다고 생각한다면, ‘내 집이다’ 혹은 ‘안과 밖’ 등은 ‘본래의 마음’이 아니게 된다. 대주스님이 ‘본래의 마음’이 ‘보물창고’라고 말하는 실체라고 깨달았다면, ‘내 집이다’ ‘안과 밖’ 그 외 ‘월주의 대운사에서 왔습니다.’ 등도 모두 ‘본래의 마음’, 즉 말하는 자신의 실체에서 나온 것임을 깨달았다는 말이 된다. 이 실체를 깨달았으면 불교를 더 이상 공부할 것이 없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말하고 생각하는 이 실체를 항상 드러나게 하려면 일념으로 집중하는 능력이 항상 있어야 하고, 이 능력이 항상 있을 때 보살도를 이루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