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는 서기 1500년 대에 서산대사의 오도송으로 여겨지는 :

천 가지 꾀나 만 가지 생각과 헤아림이
붉게 타고 있는 화로 위에 한 점의 눈송이와 같으니,
진흙으로 만든 소가 물위를 걸어가고,
대지와 허공이 파열(破裂)되다.

중, 두 번째 줄, ‘붉게 타고 있는 화로 위에 한 점의 눈송이와 같으니,’는 일체 마군을 항복받고 여래의 집에 들었다, 참 나를 찾았다, 견성했다, 불생불멸의 경지에 들었다, 혹은 깨달음을 얻었다는 뜻이고, 선가에서는 이를 돈오돈수라 한다고 했다.  
오늘은 니우수상행(泥牛水上行)
‘진흙으로 만든 소가 물위를 걸어가고,’라고 한 말씀에 대해 공부해 보고자 한다. 흙으로 만든 소가, 즉 무거운 흙덩어리가 물위를 지나간다는 말이다. 이는 나무로 만든 부처님이 불(火)을 지나간다는 말도 되고, 돌로 만든 부처가 눈물을 흘린다거나, 토끼에 뿔이 나고, 거북이 등에 털이 난다는 등 다양하게 선가(禪家)에서 표현한다. 이는 불가능이 없다는 뜻을 비유로 표현한 말인데 실제로 양변(兩邊), ‘나’와 ‘너’라는 상대적인 개념이 멸한 곳에 ‘너와 내가 하나’되고 ‘일체가 하나’되는 절대 아(我), 진아(眞我)가 일어나게 된다. 이것이 진공묘유(眞空妙有)라고 표현되는 경지이다. 진짜로 공(空)해지면 묘하게 작용하는 것이 있다는 뜻인데 이는 지혜의 문이 열린다는 의미이다. 이 경지를 반야심경에서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라 했다. 물질에 접하여 공하고, 공에 접하여 물질이 있다고 했으니 있고 없는 것이 자유자재하다는 말이 된다. 이는 능소(能所)가 없어 일체가 하나가 되었을 때 이러나는 지혜이고, 이를 진공묘유라고 했다.
이 경지를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경지라 하여, 성철스님께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고 하셨다. 세속적인 견해에서는 산을 잘못보고 물이라 하기도 하고, 물을 잘못 봐 산이라 하기도 하지만, 이 경지에서는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능력을 구비하게 되고, 이를 원하는 대로 자유자재로 변형할 수 있는 지혜를 가진 경지라는 뜻이다.  
십우도에서는 이 경지를 소도 여의고 자신도 여읜 경지라고 했다. 이 경지에서는 시간과 공간이 일치한 상태이기에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를 볼 수 있는 통찰력이 있게 된다. 자신을 볼 수 있다는 것은 곧 남도 볼 수 있게 된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세상의 흐름도 알아 중생들의 병에 따라 처방하고, 중생들로 하여금 무위집에 들게 할 수 있는 능력도 구족하게 된다. 참다운 보살로서의 자격을 갖추어 중생 제도를 위해 전념할 수 있는 계위에 오른 것이다.
물리학에서 물질이 energy가 되고, energy가 물질이 된다는 원리와 같다. 그리고 이 원리에서 수많은 가능성을 연구 개발하여 상품화 하고 있다. 불교에서 가르치는 색즉시공 공즉시색이 바로 물질과 energy가 등가라는 원리가 물리학에서 증명되었고, 이 경지에서 인류에게 필요한 수많은 상품을 개발하는 가능성을 보임으로서 불교에서 말하는 불가능이 없다는 말씀도 물리학에서 증명하고 있다. 이것을 서산대사께서 ‘진흙으로 만든 소가 물위를 걸어가고,’라고 하신 것이다.

다음 주에 계속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