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 가지 생각이 화로 위에 한 점 눈송이다.(4/4)

2007.12.22 02:22

현성 Views:8786 Recommend:1

대지허공열(大地虛空裂)
대지와 허공이 파열(破裂)되다.

앞 구절 ‘붉게 타고 있는 화로 위에 한 점의 눈송이와 같으니,’에서 ‘나’라는 상이 있다는 생각에서 온갖 망상을 부리다가 이 망상이 화로 위에서 눈 녹듯이 녹아 버렸으니, 일체 악이 소멸되었다. 악이 없으니 선도 없어져 선악이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너와 나도 하나가 되어 능소가 없어지고 일체가 하나가 되었다. 이 때, 대지(大地)와 허공(虛空)도 지평선에서 하나가 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것이 진여의 모습이고 열반의 모습이지만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서는 중생세계에 다시 돌아와야 한다. 중생세계에 돌아오기 위해서는 능소가 있고, 너와 내가 구별되고 대립되는 세계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니, 이를 대지와 허공이 지평선에서 붙었다가 다시 갈라지는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을 표현하여 대지와 허공이 파열되다, 라고 했다. 이는 십우도 열 번째 그림인 ‘저자거리에 들어가다’에 해당한다.

서산대사의 시,
千計萬思量 紅爐一點雪 泥牛水上行 大地虛空裂
천계만사량 홍로일점설 니우수상행 대지허공열을 다시 비유하면,

‘천 가지 꾀나 만 가지 생각과 헤아림’이라 한 것은 온갖 경쟁, 투쟁이 전개되는 세속적인 삶을 표현한 것으로 산이라고 하는 것이 물이 될 수도 있고, 물이라는 것이 산이 될 수도 있는 것이 현실세계라고 할 수 있다.

‘붉게 타고 있는 화로 위에 한 점의 눈송이와 같다’고 한 것은 모든 악이 수행의 힘으로 눈 녹듯이 소멸되었으니 악이 없는 세계가 열렸다. 악이 없으니 선도 없어 일체가 끊어진 세계가 되었으니 ‘물도 없고 산도 없다’고 했다. 이를 쌍차(雙遮)라고 하기도 하고 절대부정이라 하기도 하는데, 이가 바로 일체가 하나인 세계, 진여의 세계, 열반의 세계, 반야심경의 공(空)의 세계, 법성게의 진(眞)의 세계이고, 지혜의 문이 열리는 경지이다.
  
‘진흙으로 만든 소가 물위를 걸어가다’라고 하는 것은 지혜의 문이 열려 불가능이 없다는 말이다. 지혜의 문은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도록 일체 선입견과 망상이 소멸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즉 화롯불에 눈송이 녹듯이 일체 악이 소멸되었음이 전제된다. 이들 악이 소멸되었을 때, 비로소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되고 이들을 원하는 대로 자유자재로 형상을 바꿀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이 일어난다고 했다. 성철스님은 이를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고 하고, 반야심경에서는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라 하였고, 법성게에서는 일즉일체(一卽一切) 다즉일(多卽一)이라 했다.

‘대지와 허공이 파열(破裂)되다.’라고 하는 것은 일체 대립관계에서 벗어나 너와 내가 하나가 되어 너와 나의 한계가 사라졌을 때  대지와 허공도 하나 되어 일체 경계가 사라지니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가없는 세계가 열리게 되어 막힘없고 걸림 없는 자유자재한 지혜와 능력을 갖추게 되었으니 극락을 누리게 되었지만 이 열반의 세계를 파하고 대립과 갈등 속에서 고통 받는 중생을 향해 새로운 사명을 가지고 나오는 모습이다. 이를 법성게에서는 ‘법의 비를 널리 내려 모든 중생들에게 이익 되게 한다,’ 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