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을 따른다

2008.01.16 03:06

현성 Views:8625

인연이란 원인과 그에 필요한 조건들이 갖추어질 때 새로운 현상이 일어난다는 뜻인데 불교 교리 상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대혜(大慧) 종고(宗杲) 선사는 1089-1163년 당송대의 선사로 공안 참구법인 간화선의 시조이신데, 이 선사의 글을 모은 서장에서 선사께서 말씀하신 ‘인연을 따르라’는 게송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 게송은,
  
일에는 거슬리는 것도 없고 순조로운 것도 없으니,
인연 따라 곧 응할 것이며 가슴속에 머물게 하지 말라.

원문은 :
事無逆順 隨緣卽應 不留胸中 이다.
사무역순 수연즉응 불유흉중

우리가 하는 일에는 일반적으로 우리들의 비위에 거슬리는 일도 있고, 비위에 맞는 일도 있는 것이 사실이나, 일 자체가 사람의 비위를 거스르게 하거나, 비위에 맞게 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이다. 사람이 자기의 성격이나 습관 또는 사회풍습에 따라 좋아 하고 싫어하는 일이 있는 것이지 일이 사람을 거역하는 일은 없다는 말씀이다.

종고선사께서는 사람이 어떤 일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 사람의 감각기관이 느끼는 감정이고, 일 자체에 역순(逆順)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이다. 생각해보면 일 자체에 역순(逆順), 즉 거슬리고 순조로운 것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감각적인 느낌에 거슬리고 순조로운 것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감각적인 느낌은 자기가 지은 업과 성격에 의한 분별심에서 일어나는 것인데, 사람들이 미혹하여 분별심을 없애려하지 아니하고 일을 멀리하려고 하니, 이는 인연을 거역하는 일이 된다는 말씀이다. 즉 인연을 거역하지 말고 순리에 곧 응하라고 하신 말씀이다.

이 세상에 모든 존재들은 일체가 인연이 화합할 때 이루어지고 융성해지는 법이지만 또 인연이 다하여 흩어지기 시작하면 쇠퇴하여 결국 소멸하게 되는 법이다. 이치가 이러하니, 사람이 밉다고 멀리하기 시작하면 주위에 미운 사람이 하나 둘 많아지기 시작하여 자기를 거역하는 세력이 형성되어 사람을 만날 때 마다 두려운 마음이 일어나 사람을 멀리하고자 하니 결국 자기가 고립되게 된다. 이러한 삶은 인연에 순응하지 못하는 탓이다.
그러나 미운 사람을 밉다고 멀리하기보다 내가 어떻게 하면 저 사람을 좋게 볼 수 있을까? 내가 왜 저 사람을 미워하나 하고 스스로 자기 성품을 바라보기 시작하면, 자기 마음을 바꾸어 저 사람을 편안하게 할 수 있는 길이 보인다. 이것이 곧 지혜이다. 이렇게 한 사람을 귀중하게 생각하고 가까이 하려고 노력하다보면, 한 사람 두 사람 좋은 사람들이 자기의 주변에 많아지게 되어, 시간과 더불어 융성하게 발전해가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연기법에 순응하는 이치이다.  

부부의 인연을 가진 두 사람이 성격이 맞지 않아 못살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상대방이 무엇인가 잘못하고 있다는 느낌에서 오는 감정이다. 물론, 상대방이 잘못할 수도 있지만 나의 눈, 귀, 코, 혀, 몸이 느끼는 감정이 그가 잘못했다고 보는 것이니, 나의 감정을 바로 잡아 고치라는 말씀이, ‘연에 따라 곧 응하라’는 말씀이다. 상대방에 비추어서 나의 성품, 습관 등을 살펴서 상대가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상대가 원하는 일, 좋아하는 일을 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연에 따라 곧 응’하는 모습이다.
연구실에서 연구하는 분들도, 주변 조건들에 불만을 가질 것이 아니라 그들을 잘 살펴서 그 조건들에 맞게 연구의 방향을 잡아 일념으로 집중하는 자세가 ‘연에 따라 곧 응’하는 모습이고, 악기를 다루는 악사도 그와 같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느낌에서 오는 감정을 마음속에 담아두면 병이 되니 담아두지 말고 놓아버리라는 말씀이 ‘가슴속에 머물게 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요즈음 스트레스로 생기는 신경성질환의 원인을 제거하라는 말씀도 된다.
다시 한번 ‘인연을 따른다.’는 게송을 읊어보면,

일에는 거슬리는 것도 없고 순조로운 것도 없으니,
인연 따라 곧 응할 것이며 가슴속에 머물게 하지 말라.

事無逆順 隨緣卽應 不留胸中
사무역순 수연즉응 불유흉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