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生死)

2008.01.16 03:09

현성 Views:8780

간화선의 시조이신 대혜 종고 선사께서 임종에 임하여 아무 말씀을 하시지 않으심에 제자들이 마지막 말씀을 청하였다. 그 당시는 선사들의 마지막 말씀을 임종게(臨終偈)라고 불렀는데 요즈음은 열반송(涅槃頌)이라 부른다. 제자들에게는 마지막 귀중한 가르침이 되기에 임종에 임하신 대혜선사께 임종게를 청하였더니, 대혜선사께서 말씀하시길,

태어남도 그냥 그런 것이고 죽음도 그냥 그런 것인데
게송이 있든 없든 이 무슨 독촉인가.

원문은 :
生也祇麽 死也祇麽 有偈無偈 是甚麽熱
생야기마 사야기마 유게무게 시심마열 이라는 임종게를 내리셨다.

태어남도 그냥 그런 것이고 죽음도 또한 그냥 그런 것인데 임종게가 있든 없든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말씀이다.
‘태어남도 그냥 그런 것이고 죽음도 또한 그냥 그런 것이라’는 말씀은 ‘나’라고 하는 존재의 한 모습이다. 법성게에서 ‘일중일체다중일 일미 진중함시방’, 이는 하나 가운데 일체가 있고 여럿 가운데 그 하나가 있으며, 하나의 미진 속에 시방세계가 포함되어 있다는 화엄경의 진리이다. ‘나’라고 하는 ‘참 나’속에 이 시방법계와 삼세가 다 포함되어 있다는 말씀으로 ‘참 나’ 속에 이 우주가 있으니, 내가 곧 우주요 우주가 곧 나라는 말씀이다. 이것은 곧 불교에서 보는 자아관(自我觀) 중의 하나로 우리들이 감각적으로 느끼는 ‘나’는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나’인데 그 ‘나’는 ‘참나’가 아니라고 한다. ‘참 나’는 우리들이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나’가 아니라 깨달은 사람이 혜안으로 볼 수 있고 알 수 있는 ‘나’이다. 혜안이 아니더라도 수행을 많이 한 사람은 평소에 내가 아는 나 이외에 나를 운전하는 기사가 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참 나를 진아(眞我)라 하고 우리가 알고 있는 나를 참된 것이 아니라 하여 비진(非眞) 혹은 가아(假我)라고도 한다.

이 비진인 ‘나’라고 하는 존재에는 흙기운, 물기운, 불기운, 바람기운, 의식이 있다. 이들이 화합하여 이 몸과 마음이 태어났고, 인연이 다하면 이들이 흩어진다. 인연이 되어 화합할 때 의식이 이 우주 법계에서 흙기운, 물기운, 불기운, 바람기운을 받아 태어났고, 죽는다는 것은 이들이 인연이 다하여 이 우주 법계로 다시 돌아간다는 뜻이다. 태어남은 대혜 종고 선사가 이 우주 법계에서 온 것이고, 죽음이란 본래의 자리인 우주 법계로 돌아가는 것인데 임종게가 있고 없고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말씀이다.

그리고 또 참 나, 진아(眞我)의 입장에서 보면, 이 세상에 이 몸이 태어났다는 것은 진아가 나와 함께 하면서도 이 우주 법계를 떠난 것이 아니라, 이 우주 법계와 항상 상통하고 있으니 진아가 태어난 것은 아니고, 이 몸이 죽었을 때 몸은 죽어 흩어졌어도 진아는 죽지 않는다. ‘참 나’인 진아는 몸을 받았다고 태어난 것이 아니고, 몸이 죽었다 고하여 죽는 것이 아니기에, 진아는 업으로 된 나, 업아(業我)와 더불어 또 다음 생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 업아는 업에 따라 변하니 생과 멸이 있지만 진아는 업아와 더불어 있으면서도 업에 물들지 않아 변하는 것이 아니니, 반야심경에서 불생불멸하고,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으며, 더러워지는 것도 아니고 깨끗해지는 것도 아니라고 한 것이다.  
이와 같이 불생불멸하는 나는 생멸하는 업으로 된 나와 더불어 다음 생을 기약하게 되니 금생에 나쁜 업을 소멸하고 선한 덕을 많이 쌓아 불생불멸하는 극락세계에 왕생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말씀은 불교를 믿는 신자들이 가져야 할 죽음에 대한 믿음이다.
죽음에 임했을 때, 이와 같이 받아 지니면,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어진다. 두려움이 없으니 마음이 편안해지고  세상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 수없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되고, 있는 것이든 없는 것이든 변해가는 진리현상 그대로를 볼 수 있는 마음의 문이 열리게 된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통하지 않음이 없고 부족함이 없는 이치를 깨닫고 평온한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