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슬이 저절로 구르듯 하라

2008.01.16 03:15

현성 Views:8585

대혜(大慧) 종고(宗杲) 선사는 1089-1163년 당송대의 선사로 공안 참구법인 간화선의 시조이신데, 이 선사의 글을 모은 서장에서 선사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구슬이 저절로 구르듯 하라.’는 게송이 있다. 이 게송은,

사람마다 다 밝고, 사물마다 다 뚜렷이 드러나 있으니
일상생활에서 연을 만나는 곳이
깨끗하기도 하고 더럽기도 하며,
기쁘기도 하고 기분 나쁘기도 하며
순조롭기도 하고 거슬릴 수도 있다.
이들은 마치 구슬이 쟁반 위에서 굴러다니는 것이
누가 굴리지 않아도 저절로 구르는 것과 같다.  

원문은 :
頭頭上明 物物上顯  日用應緣處 或淨或穢
두두상명 물물상현  일용응연처 혹정혹예

或喜或瞋 或順或逆 如珠走盤 不撥而自轉矣
혹희혹진 혹순혹역 여주주반 불발이자전의 이다.

사람과 사물이 모두 각기 밝고 뚜렷하게 드러나 있으니, 우리들의 일상생활에서 그들을 만나는 연이 있게 되는 것이다. 이 연이 깨끗할 수도 있고 깨끗하지 못할 수도 있는데 이는 마치 쟁반 위에 있는 구슬이 저절로 굴러다니는 것과 같다고 했다.
‘마치 쟁반 위에 있는 구슬이 저절로 굴러다니는 것과 같다’고 한 것은 언제 어떠한 연이 나에게 굴러올지 예측할 수 없다는 말씀이다. 깨끗한 연이 될지, 더러운 연이 될지 예측할 수는 없지만, 나와 연이 있어 만나게 된 것이니 거역하지 말고 순리로 받아들이고 바르게 처리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깨끗하다고 좋아하여 탐하지도 말고, 더럽다고 멀리 하려 하지 말며 편안한 마음으로 그들을 받아드릴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니, 마음이 항상 평정(平靜)하도록 수행하라는 가르침이다.

예측하지 못한 사이에 만난 이 연이 기쁜 일일 수도 있고 언짢은 일일 수도 있으며, 물이 흐르는 방향으로 가듯 순조롭게 진행될 수도 있고, 때론 물이 휘돌아 치듯 힘든 연일수도 있다. 어떠한 연이든 모두 지난 시절에 지은 나의 업이 구슬이 쟁반 위를 구르듯 예측할 수 없이 나에게 굴러온 것이니, 좋은 일이든 궂은일이든 항상 평정한 마음으로 이들을 대해 과거에 지은 궂은 업을 모두 소멸하여 번뇌 없는 깨끗한 마음으로 돌아가도록 하라는 말씀이다.  
기분 나쁜 일이 일어났을 때 혹은 힘들 때, 마음에 동요가 생기고, 어찌할지 몰라 당황하고, 이리할까? 저리할까? 방황하며 번뇌 망상이 일어나기 시작하면 겉잡을 수 없는 업을 또 짖게 됨으로 새로운 업을 짓지 아니하고 과거에 지은 업을 소멸하게 하기 위해 하신 선사의 말씀이다.

과거에 지은 업의 인연은 마치 구슬이 쟁반 위를 구르듯 저절로 구르는 것이니 수행자는 항상 이들에 대치할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말씀인데, 이는 곧 평정(平靜)한 마음이다.
평정(平靜)하다는 것은 평화롭고 고요한 것으로, 불안한 마음에 평화가 있을 수 없고, 번뇌가 있는 곳에 고요함이 있을 수 없다. 곧 불안과 번뇌가 없는 마음이 평정(平靜)한 마음이다. 어떻게 이러한 평정한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이 법계에는 이에 응할 수 있는 능력과 수단이 가득차 있고, 나는 이 법계에 있고 또 내 안에 이 법계가 있으니, 이 법계의 능력과 수단이 곧 나에게 있다는 마음을 가질 때, 나를 평화롭고 고요하게 하는 근본을 내 마음 안에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마음으로 꾸준히 노력할 때 어떠한 경우에도 동요함이 없게 될 것이다.  

다시 한 번 이 시를 읊어보면,

사람마다 다 밝고, 사물마다 다 뚜렷이 드러나 있으니
일상생활에서 연을 만나는 곳이
깨끗하기도 하고 더럽기도 하며,
기쁘기도 하고 기분 나쁘기도 하며
순조롭기도 하고 거슬릴 수도 있다.
이들은 마치 구슬이 쟁반 위에서 굴러다니는 것이
누가 굴리지 않아도 저절로 구르는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