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공양을 베풀다

2008.09.18 04:49

현성 Views:8783

밑이 없는 배를 노 저으며,
구멍 없는 피리를 불고,
끝이 없는 공양을 베풀어서,
삶이 없는 말을 설한다.

棹無底船  吹無孔笛  施無盡供  說無生話
도무저선  취무공저  시무진공  설무생화

- 서장, 대혜 종고 선사

대혜(大慧) 종고(宗杲) 선사는 1089-1163년 당송대의 선사로 공안 참구법인 간화선의 시조이신데, 이 선사의 글을 모은 서장에서 이 시가 유명하게 회자되고 있다.

밑이 없는 배를 노 저으며,
구멍 없는 피리를 불고,
끝이 없는 공양을 베풀어서,
삶이 없는 말을 설한다.

밑이 없는 배를 어떻게 탈 수 있으며, 구멍 없는 피리를 어떻게 불수 있을까?
우리들의 상식과 지식으로는 도저히 이해될 수 없는 명구(名句)이다.
그러하기에 부처님의 법을 믿고 수행하시는 선사(禪師)들만이 이해할 수 있고, 또 그와 같이 될 수 있게 하고자 세속의 모든 일들을 놓아버리고 생사(生死)라는 일대사 인연을 깨치고자 가장 귀중한 일생을 남김없이 바치는 수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수행을 한다는 것은 자신의 마음속에 저장된 일체의 세속적인 신구의(身口意) 삼업을 소멸함으로서 본래의 청정한 자기 모습으로 돌아가고자 불법(佛法)을 실천해 가는 것을 의미한다.

밑이 없는 배를 노 저으며, 구멍 없는 피리를 불 수 있다는 것은 없는 것에서 무엇인가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말이 되기도 하고 불가능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즉 밑이 없는 배를 노 젓기를 원하면 노를 저을 수 있고, 구멍 없는 피리를 불고자 하면 부를 수 있게 된다는 말씀이니 있고 없는 것에 자유로울 수 있는 경지가 있다는 말씀이다.
이 경지가 바로 우리들의 본래의 마음자리이다. 밑이 없는 배는 이 세상에 없다고 해도 맞지 않고 있다고 해도 틀리는, 즉 말과 글이 끊어진 자리이다.
일체 사물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본래의 깨끗한 마음을 가지게 되면 자연의 이치를 알게 되어 그에 순응하게 되고, 이 자연의 이치에 따라 구멍 없는 피리에서 소리가 날 수 있고, 밑 없는 배를 저어 갈 수도 있게 된다는 말씀이다. 즉 불가능한 것같이 보이던 일이 쉽게 풀리는 세계에 들게 된다는 말씀인데, 이 불가능이 없는 경지를 반야심경에서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라 했다. 물질이 있는 것과 없는 것, 없는 것과 있는 것이 한 찰나에 같이 있게 된다는 말씀이니 유즉무(有卽無)요, 무즉유(無卽有)가 된다는 뜻이다.

이는 현재 과학세계에서 수많은 새로운 발명품이 나와 우리들의 생활을 돕고 있는데, 이렇게 새로운 상품이 개발될 수 있는 과학자의 경지가 유즉무(有卽無)요, 무즉유(無卽有)이고, 시(詩), 그림, 조각를 하는 사람들의 유명한 작품도 모두 이 경지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8월에 진행되었던 베이징 올림픽의 신기록들도 모두 새로운 창조들인데 이들도 모두 그들의 순수한 본래의 마음자리에 돌아가지 않은 사람이 도달할 수 있었던 기록이 아니다.

마음이 순수해야 한다. 순수한 마음은 모든 것을 만들어 낼 수도 있고 없앨 수도 있는 위력을 가지고 있으니 우선 순수하고 깨끗한 본래의 마음자리로 돌아가 순수한 마음이 움직일 수 있는 조건을 갖추게 되면 저절로 밑이 없는 배를 노 저으며, 구멍 없는 피리를 불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되어 불쌍한 중생들에게 필요한 공양을 한없이 베풀 수 있게 되고, 그리고 남에게 공양을 베풀었다고 있던 것이 적어지는 것이 아니라 베풀수록 공양물은 점점 늘어나게 되는 법이니 베풀려고 애쓸 일이 없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육신은 죽어도 그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은 죽지 않는 것이니, 육신은 죽었다고 해도 그 마음은 또 다음 생의 연을 만나 태어나는 법이니 태어나도 태어남이 없는 무생(無生)의 원리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다시 한 번 게송을 읊어 보면,

밑이 없는 배를 노 저으며,
구멍 없는 피리를 불고,
끝이 없는 공양을 베풀어서,
삶이 없는 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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