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馬)

2008.11.07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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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말은 채찍의 그림자만 보고도

바람처럼 천리를 달린다.


良馬  見鞭影而  追風千里

양마  견편영이  추풍천리


- 금강경 오가해


금강경 오가해의 종경(宗鏡) 스님의 가르침이다. 말에도 좋은 말과 나쁜 말이 있는데 좋은 말은 채찍의 그림자만 보고도 빨리 달리라는 신호인 것을 알아차리고 천리 길을 한 숨에 내딛는다는 말이다. 동물도 이와 같이 주인의 신호를 알아차리고 행하는데 사람이 어찌 그렇게 하지 못할까보냐는 뜻이 암시되어 있다.

불교신자로서 한 법을 듣고 열 가지 법을 이해하는 신자도 있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는 사람들도 있다. 훌륭한 제자들은 모두 일문천오(一聞千悟)하는 사람들로

준마(駿馬)와 같은 불교 인재들이 많이 배출되기를 기원한다.


어찌하여 준마(駿馬)와 같은 불교 인재들이 드문가 하고 생각해 본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사회는 시장경제 원리가 시대의 흐름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이 원리에 알게 모르게 구속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시장경제 원리는 눈에 보이는 물건이든 보이지 않는 물건이든 간에 바로 이 시간 이 장소에서의 교환가치를 으뜸으로 하고, 그 교환가치에서 얻은 이윤은 경쟁력의 측정기(測程器)가 되어 이윤이 높을수록 경쟁력이 강해지고 이윤이 낮을수록 경쟁력을 상실(喪失)하고, 경쟁력을 상실하면 자연도태(自然淘汰)되는 과정을 밟게 되는 제도이다.

이러한 제도 하에서 자연도태란 멸망(滅亡)을 의미함으로 사활(死活)을 걸고 이윤경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치열한 이윤경쟁은 위험을 무릅쓰고 새로운 상품개발이라는 벤처(venture) 사업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니, 결국 새로운 상품개발에서 성공하는 자만이 부(富)를 차지할 수 있게 되고 나머지는 도태된다. 이렇게 무서운 현시대의 무한 경쟁 이념은 우리 모두를 구속하고 있다. 


이러한 시장경제적 이념은 사업설립 및 추진, 그리고 취업에서는 당연한 원리가 되어 있다. 이러한 시장경제 이념이 문제시 되는 것은 사업뿐만이 아니라 결혼대상을 선택함에 있어서나 결혼생활, 종교 및 친목 단체 활동에서도 은연중 이들을 지배하는 이념이 되어 부력(富力)이 좋고 나쁜 것의 기준이 되고, 옳고 그른 것까지도 좌우하는 기준이 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이념이 더욱 가공(可恐)스러운 것은 극히 소수의 사람들이 경쟁력을 기반으로 한 막강한 부(富)와 권력(權力)을 누리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무기력(無氣力)한 처지에서 불만스럽게 살아가고 있는 사회가 형성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불교가 설 수 있는 땅이 매우 좁아지게 되었고 앞으로도 시장경제원리가 이 사회를 지배하는 한, 계속 좁아질 가능성이 높아갈 것이라고 본다.


현재 이 자리에서 눈에 보이는 교환가치를 가치의 측정(測程) 기준으로 삼고 있는 시장경제 원리에 비해 불교에서는 사람의 가치를 “남에게 나쁜 짓하지 않고 좋은 일을 하는 공덕을 쌓아가는 정도(正道)”에 두고 있는데 그렇게 쌓아 가는 공덕은 현재 누구의 것과 교환하므로서 가치를 알게되는 대상이 아니라 내가 이 세상에서나 다음 세상에 살아가는 과정에서 복(福)과 덕(德) 그리고 지혜의 형태로 나에게 돌아오고 다른 한편으로는 공덕의 쌓임으로 반복된다는 원리이니, 시장경제적 가치의 원리와 불교의 공덕(功德)의 원리를 비교하려는 것은 마치 사과와 오렌지를 비교하려는 것과 같이 쉬운 일은 아니나 눈앞에 보이는 자기의 이익을 찾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시장경제의 가치원리가 바람직하겠지만 원시안(遠視眼)적이고 나와 남이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원리를 찾는 사람에게는 불교의 공덕의 원리가 바람직할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한국 사람들은 내 눈앞에 보이는 나의 이익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서양식에 상당한 가치를 주고 있지만 서양식에 지친 서양인들은 좀더 원시안(遠視眼)적이고 자기 자신보다 전체의 행복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어 동양적인 것 특히 불교적인 것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사상적인 이념의 차이로 요즈음 한국 사람들 가운데서는 하나를 보고 백가지를 내다보고 행할 수 있는 준마(駿馬)를 만나기가 점점 어려워져가고 있다.     

채찍을 들어보이기만 해도 뛰는 말을 준마(駿馬)라고 하나,

어떤 말은 채찍을 백번 들어보여도 그 뜻을 알지 못하고 한 번쯤 채찍을 맞아야 달리는 말도 있다. 이 말은 근기가 중상이고, 여러 번 맞아야 아는 말, 아무리 맞아도 알지 못하는 말 등 그 근기가 사람의 수만큼 다르다. 

세상이 이러하니 시장경제 이념에서 오는 난세(亂世)를 극복할 수 있는 대체원리로 불교의 공덕의 원리를 발전시켜가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 게송을 다시 읊어보면,


좋은 말은 채찍의 그림자만 보고도

바람처럼 천리를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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