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한 물건도 없다

2007.11.02 13:46

현성 Views:9780

성이 노씨로 알려진 한 나무꾼이 나무를 지고 가다가 한 스님이 낭독하시는 “수보리야, 모든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청정한 마음이 일어나야 하느니라. 그것은 물질이나 명예를 두고 일어나는 마음도 아니요, 소리나, 향기나, 맛이나, 느낌이나 법에 두고 일어나는 마음도 아니니 응당 무엇에나 마음을 두지 않았을 때 그 청정한 마음이 일어나느니라.” 라는 소리를 듣고 깜작 놀라, 스님, 스님, 지금 방금하신 그 말씀이 어디에서 나온 말씀입니까? 하고 물었다.
스님께서 나무꾼에게, “이 문장은 금강경에 있는 구절이요.”라고 대답했다. 나무꾼이, “그 금강경을 배우려면 어디에 가야 합니까?” 스님께서, “금강경을 배우려면 홍인(弘忍)스님 강원에 가야합니다.”라고 대답했다. 나무꾼이, “공부하러 가고 싶으나 노모님이 계셔서 떠날 수가 없습니다.”라고 했다.
스님께서 나무꾼의 착한 마음과 어려운 사정을 아시고 가지고 계시던 돈과 양식을 나무꾼에게 주면서, “이것을 가지고 노모님이 사시도록 하시고 지금 곧 떠나시도록 하십시오.” 나무꾼은 스님의 말씀과 친절에 너무나 감복하여 노모님께 말씀드리고 동내 친구에게 노모님을 부탁하고 길을 떠나 홍인스님 강원에 도착했다.

강원에 도착하고 보니, 강원 규칙이 행자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하여 그렇게 배우고 싶었던 금강경 공부는 하지 못하고 방아 찧는 행자가 되어 일만 하고 있었다. 그 때 사람들이 그의 성이 노씨라 노행자라고 불렀다.
그는 조금도 낙심하지 아니하고 절일을 열심히 도우면서,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수보리야, 모든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청정한 마음이 일어나야 하느니라. 그것은 물질이나 명예를 두고 일어나는 마음도 아니요, 소리나, 향기나, 맛이나, 느낌이나 법에 두고 일어나는 마음도 아니니 응당 무엇에나 마음을 두지 않을 때 그 청정한 마음이 일어나느니라.”라는 구절을 외우고, 외우고, 반복해서 이 문장을 외우면서 절일을 하고 있었다.

이 구절의 한문 원문은 아래와 같다.
須菩提 諸菩薩摩訶薩 應如是生淸淨心 不應住色生心 不應住聲香味觸法生心 應無所住 而生其心
(수보리 제보살마하살 응여시생청정심 불응주색생심 불응주성향미촉법생심 응무소주 이생기심)

이와 같은 생활을 하고 있던 중 어느 날 많은 스님들의 행보가 보통 날과 달라, 그에게 친절하게 대해 주던 젊은 스님에게, “오늘 웬일로 스님들이 모여 웅성거리느냐?”고 물었다. 그 젊은 스님이 노행자에게, “홍인 큰스님이 그의 후계자를 정하기 위해 시 한편을 쓰라고 방을 내리셨는데 그의 수제자인 신수(神秀)스님(606?~706)이 시를 써 붙였는데, 스님들이 그 시를 보고 그 시를 당할 만한 글이 나오지 않는다고 신수스님이 홍인스님의 대를 물려받을 것이라는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고 했다.

노행자가 그 시가 걸려 있는 곳에 가서 시를 읽어보니,
身是菩提樹 心如明鏡臺 時時勸拂拭 勿使惹塵埃
(신시보리수 심여명경대 시시권불시 물사야진애)
몸은 보리수이고 , 마음은 밝은 거울과 같으니
수시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때나 먼지가 끼지 않게 하라. 라는 시였다.

이 시를 본 노행자가 한 시를 읊으며 그 젊은 스님에게 좀 써달라고 부탁하여 쓴 시가  
菩提本無樹 明鏡亦非臺 本來無一物 何處惹塵埃
(보리본무수 명경역비대 본래무일물 하처야진애)
깨달음이란 나무는 본래 없고 밝은 거울도 또한 없다.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어디에 때나 먼지가 끼겠느냐. 라는 시였다.

오조(五祖) 홍인선사께서 이 시를 보시고 대단히 기뻐하시며 노행자에게 그의 대를 물려주니 그가 바로 육조(六祖) 혜능(彗能)대사(638~713)이다.

위의 두 글의 수준을 비교하여 보면 신수스님의 글은 업장을 완전히 녹여버리지 못하였으니 때가 끼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것이니, 아직 완전히 공(空)하지 못하였으니 사과(四果)에 비유하면 한 번 더 왕래한다는 의미를 가진 사다함과에 해당되고, 십우도(十牛圖)에 비유하면 목우(牧牛)에 해당된다고 보이며, 노행자의 글은 그가 외우던 금강경 문장에서 공의 도리를 깨달고 방아를 찌어 업장을 완전히 소멸한 탓으로 사과(四果) 중 이제 다시는 왕래함이 없는 아나함과를, 혹은 십우도의 기우귀가(騎牛歸家)를 증득한 것에 비유될 수 있다고 봐진다.
노행자는,
“수보리야, 모든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청정한 마음이 일어나야 하느니라. 그것은 물질이나 명예를 두고 일어나는 마음도 아니요, 소리나, 향기나, 맛이나, 느낌이나 법에 두고 일어나는 마음도 아니니 응당 무엇에나 마음을 두지 않았을 때 그 청정한 마음이 일어나느니라.”라는 금강경의 한 구절에서 금강경 전체의 의미를 꿰뚫어 보고 방아를 찧고 절일을 도우며 그 뜻대로 실천하고 있었다고 보여 진다.
어떠한 경전의 한 구절이라도 바르게 익혀 실천하면 도를 깨닫게 된다는 가르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