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심경]2.1 분석적 고찰 -4)도일체고액

2007.03.01 01:33

여해 Views:8111

4) 도일체고액(度一切苦厄)

네 번째는 얻은 이익을 밝혔다.  모든 고통과 번뇌가 다하고 분단생사(分段生死1))와 변역생사(變易生死2))를 마땅히 멀리 떠나 진공(眞空: 空空)을 증득하고 맞이하니 바른 깨달음과 열반의 구경(究竟)의 낙의 결과(樂의果)를 증득하였으므로 일체의 괴로움과 액란을 벗어났다고 말한다.

四明利益 謂證見眞空 苦惱斯盡 當得遠離分段變易二種生死 證菩提涅槃究竟樂果 故云度一切苦厄也 上來略標竟3)

 나라는 개체(個體)가 공(空)한 줄 앎으로 나와 남과의 사이에 세워진 벽을 허물고[법공(法空)], 개체를 이루는 법(法)마저 공[아공(我空)]한 줄 알므로 아무 것에도 걸림이 없는 주체의 참된 자주성을 실현한다.  인연으로 일어난 것은 다른 요소와 결합하는 인연으로 일어났기 때문에 그 자체로서 실(實)다움이 없고[아공(我空)], 실(實)다움이 없다함은 아무것도 새로 생한것도 없고 생한 것이 없으므로 사라짐도 없다는 것을 이해하고 체달하면 나는 것도 없고 죽는 것도 없으므로 生死를 초월한다 혹은 멀리 여읜다고 한다[법공(法空)]. 그러므로 공(空)을 관(觀)하므로서 괴로움과 액난(厄亂)이 본래 일어난 바가 없음을 사무쳐 안다.

생사(生死)를 잘못 보아 괴로움과 액란이 있는 것임을 뉘우치고, 괴로움의 조건을 해탈의 조건으로 뒤바꾸는 실천을 한다. 괴로움의 조건을 해탈의 조건으로 바꾸는 실천 자체도 닦음 없는 닦음[不修之修], 머무름이 없는 묘한 행[無住妙行]으로 수행함으로서 중도관(中道觀)을 실현한다.

경에서는 “일체고액을 소멸하였느니라 [도일체고액(度一切苦厄)]”는 말로 입의분(立義分)을 마무리하고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부처님의 가르침이 중생들의 삶을 가꾸어 나가는 자비 자체인 것을 보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중생의 삶에 가장 심각한 것이 고통과 재난을 없애는 것인데, 관세음보살은 바로 반야바라밀로 이것을 성취하고 일체 중생을 제도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반야바라밀에 의하여 일체의 고액을 없애는가?

첫째로 위에서 살펴본 공의 의미인 무집착(無執着)․무소유(無所有)의 삶을 실현하는 것이다. 즉 지금까지 우리들은 무엇 때문에 일체 현상이 공함을 분명히 보는 것[조견(照見)]에 의해서 진정한 자유와 해방이 주어지고, 참다운 의미의 보살도가 실천되는지를 살펴보았다. 그것은 바로 무집착․무소유에 의한 무한 창조의 생활이다. 가령 앞에서 예로 든 것처럼, 한 여자가 때로는 부인이 되고 때로는 어머니 혹은 며느리가 된다. 이때 그 여자가 한 남자의 부인이라는 것에만 집착하여 어머니로서의 역할이나 혹은 며느리로서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또한 어떤 사람에 대하여 혹은 자신에 대하여 특정한 고정관념에 집착하고만 있다면 그에게 무슨 발전의 계기가 주어지겠는가? 일체의 현상에는 본래 고정불변한 실체가 없다는 공의 터득이 있을 때, 거기에 무한 세계가 열리는 것이다.

둘째로 고통이 본래 없는 것을 보는 것이다. 우리들에게 늙고 병들고 죽는 근본적인 괴로움을 비롯하여 갖가지 고난과 고통이 따르는 것은 기본적으로 인간에게 “나[아(我)]”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이 “나”라는 것이 없을 때 고통은 있을 수 없다. 가령 어떤 사람이 간암에 걸려서 심신의 고통을 받는다고 했을 때, 거기에는 간이라는 물질과 그것을 느끼는 마음이 같이 있다는 것이 전제된다. 만약 간이라는 물질이든 그것을 느끼는 마음이든 그 가운데 한 가지만 빠진다면 간암에 걸릴 이유도 그것 때문에 괴로워할 이유도 없어진다.

반야바라밀인 공에서는 아(我)도 없고 타(他)도 없으며, 번뇌를 받아야 할 심신도 없고 해로움을 끼치는 타인도 없다. 우리들이 어떤 대상이나 환경에 대하여 두려움을 느낀다든가 공포심을 갖는 것은 “나”라는 것이 있고 그 대상이나 환경이 있을 때 벌어진다. 만약 “나”라는 존재가 없든지 혹은 대상이나 환경이 없다면 그러한 감정은 결코 생길 수 없다.

우리들의 삶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일체의 괴로움이나 재난을 극복하여 행복을 얻고자 하는 것은 누구나 바라고 있는 최대의 소망이다. 이 소망을 관자재보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성취하였음을 경전은 말하고 있다. 반야바라밀에 의해서 온갖 괴로움은 소멸된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이미 괴로움을 받을 현상계가 없기 때문이다. 공(空)은 유(有)도 아니고 무(無)도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