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파사분(破邪分)

1. 관찰되는 경계[소관경(所觀境)]

 지금까지는 관찰(觀察)을 누가 하느냐(主體)에 관하여 공부하였다. 오늘부터는 무엇을 관찰(觀察)하느냐(對象)를 공부한다. 우리가 관찰하는 것은 우리눈 앞에 전개되어 있는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이다. 그 만물의  비어있는  성질(공성空性)과 비어있는 것의 모양(공상空相)을 설명하는 부분이다.

만물의 비어 있는 성질(현상의 본질의 공성空性):
《사리불이여! 색은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은 색과 다르지 않으며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니 수상행식도 또한 그러하니라.》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受想行識 亦復如是

 만물의 비어 있는 모양(현상의 본질의 공상空相):
《사리불이여! 이 모든 법의 공한 모양은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더러워지는 것도 아니고 깨끗해지는 것도 아니며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으니라.》

사리자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舍利子 是諸法空相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

제 1장의 “설주”를 참고하시면 ‘사리불’이 ‘부처님’에게 “심히 깊은 반야바라밀다행을 배우고자 하면 어떻게 닦아야 합니까”라고 물으시니 ‘부처님’께서 ‘관자재보살’의 수행의 예를 들어 “심히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는 마땅히 오온의 성품이 공하였음을 관하여야 하느니라.”라고 말씀하시고 그 말씀이 지금 이 강의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오온의 성품이 공”하였음을 조금더 자세히 논하고자 한다.

1) 만물의 비어있는 성질(空性)
    만물의 비어있는 성질을 설한 반야심경의 본문은: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위 본문은 반야심경 강의를 듣는 ‘사리자’와 ‘만물의 공한 성질’을 밝히는 부분이다.

(1) 사리자(舍利子), 나는 누구인가?
가. 사리자(舍利子)

왜 반야심경의 주인공으로 ‘사리자(사리불)’가 등장했을까?
반야심경은 반야(초월적 지혜)를 설하는 경이고 ‘사리불’은 부처님의 십대 제자중 지혜제일로 부처님 당대에 가장 칭송을 받던 상수(上首)제자였으며 부처님의 여러 제자 중 가장 먼저 깨달음을 얻어 생사를 해탈한 분이기 때문이다.

‘사리자’는 범어 샤아리푸트라(śāriputra)이다. 샤아리푸트라는 샤아리(śāri)와 푸트라(putra)의 합성어이다. ‘샤아리’는 예쁜 눈을 가진 새(鳥)의 이름인데 ‘사리자’의 어머니 이름이다. ‘푸트라’1)는 아들이라는 뜻이다. 즉, ‘사리자’는 ‘샤아리’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본문 이해를 돕기 위하여 《대지도론》에 나와 있는 ‘사리자’를 소개한다.
《대지도론(大智度論)》
 인도 마가다(magadha)국의 수도 라아자그리하(Rājagrha: 王舍城)에 마아탈라(māthala)라는 이 나라 최고의 사상가(論師)가 살았는데, 그에게는 눈이 샤아리(śāri)새의 눈처럼 예쁘다고하여 그 이름을 ‘샤아리’라고 하는 딸이 있었다.

 빔비사라왕 때였다. 남인도의 사상가인 티샤(Tiśya)가 왕사성에 와서, 배에는 동판을 감고 머리에는 불을 이고는 복잡한 거리에 서 있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그 이유를 물었더니 자기는 경전과 책을 너무 많이 봐서 배가 터질까 봐 동판을 배에 감은 것이고, 이 나라 사람들이 어리석어 어둡기 때문에 불을 머리에 이고 밝히는 것이라 했다. 이 행위는 이 나라 최고의 사상가였던 ‘마아탈라’에게 고의적으로 논쟁(論諍)을 건 것이었다. 드디어 왕과 대신 및 국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두 사상가가 논쟁을 한 결과 ‘티샤’가 승리하여 약속에 의해 ‘마아탈라’가 다스리던 마을과 그의 딸을 얻게 되었다. 이 ‘티샤’와 ‘샤아리’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샤아리푸트라’였다.

 ‘샤아리’가 임신을 했을 때, 한 사람이 보검을 들고 많은 산을 쳐 무너뜨리고 난 후 제일 큰 산 옆에 서 있는 꿈을 꾸었는데, ‘티샤’가 이 꿈을 해석하되, 장차 태어날 아이는 모든 사상가를 다 이기고 오직 한 사람을 당할 수 없어 그의 제자가 된다고 예언했다.

 사리불은 8세 때 나라의 행사인 용왕제 축제에서 왕과 대신들이 참석한 가운데 벌어진 토론에서 다른 사람들을 굴복시켰고, 16세 때에는 아버지 문하의 모든 제자를 굴복시켰다.

 목련(目連: 마우드갈랴아야나, maudgalyāyana)과는 어릴 때부터의 친구로서, 왕사성 대축제 때에 인생무상을 느껴, 목련과 함께 당시 6대 사상가(六師外道)중의 한사람인 회의학파(不可知論派)의 산자야(Sanjaya)에게 출가하고, 1주일만에 스승의 가르침을 다 깨쳐 목련과 함께 후계자가 되어 각각 100명의 스승이 된다.

 그러나 스스로도 자기의 도(道)를 의심하고 있던 차에, 탁발 나온 아스바지트(Aśvajit, 馬勝이라고 한역, 최초의 다섯 제자 중 1인)의 모습이 너무나 조용하고 깨끗하며 당당한 데에 반해 스승이 누구냐고 묻게 된다.

〈아스바지트〉 “석가족의 태자이셨고, 지금은 큰 깨달음을 이루신 부처님이 나의 스승이시다.”
〈사리불〉 “당신 스승의 가르침을 내게 말해 주시오.”
〈아스바지트〉“나는 어리고 도(道)를 배운지 얼마되지 않아 감히 여래의 묘법(妙法)을 말하겠습니까? 그러나 아는 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라고 한 게송을 노래했습니다.

一切諸法本  일체 모든 법의 근본은
因緣生無主  인연 따라 생기므로 주제자가 없느니라.
若解此法者  이 도리를 분명히 깨우치면
卽得眞實道  참된 실상의 진리를 얻으리라2)

 이를 한번들은 사리자는 언하에 곧바로 제법무아(諸法無我)의 진리를 깨닫고 목련과 의논하여 제자 200명과 함께 왕사성 죽림정사(竹林精舍, Venuvana)에 계신 부처님께 귀의하여 각각 지혜제일(智慧第一), 신통제일(神通第一)의 칭호를 얻게 된다.

 뒷날 목련존자가 입적하자 침식을 폐하고 먼저 간 친구를 따랐다. 부처님께서 후계자로 생각할 정도로 지혜가 뛰어났으나 부처님보다 먼저 입적했던 제자이다.3)

 이상으로서 우리는 사리불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를 파악하여야 한다.
 훌륭하신 어머니와 아버지사이에 태어나서 어릴 때부터 논쟁을 좋아하였고 후에 목건련존자(目犍連尊者)와 같이 많은 그의 제자와 더불어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 그는 초기 불교 교단을 형성하는데 가장 큰 위치와 비중을 차지하였고, 그는 또 여러 제자 중 가장 먼저 깨달음을 얻어 부처님의 상수제자(上首弟子)로 지혜제일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이제 이 사바세계에서 우리가 궁극에 도달하여야 할 저 여래지(如來地)로 가는 방법은 반야(般若)외는 아무것도 없음을 설하시는 부처님의 반야의 경전에 주인공으로 등장하시는 것이다. 부처님의 반야를 배워 부처님법대로 살아 가고자하는 우리들의 이상적인 인물로 파악된다.  

 관자재보살은 석가모니부처님의 화현이다.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고 알 수 있는 이상적인 인물이고 초월적 지혜로 자유자재하고 한량없는 자비심과 그 행을 상징한다.

 사리자는 마치 석가모니부처님이 역사적인 인물로서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을 이 세상 생애에서 증득하신 분이지만 다른 수많은 부처님과 보살님들은 그 화현(化現)인 것에 비교하여 ‘사리자’는 그 깨달음의 경지가 사실상 관자재보살의 위치에 올라 있었던 역사적인 인물로서의 부처님 제자였다.  

나. 나는 누구인가?

나는 지금 반야심경을 공부하고 있는 불교의 학생이라고도 볼 수 있고 그저 반야심경을 공부하여 보고자 온 사람이기도 하다. 어느 쪽에 내가 속하든지 간에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내가 어느 쪽에 속하기를 희망하느냐는 것을 결정하여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어느쪽’이냐고 묻는 것을 예를 들어 설명하여 보자.  오늘 뉴스를 통하여 학생 아이 하나가 끔찍한 ‘사고’를 당하여 119병원차로 병원에 수송되어 검사중이라고 한다. 이 뉴스를 접할 때는 우리는 하나의 객관적인 사실에 대한 뉴스로서, 남의 일이라 돌아서면 잊어 먹는다. 사무실에 도착하니 따르릉 전화가 왔다. 무심코 들은 그 뉴스의 사고 당사자는 바로 나의 아들이라고 연락이 왔다. 순간 차이에 그 사고에 대한 나의 관심은 1만배, 1000만배 차이가 날 것이다. 이 때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모든 것을 다 받쳐 그 아이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 외에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어느쪽’이냐 즉, 피상적이냐 당사자이냐고 묻는 것이다.

‘사리불’은 역사적인 인물이다. 수행을 하시고 그 결과 반야를 증득하시고 그 반야로서 부처님을 보필하셨다. 우리도 할 수 있음을 우리들에게 보여 주셨다. 한편, 우리들의 이상적인 인물이면서, 다른 한편, 그렇게 되고자 하는 우리들의 서원으로서 감히 이 순간 우리는 ‘사리불’ 그 자신임을 확고하게 믿자. 지금부터 우리들 모두는 ‘사리불’의 화현이다. 우리들의 이와 같은 의욕적인 정진에 부처님도 기뻐하시고 계신다. 나는 누구냐? ‘사리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