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연기(緣起)의 정의와 의의

경전상에 부처님이 설하신 연기중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다.

「연기법은 내가 만든 것도 아니며 다른 사람이 만든 것도 아니다. 이 법은 여래가 출세하거나 출세치 않거나 항상 법계에 있는 것이다. 여래는 이 법을 깨달아 등정각을 이루시고 사람들을 위하여 분별 연설한다.」1)
 「만약 연기를 보면 곧 법을 보고 법을 보면 곧 연기를 본다.」2)
 「오직 석가모니불뿐만 아니라 비바시불 등 과거 육불(六佛)도 모두 이 연기를 증득하여 정각을 이루시었다.」3)

 이상의 경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① 연기법은 부처님께서나 혹은 어느 누구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      닌, 법계에 항상 있는 것이며
② 연기법은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다시 말하면 도를 이루신 내용이며
③ 부처님의 모든 가르침은 연기법으로부터 나왔으며
④ 연기법은 정법(正法)이며
⑤ 과거의 모든 부처님도 연기법을 깨달음으로서 바른 깨달음을 성취하셨기 때문이다.

  연기 자체에 대한 설명으로 경전에는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므로 저것이 일어난다.(此有故彼有 此起故彼起)」4)
  「이것으로 인하여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다. 이것이 나므로 저것이 나고 이것이 멸하면 저것이 멸한다.(因此有彼 無此無彼 此生彼生 此滅彼滅)」5)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기고,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고 이것이 멸하므로 저것이 멸한다.」6)

  등으로 설하고 있으며 이와 같은 뜻의 문구는 실로 여러 곳에 나온다. 이들 중 우리가 흔히 연기의 정의라고 부르는 것은 처음의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므로 저것이 일어난다(此有故彼有 此起故彼起)〉인데 이를 연기의 정의라 부르는 이유는 나머지의 것은 이의 의미를 부연한 것밖에는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므로 저것이 일어난다(此有故彼有 此起故彼起)〉서로간의 상의성(相依性)을 가지고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대표하는 것인 이상 모든 만유(萬有)는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하나도 독립됨이 없이 서로가 인이 되고 또 연이 되어 서로가 서로를 의지한 채 인연생기하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요즈음 남북한(南北韓) 상생(相生)하여야 한다는 말이 자주 사용되고 있다. 이 상생(相生)은 불교의 연기(緣起)와 같은 의미를 지닐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불교의 연기법은 부부(夫婦)의 관계와 꽃잎과 꽃술과의 관계와 같이 인(因)과 연(緣)이 동시적인 관계가 되어 새로운 것을 “기(起)”한다는 뜻이고 시간적으로 선후(先後)가 되는 관계는 인과법(因果法)이다.

이 연기법이 우리에게 주는 의의(意義)는 무엇인가.
  석존께서 출가하여 입산 수도하신 동기가 하나의 진리를 찾자는 것이 아니고 중생을 생사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고자 함에 있었다. 그리하여 깨달은 것이 연기법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순히 개념적인 것이 아닌 우리의 모든 고통을 제거해 줄 수 있는 크나큰 의의를 가진 진리임을 알아야 한다. 석존 자신에게도 그가 갈구하던 바 모든 고뇌의 해탈을 이 연기법을 깨달음으로서 성취하셨다면 이보다 더 큰 진리는 없었을 것이다.

  상응부경전에 의하면 석존께서는 ①〈무슨 까닭에 노사(老死)가 있는가, 무엇으로 말미암아 노사가 있는가.〉②〈무엇이 없으므로 노사(老死)가 없는가, 무엇이 멸하므로 노사가 멸하는가〉하고 생각하셨다니 이는 연기법에 입각한 사유방법이다. 연기법이 그대로 만유의 존재실상은 물론 중생의 모든 고뇌를 풀어주는 열쇠로 직접 활용되었던 것임을 말해 준다. 그러므로 이 연기법의 의의는 생사고(生死苦)를 끊는 데 큰 의의가 있다. 석존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비구들아, 연기란 무엇인가. 생(生)이 있으므로 말미암아 노사(老死)가 있다. 이것은 내가 세상에 나오던 안 나오던 법으로 확정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은 상의성(相依性)이다」7)
  「내가 체득한 이 법은 심히 깊고 보기 어렵고 깨닫기 어렵다. 적연미묘(寂然微妙)하여 사람들의 생각을 초월하여 심원하기에 지혜있는 사람만이 알 수 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욕망을 즐기고 욕망에 빠져 좋아하고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은 인(因)이 있으므로 생겼다는 연기의 이치는 알기 어려울 것이다.」8)

  이 만고불변의 연기법을 체달함으로서 우리 중생의 생사의 고통을 이 연기법에 의해 끊을 수 있고 나아가 우리들의 삶의 가치를 높이는 창조적 주체로 변신할 수 있는 크나큰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를 자신있게 정법이라고 한다.

  정법인 십이연기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하여 삼법인의 진리를 이해하여야 한다.

(1) 삼법인(三法印)

  「연기법」이 석존이 깨달음을 얻은 도(道)의 내용이라면 「삼법인」은 그 내용을 허실하지 않게 하는 삼대 진리 또는 요강이다.

  「삼법인」이란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 열반적정(涅槃寂靜)의 셋을 말하는데 이를 각각 법인(法印)이라 하는 이유는 법은 법리(法理)라는 뜻이요, 인(印)은 인증(印證)의 뜻으로 확실히 변경할 수 없는 이법(理法)이라는 뜻이다.

  「삼법인」을 말함에는 열반적정 대신 일체개고(一切皆苦)를 넣어 제행무상, 제법무아, 일체개고의 삼법인을 말하기도 한다.

① 제행무상인(諸行無常印): 행(行)이라 함은 의지작용이다. 의지작용에 의하여 만들어 진 것을  유위법(有爲法)이라고 한다. 현상계의 모든 사물은 중생의 업감연기에 의하여 조성되었다고 보는 것이 불교의 존재원리 이다. 따라서 제행(諸行)이라 함은 유위법(有爲法)인 현상계의 모든 사물을 가르치는 말이다. 그리고 무상(無常)이란 말은 유위법은 시간적으로 보아 항상 됨이 없다는 말이다. 따라서 제행무상이라 하면 산봉오리에 떠가는 흰 구름, 그 밑을 흐르는 계곡의 물, 새소리, 물소리, 봄 꽃, 겨울 눈, 부귀, 영화, 권력, 우리 인생까지도 어느 하나 시간적으로 봐서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없다. 실로 이 모든 것은 인연으로 합해졌다가 인연이 다하면 흩어질 뿐이다.  

  만일 이 세상 현상계에 시간적으로 보아서 영원한 것이 단 하나라도 있다면 그것은 법인(法印)이 될 수 없겠지만 물(物), 심(心) 어느 면으로 보던지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제행무상을 법인이라고 한다.

  그리고 무상(無常)에는 일기무상(一期無常)과 찰나무상(刹那無常)의 두 가지가 있다. ①일기무상이란 어느 정도의 기간에 걸쳐 세계는 성주괴공(成住壞空)의 네 가지 과정을 거치고 생물은 생장노사(生長老死)의 네 가지 과정을 거치는 것을 말하고 ②이러한 것도 자세히 보면 시시각각 찰나찰나 생멸변화하니 찰나무상(刹那無常)이란 곧 이를 말하는 것이다.

②  제법무아인(諸法無我印): 제법(諸法)이란 유위법(有爲法)과 무위법(無爲法)을 합한 법을 제법(諸法)이라고 한다. 무위법(無爲法)이란 조작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예를 들면 연기법은 누구에 의하여 조작된 법이 아니므로 항상(恒常)하는 법이지 무상(無常)한 법이 아니다. 유위법(有爲法)은 현상계의 사물을 가르치는 말이다. 아(我)라는 것은 ‘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어떤 고정된 실체(實體)를 가르치는 말이다. 따라서 제법무아(諸法無我)라고 할 때에는 현상계 만유는 공간적으로 보아 아무런 고정된 실체를 가지고 있는 ‘나’는 없다는 말이 된다. 무위법(無爲法)에서도 이와 같다. 시간적으로 위의 제행무상이 성립한다면 공간적으로도 제법무아가 성립하지 않을 수 없다. 시간과 공간은 실로 분리 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시간과 공간은 항상 동일점이다.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말은 한 개체(個體)가 타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으로 주관할 수 있는 영역이 없다는 말이다. 독립된 영역이 있다면 그것을 별체(別體)라고 하는데 그러한 체가 없다는 것이다. 독립을 유지시킬 수 있는 어떠한 벽도 없다는 것이다. 인간이 어리석어 자아(自我)가 있다고 생각하여 이러한 벽을 만들어 결국 자승자박(自繩自縛)한다는 것이다. 이북의 체제가 어느 정도 이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어떠한 존재도 타와 상의하여야 존재가 가능하다고 하는 것이 연기법이다. 혹 타와 상의(相依)하지 않아도 존재할 수 있는 완벽한 영역이 누구에게 있다면, 타와 상의하여야 존재한다는 진리는 성립할 수 없다. 우주 법계에는 이러한 별체(別體)가 없으므로 체(體)는 하나이고, 하나밖에 없으므로 무체(無體)라고도 할 수 있다. 우주 법계에 오직 하나인 이러한 체(體)가 부처님이 나오던 안 나오던 상관 없이 원래부터 있는 것이다라고 부처님이 선언하신 것이다. 삼라만상이 이 체로부터 나오고 또 들어감으로 삼라만상은 무상하지만 체는 항상하므로 삼라만상은 생멸이 있고 체는 생멸이 없고, 삼라만상에는 구정(垢淨)이 있지만 체에는 불구부정(不垢不淨)하고 삼라만상에는 증감(增減)이 있지만 체(體)에는 증감(增減)이 없다.

③ 일체개고인(一切皆苦印): 일체개고라 함은 모든 것은 다 고통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무상(無常)이고 무아(無我)인 객관적 존재를 존재 그대로 놓고 본다면 그것은 고통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객관적 존재가 고통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이에 크게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종류의 주관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 무상(無常)이고 무아(無我)인 존재를 놓고 유상(有常)이요 유아(有我)이길 바라기 때문이다. 그것은 중생의 헛된 욕망이다. 아무리 좋아하는 물건이나 사람이나 직위를 영원히 붙잡아 두려고 해도 그러려는 자신까지도 포함하여 모든 것은 반드시 떨어져 나간다.  그러므로 중생은 이 욕망의 불만족으로 인하여 무상(無常)이고 무아(無我)인 것에 괴로움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물질적인 것이던 정신적인 것이던 마찬가지이다.

㉡ 무상(無常)이고 무아(無我)인 존재를 놓고 무상, 무아 그 자체에 빠져 어차피 무상이요 무아라 하여 모든 것에 희망을 잃어버리거나 자포자기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끔〈인생은 무상하다〉하고 탄식하거나 순간적이나마 염세주의에 사로잡히거나 하는 사람을 볼 수 있다.  이런 순간 그 사람 그 사람에겐 모든 것이 귀찮고 고통스러운 것으로 나타나질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며 따라서 이것이 계속되면 될수록 그의 생활은 점점더 타락의 구렁텅이로 빠져들게 될 것도 당연한 일인 것이다.

  위에 말한 두 가지 이유는 모두가 다 극단에 치우친 것으로 무상과 무아의 도리를 제대로 살려나가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 인생은 무상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무상하기 때문에 유상(有常)과 유아(有我)보다 무한한 진보와 발전을 보장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유상(有常)도 유아(有我)도 고정 불변한 것이므로 더 이하로 떨어질 수도 없지만 더 이상으로 진보도 발전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고(苦)도 만일 유상(有常), 유아(有我)라면 항상 고통스럽지만 다행히도 무상(無常) 무아(無我)이기 때문에 낳아질 수 있는 희망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고통을 이루는 인연을 잘 관찰하여 그 인과 연을 제거하고 새로운 발전을 위한 인연을 이룸으로서 밝은 앞날을 열게 되는 것이다.  

  제행무상, 제법무아, 일체개고(一切皆苦)의 삼법인을 말할 때에는 미혹의 중생계 입장에 서서 현실을 판단한 것이고, 일체개고(一切皆苦)는 십이연기설로 보면 유전연기(流轉緣起), 혹은 순관(順觀)에 해당한다.

④ 열반적정인(涅槃寂靜印): 열반이란 범어 니어바나(Nirvāna)의 음역으로 번역하여서는 적멸(寂滅), 멸도(滅度), 원적(圓寂), 적정(寂靜) 또는 멸(滅)이라고만 쓰기도 한다. 이렇게 보면 열반이나 적정은 같은 뜻이 된다. 그리고 원래 니어바나(Nirvāna)란 말은 〈불어서 끈다(吹滅〉든 지 혹은 〈불이 꺼진 상태〉를 나타내는 정도의 말이었는데 이 말이 불교에 흡수되어서는 모든 번뇌의 속박에서 해탈하고 미혹의 생사를 초월하여 불생불멸을 체득한 불교 최고 이상의 경지를 나타내는 말로 심화되었다. 니어바나(Nirvāna)가 〈불이 꺼진 상태〉이므로 그 반대는 〈불이 타고있는 상태〉가 된다. 〈불이 타고 있는 상태〉가 무엇인지 알아보기로 한다.

  이것은 부처님이 정각을 이루신 고장인 마가다국(國)의 우루벨라로 처음 돌아오시어 그를 따르는 천여명의 제자들을 데리고 니련선하(尼蓮禪河)가 바라보이는 상두산(象頭山)에 올라 행하신 설법이다.

  〈비구들이여, 모든 것은 타느니라. 비구들이여, 모든 것이 탄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비구들이여, 눈(眼)이 탄다. 눈의 대상이 탄다.  눈이 닿는 곳 모든 것이 탄다. 무엇에 의해 타는가. 나는 탐욕의 불에 의해 타고, 노여움의 불에 의해 타고, 어리석음의 불에 의해 타고 늙고, 죽고, 괴롭고, 슬프고, 고통스럽고, 절망스러움의 불에 의해 탄다고 말하고 싶다.  비구들이여. 코(鼻)가 탄다 ㆍㆍㆍ(내지) 마음(意)이 탄다ㆍㆍㆍㆍㆍㆍ〉9)

  그리고는 제자들을 향하여 한시라도 빨리 이러한 불에 타는 상태를 벗어나도록 해야만 한다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우리는 부처님께서 사용하신〈불〉이라는 말이 성냥불이나 장작불같은 물질적인 불이 아닌 탐진치(貪瞋癡)의 삼독 심을 위시한 모든 번뇌, 모든 고통에 얽매여 방황하는 심신(心身)의 극히 불안정한 상태를 비유하여 가르친 말이며,〈타오르는 불이 꺼진 상태〉의 니어바나(Nirvāna), 열반이란 말은 이러한 불안정한 상태를 떠난 안정된 심신의 상태를 나타낸 말이다. 실로 중생의 모든 고통은 이 탐진치가 그 기본을 이룬다.  우리는 어쨌던 간에 이 탐진치를 여의어 고해(苦海)를 벗어나야만 한다.  우리가 부처님 법을 배우는 목적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열반적정인을 내세우는 까닭은 무엇일까. 우리는 앞에서 일체개고인(一切皆苦印)을 고찰하면서 일체가 모두 고통으로 돌아가는 원인은 모든 우주 인생의 만법을 바로 보지 못하고 온갖 망심(妄心)을 내는데 있음을 알았다.  이것은 중생으로 보아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고해(苦海)를 떠나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苦) 또한 인연소생(因緣所生)이라 그 고(苦)를 만든 인연을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하여 그 인연이 제거되었을 때에는 고라는 것은 자연히 없어지게 마련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고통을 떠난 그야말로 열반의 경지에 안주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부처님께서는 이를 스스로 증득하시었고 또 그를 따르던 많은 제자들도 이를 증득하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을 아라한(阿羅漢)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열반적정은 이런 의미에서 하나의 법인으로 세워지는 것이다. 따라서 제행무상, 제법무아, 열반적정의 삼법인을 세울 때에는 미혹의 중생계가 아닌 정각(正覺)의 해탈계에서 현실을 판단한 것이라 하겠으며 십이연기설로 보면 역관(逆觀, 還滅緣起)에 해당하는 것이라 하겠다.  

  이상으로 우리는 법인의 하나 하나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제 이를 종합하여 보면 〈모든 현상계 제법은 인연소생(因緣所生)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시간적으로는 무상(無常)하고 공간적으로는 무아(無我)이다. 그러나 이 이치를 여실히 보지 못하고 온갖 망심에 사로잡히면 이 세계는 모두 고해(苦海)로 나타나는 것이요, 반대로 이를 여실(如實)히 보고 망심을 떠나 이를 바르게 살려 가면 곧 열반에 이른다는 것으로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현상계의 미혹으로부터 열반적정계(涅槃寂靜界)에 이르도록 하는데 그 뜻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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